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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모 Apr 09. 2019

동자승의 하루

편견 없이 보는 세상, 모든 순간이 행복

절에 사는 어린 스님을 동자승이라고 한다. 사실상 아기나 마찬가지이지만 절에 있기에 동자승이란 단어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요즘 한국 불교 조계종단에서 스님이 되려면 나이 제한이 있다. 13세 이상 50세 이하 이면서 고졸 이상 학력을 지닌 사람이 스님이 될 수 있다. 이 기준이면 아무리 어려도 초등학교 6학년 이상 될 테니 동자승이라고 하기엔 나이가 많은 셈이다. 동자승은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일부 대형 사찰에서 신자의 아이들을 모아 머리 깎고 스님 체험하는 이벤트로만 남았다.(물론 언론용 행사 홍보를 위해 준비하기도 한다.) 암튼 예전에는 동자스님이 있는 절도 있었다. 말 못 할 여러 사연이 있겠지만 절에서 먹고 자라면서 자연스레 스님의 길을 가기도 했다.


지은이로 적힌 ‘동자승 이찬’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으로 이루어진 창작팀이다. 이들은 귀여운 동자승 이찬(一禪 : 중국 발음 이름이다. 우리말로 읽으면 '일선'이니 에피소드마다 선문답 같은 내용을 하나씩 보여줌을 뜻하는 것일 테다.)을 주인공으로 한 동명의 작품을 3D 애니메이션과 수묵화풍 웹툰으로 제작해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수묵화풍 웹툰은 2016년 10월 웨이보에 연재를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조회수 7억 뷰를 돌파하며 화제를 모았는데, 이 책이 바로 그 웹툰을 엮은 것이다. 이들은 동자승 캐릭터를 다양한 상품으로도 선보여 연령을 불문하고 사랑받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책에 나온 지은이 소개글이다)


책에는 천진난만한 7살 동자승 이찬과 자애로운 사부의 일상을 담은 19편의 에피소드가 그려져 있다. 선입견 없고 편견 없는 동자승은 늘 호기심을 갖고 주위를 살피고 사부는 인생의 진리를 터득하도록 도와준다. 동자승은 인간 자체의 선함을 보여주면서 인생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동자승의 하루 / 동자승 이찬 지음 / 이지수 옮김 / 마음서재/13800원

책에서 가장 내 눈길을 끈 것은 제1화로 소개된 '입맞춤'이다.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에 나오는 '날카로운 첫 키스'라는 표현처럼 강렬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동자승 이찬이 입맞춤하는 남녀를 본다. 그리고 사부에게 묻는다. "왜 서로 입술을 깨무나요?" (입술을 깨무는 것으로 본 게 신선하다. ^_^)

사부는 "아주 할 말이 많은가 보다."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그런데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입술을 맞대는 거란다. 그럼 하고 싶은 말들이 상대의 입 속으로 흘러가게 된단다. 백 마디 말이 필요 없지."라고 설명한다. 동자승은 바로 이해한다. 나도 '새롭게' 이해했고 무릎을 쳤다.


불교에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微笑)'라는 염화미소(拈華微笑) 또는 연화미소(蓮花微笑)라는 말이 있다. 선종(禪宗)에서 많이 쓰이며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 나온다.

‘영산(靈山)에서 범왕(梵王)이 석가(釋迦)에게 설법(說法)을 청하며 연꽃을 바치자, 석가(釋迦)가 연꽃을 들어 대중들에게 보였다. 

“석가세존께서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니(釋迦拈華示衆)

가섭 존자가 그 꽃을 보고 빙그레 미소 지었다. (迦葉見華微笑)”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했으나, 가섭(迦葉) 만은 참뜻을 깨닫고 미소(微笑)를 지었다.’ 석가(釋迦)는 비로소 가섭(迦葉)에게 아래와 같은 교훈(敎訓)을 전하였다.


- 정법안장 (正法眼藏 :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마음의 묘한 덕)

- 열반묘심 (涅槃妙心 : 번뇌와 미망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닫는 마음)

- 실상무상 (實相無相 : 생멸(生滅)계를 떠난 불변의 진리)

- 미묘법문 (微妙法門 : 진리를 깨닫는 마음)


대중이 영문을 알지 못해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오직 마하가섭(摩訶迦葉) 존자(尊者)만이 혼자 빙그레 웃었다. 가섭은 꽃을 든 석가의 모습에서 법을 이해한 것이다. 사람들이 석가가 손에 든 연꽃만을 바라볼 때 그 본래 의미를 '말없이' 그대로 이해한 것이다. 


입맞춤을 정의하면서 '하고 싶은 수많은 말들 중에 어떤 말을 먼저 할지 모를 때 그냥 입에서 입으로 하고 싶은 말이 흐른다'는 표현은 정말 멋지고 핵심을 찌른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 말이 필요할까? 서양의 연인들처럼 'I love you'를 입에 달고 살지 않아도 그냥 사랑을 아는 연인 사이인데...  


동자승의 순진무구함은 사나운 늑대도 감화시켜 강아지처럼 놀게 만든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화내고 신경 쓰는 모든 일들이 천진한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선한 마음을 지니면 그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에는 선문답 같은 동화가 연속된다. 중국어를 안다면 그냥 스마트폰 웹툰으로 보아도 괜찮겠다. 하지만 모아서 책으로 만드니 손에 잡히는 두툼함과 무게가 얼핏 깨달음의 양처럼 (실존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올해는 불기 2563년, 석가탄신일이 다음 달로 다가왔다.     - 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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