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등장 이후 카메라 사용이 놀이처럼 변했다. 10·20대 젊은이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사용자 대부분이 즐길 수 있는 놀이다. 덕택에 사진 촬영에 대한 저항감은 거의 없어지다시피 됐다. 대신 휘발성 높은 사진 찍기가 많아졌다. 사진 찍기가 놀이가 되면서 같은 모양 사진을 만드는 방식이 유행하기도 했다.
여행지에 같은 인형을 놓고 촬영한다. 여자 친구의 뒷모습을 넣고 찍는다. 팔짝 뛰며 찍는다. 휴가지에서 발가락만 나오게 촬영한다. 결국 장소는 사진 배경일 뿐이고 찍는 나 자신의 의도 혹은 놀이 방식이 우선된다.
여기 17세 소녀인 정유나가 촬영한 사진이 있다. 북한이다. 소녀는 2018년 6월 28일부터 7월 12일까지 북한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당시 정유나는 일본 도쿄조선중고급학교 3학년이었다. 매년 이 학교 학생들은 졸업을 앞두고 북한으로 수학여행을 간다. 수학여행은 시간과 행선지가 정해진 일종의 패키지여행이다. 방식이 달라져도 여행은 시간이 제한되기에 볼 수 있는 양과 질은 정해져 있다.
조국 방문-정유나 사진집/정유나 지음/눈빛/2만 원/2020년 07월 29일 출간
그렇다 해도 이 책이 가지는 장점은 하나다. 17세 소녀 눈 앞에 보이는 장면을 그냥 그대로 촬영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사진 전문가가 아니기에 어떤 사진 기교도 없다. 촬영 당시 바라본 모습 그대로이다. 그렇기에 은근슬쩍 PPL 광고처럼 화면에 녹인 의도가 극히 적다. 사진집으로 엮기 위해 선별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10대 소녀의 놀이처럼 찍은 사진이 없다.
책에 실린 사진에는 특별한 사진 설명이 없다. 찍은 장소만 적거나 행인, 노동자 같은 대명사로 인물을 설명했다. 비 맞고 있기에 우산을 씌워준 어린이 '길에서 만난 7살 국성이'와 어머니 친구인 '면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승복이 이모'라고 사람 이름이 있는 사진은 두 장뿐이다. 그래서 사진집을 보는 사람들은 그동안 북한에 대해 전해 들은 지식수준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우려도 있다. 반대로 그냥 제3세계 다큐 사진을 보듯 담담하게 보게 하는 이점도 있다.
사진집에 등장하는 사람들 모습은 카메라에 거부감이 적어 보인다. 아마도 촬영자가 북한 여학생처럼 검은 치마, 흰 저고리 교복 차림인 것이 피사체의 저항감을 줄여 주었을 것이다. 자유시간에 혼자 돌아다니다 만난 7살 평양 남자 어린이 '국성이'가 비를 맞고 있어 우산을 씌워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러면서 본 평양의 뒷골목, 그리고 아파트 입구 모습은 우리가 쉽게 보지 못한 모습이다. 하기사 일본에서 왔지만 북한을 조국으로 가르치는 학교 학생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자유시간에 혼자 돌아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보다 10여 년 이상 시간이 늦게 흐른 듯한 평양 모습, 개성과 묘향산을 가면서 본 고즈넉한 농촌 풍경, 냇가에서 빨래하고 아이들은 물놀이하고... 그렇지만 그곳에도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다만 제한된 정보와 환경 속에 적응된 사람들이라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긴 하다. 어찌 보면 부탄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은 비교대상이 적기 때문 아닐까 싶기도 하니까...
17세 소녀 정유나는 작은 부분까지 생각하지 않고 셔터 버튼을 누른 것 같다. 그런데 사진 속에 동작이 고정된 사람이 은근히 재밌는 사실을 알려준다. 비 오는 날 나름 멋진 우산을 쓴 여인의 장화가 굽 높은, 일종의 패션 장화였다. 다른 사진 속에서 보인 다른 여인의 장화는 굽이 높지 않았다. 고층건물 공사장에서 도르래를 이용해 커다란 통을 줄로 끌어올리는 2명의 근로자 모습. 정유나는 공사장 모습 자체를 넓게 촬영했다. 그러나 사진을 꼼꼼하게 '읽는' 우리에겐 이런 모습도 보인다. 한 남자 어린이 티셔츠에 우리나라가 만들어 '뽀통령'이라고도 불리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뽀로로가 영문 알파벳과 함께 그려져 있었다.(손으로 일부 가려졌지만 영문 PORORO와 뽀로로 일부 모습이 보인다.) 사실 2003~2006년 뽀로로 1기 중 10편과 2기 10편 제작에 북한 평양에 있는 삼천리총회사가 임가공 형태로 참여했다. 뽀로로가 북한에서 방영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중국을 통해 불법으로 들어온 동영상을 볼 수는 있지는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북한 평양 어린이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행은 자신을 다른 사람을 통해 투사해 볼 수 있는 기회다. 물론 북한 여행이 자유롭고 개방적이지 않음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본 것이 모든 것인 양 선전하고 주장하지 않는 점이 (특별한 사진 설명이 없기에) 이 사진집의 강점이다.그냥 눈으로 콕콕 짚은 평양과 개성 그리고 판문점 주변의 모습이다. 여기서 얼마나 느끼고 깨닫고 생각할지는 자신의 능력이고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질 거다. 이런 부분은 어떤 책을 보든 마찬가지인데 소위 일반 여행사진인데도(더군다나 안내자가 보여준 것뿐인) 여기에 강한 다큐성(性)이 있고 진실과 사실이라며 강하게 주장한다면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정유나는 2001년 도쿄에서 출생했다. 한국인 아버지와 재일동포 3세 어머니, 남동생이 있다. 초중고를 조선학교를 다녔고 현재 쓰다주쿠(津田塾) 대학생이다. 아래는 정유나 씨가 사진집을 내며 책 뒷부분에 붙인 글이다.
북한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오고 난 뒤 자신이 느낀 점을 적었다. 말미에 있는 "지금보다 어린 나이였고, 비록 수학여행이었지만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이 뒤섞인 상태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 글이 핵심인 듯싶다. [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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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정유나 씨가 사진집 말미에 붙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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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본 또 하나의 조국]
조선학교(고교) 3학년 6월 말부터 2주간 매년 조국 방문이 진행된다. 일본 대학시험 준비를 하는 바쁜 시기였지만 친구들과 처음 가는 또 하나의 조국은 무척 기대되었다. 「조선에 가면 많이 돌아다니면서 사진으로 담아 와라. 짐을 챙기고 있는 나에게 아빠가 카메라를 주면서 말을 건넸다. 남동생도 2년 뒤면 가볼 테니까 우리 가족 중에 「조선에 가보지 못한 사람은 아빠뿐이네.」라고 대답을 했다.
해외여행을 처음 가는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결혼해서 산 호주 시드니도, 아빠 가족들이 살고 있는 부산에도 어릴 때는 매년 다녀왔다. 그냥 자연스럽게 다녀온 것에 비해 이번 방문은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나는 우리 학교에서 나의 민족, 나의 조국의 소중함을 배웠지만, 조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다. 조국은 어떤 곳일까? 그래서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조국 방문이 어쩌면 나의 조국에 대한 개념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비행기로 베이징에 가서 다시 평양으로 가는 고려항공으로 갈아타야 했다. 일본에서 납치문제가 불거지고 만경봉호로 직접 갈 수 없어서 중국을 경유해서 갔다.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해서 이번 방문 기간 내내 우리를 안내해 줄 지도원 선생님을 소개받았다. 버스가 노을 진 평양 시내로 들어서자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우리가 묵을 평양 호텔에 도착하고 짐을 풀고 방 배정을 받았다.
자유시간에는 저고리를 입고 카메라를 들고 혼자서 평양 시내를 다녔다. 자유롭게 혼자 다니고 싶었다. 비 오는 거리에서 만난 7살 어린 남학생 「국성이」가 비를 맞고 있기에 집에까지 우산을 같이 쓰고 데려다줬다. 국성이의 꿈은 인민군대에 가는 것이며, 아버지는 백두산 공사현장에 나가 있고 어머니는 직장에 다닌다고 했다. 국성이가 사는 아파트까지 갔을 때 동네 사람들이 형제자매처럼 지낸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에서 살고 있는 동네의 서먹서먹한 관계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말을 걸면 부끄러워하는 아이들, 일본에서 온 동포라는 것을 알고 손을 흔들어 주던 평양의 시민들. 혼자 평양 거리를 산책하면서 나는 이곳의 일상도 우리네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조국에서 만난 군인 학생 들은 확고한 신념 속에 거짓이 없어 보였다. 맑고 순진한 눈빛으로 조선에서 사는 그들의 인생관이 흥미로웠고 부러웠다. 구수한 조선어로 농담을 하던 안내 지도원 선생님, 친척도 아닌데도 먼 함흥에서 평양까지 몇 시간의 짧은 만남을 위해서 찾아온 엄마의 오랜 친구분은 말린 오징어와 곶감을 선물해 주셨다. 솔직히 함흥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그냥 웃으면서 대화를 하고 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같은 말을 사용하고 같은 농담을 하며 웃고 같은 노래를 불렀다.
이 수학여행의 추억을 뒤로하고 난 조선학교를 졸업했고, 일본 대학에 진학했다. 영화 〈기생충)이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 전편에 흐르고 있는 주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의 벽과 경계에 관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조선민족은 이러한 벽과 경계의 물리적인 장벽을 아직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분단된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분단 70년을 넘어가면서 같은 민족이지만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다른 의식이 생겨나고 있다. 일본의 재일동포는 이러한 두 가지 조국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조선학교를 다니지 않았으면 반쪽만을 조국으로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난 조선학교를 나왔고, 그런 환경이었기에 두 개의 조국을 알게 되었다.
「통일은 먼 시대에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통일을 향한 의식, 행동이 행해질 때 비로소 통일은 시작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의 짧은 경험이 담긴 이 사진집도 이러한 통일로 가는 하나의 작은 시작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견과 이념의 벽과 경계를 헐어 버리고 같은 민족이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으로 바라봐 주었으면 한다.
난 사진을 배운 사람도 아니다. 그런 나의 사진을 작품으로 만들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때 그 순간에 난 그곳에 서 있었다. 또 하나의 조국에서 그때 그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난 느끼고 카메라로 기록했다. 지금보다 어린 나이였고, 비록 수학여행이었지만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이 뒤섞인 상태에서 사진을 찍었다. 어설프지만 그것도 나의 한 부분이란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