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산책
제법 해가 길어진 4월 하순의 오후 다섯 시. 이때가 가장 적당하다. 무기력한 마음을 밀어내고 활기를 충전하기에.
아장아장 아기부터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중학생까지 생명 가득한 아이들이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그네에도 시소에도 미끄럼틀에도 빈자리가 없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도 모두 함께다. 아빠는 아이의 그네를 밀어주고, 엄마는 그 옆에서 함께 그네를 탄다. 중학생 친구들은 서로 마주 보며 시소 위에서 널뛰기를 한다. 퇴근하는 길목에 딸의 이름을 부르자 달려라 하니처럼 뛰어와 함박웃음으로 아빠를 반기는 딸! 할아버지 품에 안긴 아기는 잠시도 자신을 떼어놓지 말라며 오직 그것만이 자신의 의무이자 권리인 양 사랑을 요구한다. 아이들은 발산하고 어른은 수렴한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 즐거운 비명소리, 주거니 받거니 행복한 말소리까지 이토록 자유롭고 건강하고 평범한 풍경이 얼마만이던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 사는 풍경이다.
뉘엿뉘엿 해의 꼬리가 길어진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라고 어른들이 아이들을 챙긴다. 늘 이 시간이면 마음에서 간질간질 몽글몽글 그리움이 피어오른다.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듯. 어릴 적 엄마가 심어준 마음 속 시계.
그리고, 그 모든 풍경을 내내 지켜보시던 할머니 한 분. 개나리빛 샛노란 겉옷을 걸치고 볕이 오래 머무는 놀이터 벤치에 마지막까지 한참을 앉아계신다. 그곳이 당신의 정해진 자리인듯 내내 한 번도 움직이지 않으셨다. 마침내 아이들이 모두 떠나자 맨 마지막으로 몸을 일으키신다. 할머니도 충전 중이셨나 보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게 그 옆에 함께 앉아 있었나 보다. 햇볕도 좋고 꽃도 좋지만, 사람은 사람으로 충전한다. 생명은 생명으로 서로 화답한다. 이 작은 공간에 생명이 흘러 넘친다.
그네에 빈자리가 생겼으니 나도 좀 타 볼까? 엉덩이를 걸치고 살포시 발을 굴려 본다. 등뒤로 나를 밀어주는 볕뉘가 느껴진다.
저녁 여섯 시! 이금희 언니의 '사랑하기 좋은 날' 할 시간이다. 나도 이만 집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