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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Sep 28. 2024

하늘 편지지

<명자꽃은 폭력에 지지 않는다>



엄마, 오늘은 바람이 제법 불어요.

가을이 성큼 다가와

마음을 간지럽힙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하늘은

한 줄 한 줄 쓰는 대로 읽어주는

푸른 편지지가 되어

우표가 없이도 받는 이에게

속달로 부쳐 줄 것만 같아요.


내가 치러야 할 값은

“엄마!”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는 것뿐이지요.


깊어지는 하늘만큼이나

마음에도 여백이 많아지는

이 계절에는

그 빈자리를 가득 메우는 그리움에

속수무책으로 허덕일 수밖에요.


곁에 있을 때 부를 수 있을 때

실컷 더 자주 불러줄 것을

사무치게 후회가 됩니다.


엄마, 저는 잘 지내요.

걱정은 마셔요.

옷깃을 더욱 두텁게 여미는 추위가 찾아오면

이 그리움도 그칠 것을 알아요.

하늘에 편지를 부칠 수 있는 때는

하늘이 열리는 지금 이 계절뿐이니

그리 길게 앓지는 않을 테니

엄마를 실컷 그리워할 수 있게

잠시만 허락해 주셔요.


보고 싶어요, 엄마.

만지고 싶어요, 엄마.



 
살아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뜨거운 피와 살이 있어서
'지금 이 순간' 이렇게
보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의미라는 것을...

 
 - 여운 《명자꽃은 폭력에 지지 않는다》 중에서





끝을
치는 한 줄기 바람에서
든 그리움의 향기가
민다, 가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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