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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Oct 01. 2024

딸이 있었더라면

<명자꽃은 폭력에 지지 않는다>


엄마, 그거 알아요?

지금 내 곁에

그 사람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 하고

떠올리고 생각이 난다는 건

지금 행복하다는

아주 잘 지낸다는 뜻이라는 걸


내가 요즘 들어

자꾸만 엄마를 더 부르고 찾는 건

지금 엄마가 곁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이토록 바라고 그리워하는 건

이제야 내가 겨우 살 하다는

행복하다는 뜻인지도 몰라요


좋은 때일수록 좋은 것일수록

소중한 사람과 나누고 싶잖아요

이렇게 좋은데 엄마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바라고 말하고 싶었던

꼭꼭 감춰두었던 마음을 드러내는 데까지

열여덟 번의 가을을 지나왔습니다


엄마, 만약에 정말 만약에

엄마를 똑 닮은 내가

나를 똑 닮은 딸이 있었더라면

또 얼마나 좋을까

한 번쯤 바라고 그려보기도 해요

이제야 이제서야 겨우


내가 겪고 지나온 삶이

지켜보고 기억하는 엄마의 삶이

어찌나 지독스러웠는지

나는 도저히 엄마가 될 자신이 없었어요

이 많은 사랑을 어쩌려고

오죽하면 후세를 갖지 않기로 선택했을까


“너는 애 낳지 말어라. 죽을지도 몰라.”

“애 낳지 마. 없어도 돼. 안 낳아도 돼."


이토록 독살스러운 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독화살의 저주를 날린 이들도 있었죠

혀로 살인이 가능하다는 말은 정말이에요

그들도 엄마이면서 엄마였으면서

도대체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요


“지금도 안 늦었어.”

아무렇지 않게 아주 쉽다는 듯이

아주 먼 남의 일인 듯이

오히려 멋모르는 남들보다도 더

경솔하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죠


그 모든 말 중에 가장 무서운 말은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아마도 그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단 한번일지라도 두고두고

말은 벌이 되고

글은 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 위력을 알지요


다행이고 다행인 것은

이 또한 지나간다는 그 사실도

이제는 안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충분히 사랑하고 있는 삶이어서요


나의 이 넘치는 사랑을

받아주고 보듬어주는 사람을 만나서

부족함 없이 갈망 없이

사랑하며 살고 있다고 느껴요

고마운 일이지요

엄마가 안심할 만큼


사람은 사랑이에요, 엄마

사람은 그릇이에요, 엄마

삶에도 죽음에도 그 모든 선택에도

옳고 그름보다는

사유와 배려를 먼저 비추는

사려깊음과 헤아림을 담은

그릇이 되고 싶어요

엄마가 뿌듯할 만큼


어릴 적 시골집에서 사촌동생이 태어났을 때, 엄마가 뜨개질해서 만들어 준 원피스를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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