병원에 가면 가장 먼저 문진(問診)을 한다. 이때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환자가 가능한 있는 그대로의 증상을 모두 숨김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는 것은 전문가의 몫으로 넘겨주고 일단 사소한 부분까지도 빠짐없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집수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의 사수는 정확한 진단과 견적을 위해서라도 사전 상담에 시간과 정성을 많이 들이는 편이다. 사진이나 메시지 또는 전화 상담만으로 부족할 때는 증상을 살피기 위해 가까운 거리는 왕진까지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때 의뢰인 자신이 이미 진단을 내린 후 동떨어진 결과만 전달하며 처치만을 요구하기보다는 (혹시나 사고 치고(?) 부끄럽다고 감추지 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참 중요하다. 그렇다. 나의 사수는 스토리텔링을 귀히 여기며 디테일을 사랑한다.
실제로 앞에 이야기를 생략하는 바람에 다 된 변기 공사를 다시 뜯어 완전히 두 번 해야 했던 일도 있었다. 한 의뢰인께서 "변기에 백시멘트 좀 발라 주세요."하고 요청하셨다. 그 한 마디뿐이었다. 앞뒤 모든 이야기를 생략하고 아주 쉽고 간단하다는 듯이! 그런데 막상 가보니 아니었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변기는 뜯겨서 널브러져 있었고 뭔가 열심히 치운 흔적이 보였다. 알고 보니 유튜브를 보면서 셀프로 변기를 뜯으셨다가 수습이 안 되는 바람에 우리를 호출하신 것이다. 몇 시간을 공사한 끝에 변기를 앉히고 보니 아뿔싸! 욕실 문이 안 닫힌다. 이런 변이 있나!
변기 본체와 바닥 안에 배관을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부품에는 정심과 편심이 있다. 이름 그대로 정심은 정 가운데 일직선상으로 연결하는 부품이고, 편심은 한쪽으로 쏠린 듯 생긴 모양의 부품이다. 변기의 위치, 크기, 문의 위치 등을 고려하여 써야 할 부품이 달라진다. 보이지 않는다고 허술하게 공사하고 백시멘트나 실리콘을 때려 부어서 말 그대로 미봉책을 쓰면 누수뿐만이 아니라 누변이라는 참변을 겪게 된다. 물론 당장에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안 보이니까. 이번 케이스가 그랬다. 정심이 쓰였길래 그대로 잘 자리 잡고 앉혔는데, 처음부터 편심을 썼어야 할 자리에 정심을 잘못 쓴 공사였던 것이다. 바닥의 흔적을 너무 깨끗이 치우시는 바람에, 나의 사수는 기존의 변기 위치가 아닌 정심과 배관에 맞춰 변기를 앉히다 보니 문이 안 닫기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바닥 속 배관도 짧아서 굵은 파이프를 사다가 잘라서 덧대고 난리부르스를 치렀는데 결국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결국 나의 사수는 편심을 새로 구해다가 변기를 뜯어 위치를 살짝 뒤로 옮겨 처음부터 다시 공사를 했다. 중간에 다른 일정들이 잡혀있어 재공사는 깊은 밤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끝낼 수 있었다. 본인이 어찌나 꼼꼼하고 단단하게 작업을 하셨는지 뜯는데도 애를 먹는다. 어쩌겠는가. 감당할 수밖에. 휴일 아침이니 그날의 참변 사진은 생략하기로 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속이 쓰리지만 비용 얘기도 접어두기로 하자.
히스토리를 편집하거나 생략하지 마시고 부디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주세요. 저희는 귀찮아하지 않습니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손대기 전에 정확한 진단이 먼저입니다.
정심과 편심
나의 사수가 정말 좋아하고 재미를 즐기는 지점은 바로 창의적 문제해결 과정이다. 현장에서 즉석으로 출제되는 매번 다른 문제를 두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자신의 손으로 해답을 궁리하는 그 과정을 몹시도 재미있어한다. 조수인 나는 또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정말로 맞춤답을 구현해 내는 마술을 구경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사수는 오늘도 한 새벽에 일어나 만인의 스승인 유튜브에서 새로운 기술을 찾아서 셀프로 시청각 교육(?)을 받고, 직접 재료를 가져다가 실습을 거친다. 실습장은 바로 우리 집이 된다. 오늘의 과목은 타일이다. 앗싸! 욕실 타일 좀 부탁해. 금손 사수를 보유하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도구나 부품이 없으면 어떻게든 현장에서 만들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고야 마는 그의 집념과 정성! 따라 할 수는 없지만 매번 감탄은 한다. 조수도 물론 한몫 보태고. 아이디어도 보태고, 차 안을 뒤져서 마땅한재료도 구해다 준다. 아무리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이라도 혼자보다는 둘이 낫고, 둘보다는 여럿의 생각을 모으는 것이 훨씬 낫다. 그것이 바로 시너지 효과!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해결합니다
며칠 전 한 의뢰인께서 우리가 해준 공사가 몹시도 마음에 드셨는지, 수박을 통째로 덤으로 챙겨주셨다. 도구를 쓸 줄 아는 인간, 나의 사수는 칼도 물론 잘 쓴다. 수박을 한 번 잡아 볼까요? 시원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