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

집수리 기사가 할 수 없는 일

by 햇살나무 여운





“거기가 걔네들 집이에요.”


집수리 기술자로서 너무도 어려운 의뢰를 받았다. 사수는 또 고뇌에 빠져든다. 도대체 어떤 작업이길래.

최근에 알게 된 부동산에서 오늘 막 이사 들어온 임차인 집에 싱크대 수전이 부러진 걸 뒤늦게 발견했다고, 지금 바로 좀 교체해 줄 수 있느냐고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조수는 화장실이 더 다급했다. 주말 아침에 나와 벌써 저녁 5시가 넘었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 오후 내내 참는 중이었다. 밖에서 뺑뺑이를 돌다가 이제 막 집으로 방향을 틀던 참이다. 길 위를 달리는 시간들이 쌓여가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인간이 참 원초적이 된다. 요즘은 상가들도 대부분 화장실에 비밀번호를 걸어두는 경우가 많고, 아파트 단지 내 커뮤니티 센터도 입주자 전용일 때가 많다. 정 급할 때는 의뢰인댁에 양해를 구하고, 대부분은 관대하다. 이건 어디까지나 조수의 성향 탓이다. 명절 즈음 시댁에 간다 생각하면 벌써부터 변비가 오는 과민한 인간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관리사무소를 찾아 또 뺑뺑이를 돈다. 사수는 이미 화장실에 대해서는 참기와 찾기에 달인이 되었고, 조수는 그런 까닭에 빈집이 더 좋은 건 또 어쩔 수가 없다.

부동산 사장님이 의뢰한 아파트는 다행히 방금 전 작업을 마쳤던 아파트 바로 인근이었고, 계약이 성사되고 임차인이 이사까지 다 들어온 마당에 임대인이 더는 처리해 줄 수 없다고 해서 부동산 사장님이 꽤나 곤란한 상황인 모양이었다. 비용도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며 잘 좀 부탁드린다고. 그동안 부동산 사장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은 턱에 사수도 흔쾌히 알겠다고, 다시 그 방향으로 차를 되돌린다. 마침 싱크대 수전은 여분 재고도 차에 실려 있다. 할 수 없이 조수는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드리는 마음으로 이를 사리문다.

수전교체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확인 통화를 하는데, 부동산 사장님이 혹시나 하고 조심스레 물어오신다. 에어컨 실외기 자리에 비둘기 똥이 너무 많이 쌓였다고, 청소가 가능한지 임차인이 요청해 왔다는 것이다. 물론 사수가 청소업자가 아니라 집수리 기술자임을 모르지 않지만, 먼저 다른 전문 청소업체에 알아보니 비용이 너무 높아서 혹시나 하고 물어만 보는 것이라고. 이제는 하다 하다 비둘기 똥 청소라니! 중년이 다 돼었는데 남들처럼 좀 땅땅거리거나 떵떵거리며 살게 되기는커녕 여전히 똥똥거리며 살게 될 줄 몰랐다.





단박에 안 한다고 거절하지 못하고 일단 한 번 보겠다고 하는 사수도 참 어쩔 수가 없다. 현장을 보고 와서 하는 말이 역시나 더 사수답다.


“사람 똥도 얼마든지 치우는데 그에 비하면 새똥은 깨끗하지. 사람 똥보다 새똥이 훨씬 깨끗하지. 그게 뭐 대수라고.”


아니, 무슨 자기가 정호승 시인도 아니고 새똥은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새똥 치우는 게 더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라 거기가 걔네들 집인데 쫓아내야 하는 게 문제라고. 당장 청소를 해도 새들은 회귀본능으로 또 집을 찾아 날아들 텐데, 똥을 치우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완전히 쫓아내고 다시 내려앉지 못하게 그물을 쳐야 해결될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이 추운 겨울날 걔네들을 집에서 쫓아내야 하다니! 새집도 집인데, 집수리 기사가 누군가의 집을 고치는 게 아니라 없애 버려야 한다니 그게 영 내키지 않아 사수는 고뇌에 잠긴 것이다. 솔직히 따지고 보면 새들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곳에 살고 있던 걔네들 집터를 빼앗은 건 오히려 우리 인간들이다. 호수와 숲 너무 가까이에까지 빽빽이 아파트가 들어선 까닭이다. 하늘을 날다 잠시 내려앉아 쉴 들과 숲과 키 높은 나무들이 사라지자 새들이 자꾸만 콘크리트 숲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연 사수는 이 의뢰를 맡을까? 사수의 고뇌가 길어진다.

“거기가 걔네들 집이고 숲이고 땅이에요.”



정호승 '새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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