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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Oct 19. 2024

최고의 지우개는 사랑이라고

<명자꽃은 폭력에 지지 않는다>


엄마,

느덧 첫서리가 내리는 절기가 다 되었네요


거두어들이고 갈무리하는 계절에

엄마에게 따듯하고 기쁜 소식 전할 수 있게 되어서 고맙고 다행이에요


그리움이 짙어지는 계절이라 그런지

오랜 벗들도 많이 생각이 나고 보고 싶더라고요


멀리 떠나오면서 세월에 떠밀려오면서

딱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쩌다 가장 소중했던 우정까지도

접어 미뤄두었는지 모르겠어요


마음먹은 김에 용기를 내서 아주 오랜만에  먼저 안부 메시지를 보냈답니다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고

작가가 되었다고 하니

친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먼저들 반가운 축하메시지를 보내오는 거예요

그동안 소원했던 시간이 온데간데없이

그 순간만큼은 여전히 교복을 입은 소녀들처럼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어요

 

괜히 혼자서 망설이고 움츠러들었던 내 자신이 무색할 만큼 변함없는 우정이

깊은 우정 기쁜 우정이

그동안 내 마음에 오래도록 찌든 때를 지웁니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친구들이 그랬었죠

늘 책 읽고 편지 쓰고 있는 를 두고

나중에 어른이 돼서 결혼하고서도

같은 모습으로 소꿉놀이 하듯이

그렇게 살고 있을 것 같다고

정말 그렇네요

지금에 나는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때 나는 많이 이상했어요

내 안에 갇혀 있을 때가 많았죠

자연스럽게 관계 맺고 소통하는 게

많이 서툴고 어색했어요

그래도 그래서 어쩌면

친구들이 더 고맙고 소중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친구로 여겨주고 나의 친구가 되어준 그녀들이 너무 고맙고 감동입니다

 

무엇보다 나랑 가장 잘 어울린다고

다들 입을 모아 진심으로 자기 일처럼

기쁘게 축하해 줘서 더 고마웠지요

힘든 시기에 함께 해주지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내가 더 미안하고 고맙다고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든든하다고


우정 앞에 계산하거나 시기하지 않는

그 순수함과 숭고함을 잃지 않은

성숙한 어른이 된 그녀들!

그런 친구들을 다시 되찾아서

잃지 않아서 또한 너무 다행입니다


고단하고 힘들었던 나날들

상처와 좌절로 피폐해졌던 흔적들

지우고 고치고 다시 쓰는 데에

최고의 지우개는 사랑이었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이 연필이 되어 줍니다

그 앞에 부끄럽지 않은 벗이 되려고요


곧 다가올 연말엔 그녀들을 만나러 가야겠어요

엄마랑 살았던 동네도 들러봐야 겠어요

아팠던 기억 이제는 사랑으로 지우고

새로운 추억으로 다시 쓰고 올게요


엄마 딸 너무 잘 살아내고 있지요?

계속 지켜봐 주셔요


우정, 그 숭고한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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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자꽃은폭력에지지않는다  #교보문고전자책 #교보e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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