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긴 물도 다시 보는 우수? 누수!

싱크대 아래 옹달샘

by 햇살나무 여운



엊그제가 입춘이었는데, 설연휴를 지나고 나니 어느덧 벌써 우수(雨水)다. 언 땅이 녹고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는 절기! 겨우내 어찌나 가물었는지 시골 고향 친구가 명절 연휴 내내 여기저기 산불로 소방 헬기가 물을 싣고 바삐 오가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았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그 때문인지 차례를 마치고 지방(紙榜)을 태우면서 아주 미미한 불씨이지만, 왠지 신경이 쓰여 더 조심히 유심히 살피게 되기도 한다.


흔히들 꺼진 불도 다시 보자고, 자나 깨나 불조심이라고들 한다. 남의 일, 먼 일이 아니다. 가스불 위에 냄비를 올려두고 아주 잠깐 자리를 뜨면 금세 잊어버리기 일쑤다. 이번에도 역시나 떡국을 데우다가 눌어붙었다. 마음이 딴 데 멀리 가 있어서 그렇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단숨에 끝내지 못하고 몇 번을 왔다 갔다 한다. 성인 ADHD가 맞는 것 같다. 틱낫한 스님의 말씀처럼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고, 일을 할 때는 일을 하고, 쉴 때는 그저 쉴 수 있다면 우리들이 겪는 괴로움의 많은 부분들은 절로 해결될지도 모를 일이다. 눈앞에 불을 다루면서 스스로 위험해지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한눈팔다가 셀프로 자기 팔을 태워 먹기도 하니 말이다. 아프기보다는 바보 같은 모습에 웃음이 났다. 이제 조수도 이 일이 제법 익숙해졌다는 반증일까? 그새 느슨해져서는 온갖 위험한 도구들 앞에서 방심하고 틈을 보이다니!


사수님, 산재 되나요? ㅎㅎ / 테리야, 비켜줘야 일하지^^


불만큼이나 물도 위험하다. 그러고 보면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집이라는 공간이 방심하는 순간 가장 위험한 곳이 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부엌은 특히 위험하다. 불과 물과 칼을 다루는 곳이니까! 문득 며칠 전 다녀왔던 집이 생각난다. 물이 범람할 뻔한 집!



어느 주말 하루는 트리플 하수구 데이였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해 막힌 하수구를 연이어 세 집이나 뚫어주었다. 앞선 두 집은 오래 묵은 싱크대 하수구 막힘이었고, 마지막 집은 부동산에서 다급히 요청해 온 세탁실 하수구 막힘이었다. 앞선 작업들을 마치는 대로 늦은 오후 서둘러 도착해 보니 갓 이사 들어온 집이었다. 날씨도 몹시 추운 날 오래 비어있던 탓인지 온 집안이 꽁꽁 얼어있다. 세탁기를 돌리는데 물이 안 빠진다고 했다. 베란다에서 한 시간을 넘게 하수구와 씨름을 하다 보니 우리도 손발이 얼어 작업이 여의치가 않다. 추위를 피해 잠시 안으로 들어서봐도 그다지 별 차이가 없다. 네 식구가 두터운 패딩을 입은 채로 옹기종기 둘러앉아 꽁꽁 싸매고 있는 모습을 보니 빨래보다 당장 더 급한 것이 있어 보였다. 보일러가 안 된다고 한다. 이상하다. 하수구를 뚫으면서 배관에 물을 흘려보낼 때 분명 온수는 공급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수는 하수구를 마무리하는 대로 잠시 보자고 하면서 싱크대 아래를 열었다. 아파트의 경우 대부분 보일러 분배기가 싱크대 아래에 위치해 있다. 각 방으로 연결되는 부위의 배관을 만져보니 차갑다. 보일러 구동기가 잠긴 채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사수는 먼저 의뢰인에게 상황과 증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보여준 후, 우선 급한 대로 좀 만져봐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구했다. 그리고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응급처치를 실시했다. 껐다 켜기! 재부팅!!


보일러 구동기는 전자제품이다. 스마트폰처럼! 각 방 배관 위에 하나씩 설치되어 있고 온도조절기와 신호를 주고받으며 구동기의 밸브가 물이 흐를 수 있도록 열었다 닫았다 한다. 이 정도 얼어있는 집이면 꽤 오래 비어있었을 것이고, 보일러를 작동시키지 않은 지 제법 되었을 것이다. 이럴 때는 껐다 켜주는 게 필요하다. 스마트폰처럼! 다행히 사수의 응급처치가 효과가 있다. 구동기 밸브가 돌아가면서 배관이 열리고 곧바로 싱크대 앞 발밑부터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좀 더 살핀 후 방 2의 구동기는 결국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의뢰인과 함께 확인했다. 사수는 이것까지는 하지 않는다고, 휴일이 끝나고 정식으로 A/S를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당부하고 마무리지었다. 물론 역시나 사수답게 자신의 전문영역이 아닌 데다가 딱히 한 것이 없다고 하수구 뚫어준 값만 받고 나온다. 이제 조수도 그러려니 한다. 아니, 그게 맞다고 조수도 동의한다. 보일러와 전자제품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디지털은 우리가 책임질 수가 없다. 그리고 솔직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그냥 수동 밸브로 풀었다 잠갔다 하면 되지 한두 개도 아니고 저 비싸다는, 게다가 고장도 잘 난다는 디지털 장치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는 영역이어서 하는 말이다. 하긴! 우리는 모르면 모르는 대로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편리하게 잘 쓰고 있다. 스마트폰처럼! 그게 기술이라는 거다.


혹시라도 한겨울 보일러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싶으면 싱크대 아래를 열어 가끔 한두 번쯤 살펴볼 일이다. 물과 가까워 습한 곳은 자주 열어서 환기를 시키는 것도 필요하고. 그 아래 그런 게 있었어? 내 마음도 다 모르듯이 내 집이어도 모를 수 있다.


그러다 어느 날엔 옹달샘을 발견하는 일도 생길 것이다. 보일러 배관에서 물이 새서 말이다. 하수구가 막혀 역류한 경우는 여러 번 보았지만, 조수도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 이렇게나 많이 고여 있을 수 있다니! 이번 집은 이사 들어와서 산 지 반년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설 연휴가 이미 시작되었는데, 오죽 다급했으면 부동산에서 휴일에도 연락을 해왔을까 싶었다. 그 와중에 그나마 아랫집에서 부엌 천장이 젖은 것을 발견하고 일찍 알려주어서 천만다행이었다. 문제는, 문을 연 자재상이 없어 당장 필요한 부품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선 고인 물을 퍼내고 연휴 내내 최대한 잘 말려보기로 했다.


물은 당장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우리 생활과 밀접하고 그만큼 중요하고 위험하다. 매일 매 순간 우리는 물을 물 쓰듯이 쓰고, 그래서 물은 멈추지 않고 어느 미세한 틈이라도 비집고 흘러들고 스며드니 말이다. 아랫집으로 범람하지 않고 아직 옹달샘에 고여있다면 정말 하늘이 도운 것이다. 그 아파트가 부실공사 없이 잘 지은 좋은 아파트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아랫집 부엌 천장 벽지만 살짝 젖었다면 그 또한 새해 복 이미 크게 받은 것이다. 이 정도면 가래로 막지 않고 호미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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