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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Oct 10. 2024

엄마가 학교에 찾아온 날

<명자꽃은 폭력에 지지 않는다>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때였죠?

엄마가 학교에 찾아온 날


그날은 입학식이나 졸업식도 아니고

비가 오는 날도 아니었는데


시골 5일장을 돌며 장사를 하느라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비 오는 날 한 번도 우산을 들고

나를 데리러 오지도 못했었는데

못 온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엄마를 늘 기다렸는데


그런 엄마가 학교에 찾아와

선생님을 만나다니 도대체 무슨 일일까


엄마가 다녀간 후 선생님은 내게

오른손으로 쓰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타고난 왼손잡이였던 내게

때로는 엄하고 호되게 야단치시며

어떻게든 글씨만큼은 오른손으로

쓸 수 있게끔 이끌어주셨죠


왼손으로 밥을 먹으면 소박맞는다고

어른들께 늘 혼이 나면서

안에서나 밖에서나

말없이 순종적이던 나는

그렇게 오른손을 쓰는 법을 익혀 나갔어요


우유갑을 잘라 저금통을 만들다가

서툰 오른손으로 칼에 베여

피가 나기도 하고

손가락에 흉터가 남기도 했네요


그 후로 졸업식 말고는

엄마가 학교에 찾아온 날은 없었어요

그날 단 한 번 뿐이었어요

나중에서야 깨달았지요

그것이 나를 위한 엄마의 배려였다는 걸

가장 큰 사랑이자 지혜였다는 걸


내가 튀지 않고 휘지 않고

세상에 섞여 사람들과 비슷하게

그래도 좀 무난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적극성을 발휘한

엄마의 안배였다는 걸

이젠 알아요


여전히 나는 힘쓰는 일 칼 쓰는 일

거의 모든 일은 왼손으로 하는

어쩔 수 없는 왼손잡이이지만

글씨만큼은 오른손으로 씁니다

바른손으로 씁니다

엄마 덕분에

바르게 쓰는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오른손으로 펜을 쥘 때마다

나는 여전히 엄마를 떠올립니다

여전히 나는 엄마의 사랑 속에

씁니다 삽니다


고맙습니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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