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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철활인

비 내린 숲을 지나

이수연 그림책 <비가 내리고 풀은 자란다>

by 햇살나무 여운





그거 알아?

큰비가 내리고 나면, 풀은 몰라보게 키가 자란다는 거.

잡풀들이 잔뜩 자라서 쓰러진 나무가 잘 보이지 않았어.

그런데 말이야 …,

그게 특별히 괴상해 보이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더라.

초록 흠뻑





"아빠가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 때 더 외롭다고 하셨어.
그래서 나무 앞에서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나무에게 아빠가 얼마나 많이 보고 싶은지 …,
이런 이야기를 다 꺼내 놓을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나에게 나무가 얼마나 소중한지, 하나도 숨기지 않고 다 이야기했어."

- 이수연 그림책 <비가 내리고 풀은 자란다>




아무도 쏟아지는 비를 막을 수 없다.




왜 이전에는 몰랐을까?

빗속에서는 꽃향기가 더 진해진다는 것을.



비가 내린다.

나의 숲에도 비가 내린다.

나의 나무가 쓰러졌다.


우리 모두의 숲에는 한 번쯤 큰비가 내린다.

큰비가 내리고, 나무가 쓰러진다.

큰비가 내리는 걸 우리는 막을 수 없다.

우리는 자신만의 숲에서 쓰러진 나무 한 그루쯤은 품고 산다.

그 비에 흠뻑 젖고 풍덩 빠져 스미고 적신다, 차오르고 물든다.


큰비가 내린 숲을 빠져나오면

우리는 몰라볼 만큼 훌쩍 자라 있다.


큰비가 내리는 걸 막을 수는 없지만,

우리가 무엇으로 어떻게 자랄지 숲은 이미 알고 있다.

숲은 그래서 걱정하지 않는다.

큰비도, 쓰러진 나무도

숲은 그저 품고 기다려준다

내가 자신을 통과해 지나가기를

흠뻑 젖고 훌쩍 자라기를

지켜봐 준다.


비 내린 숲을 지나

이제, 자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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