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장남원 사진전
인천항에 고래가 나타났다. 정확히는 롯데갤러리 인천터미널점에 나타났다. 물론 실물은 아니다. 사진으로 모습을 바꾼 혹등고래다. 흑백으로 바뀐 혹등고래의 거대한 몸집은 전시회의 제목처럼 ‘움직이는 섬’처럼 보인다. 흑과 백으로 바뀐 바닷속 고래는 푸른빛이 주는 컬러사진과 달리 보는 이의 마음을 침잠하게 만든다.
전시된 사진 중에 거대한 고래가 하얀 점으로 보일 정도로 멀리서 촬영한 사진이 있다. 흰색 뱃살과 지느러미가 마치 하늘을 나는 갈매기처럼 보인다. 사진 촬영 앵글이 만들어낸 착시다. 검은 바탕 속 흰 고래의 몸짓이 어둠을 향해 가는 것인지 아니면 어둠 속에서 나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보는 이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 가에 따라 달리 보일 것이다. 이런 착시가 예술이다.
전시장에는 다양한 크기로 인화된 사진 총 24점이 걸려 있다. 특이한 점은 대형 인화물 5점과 함께 혹등고래 움직임을 촬영한 동영상을 상영하는 별도 공간이다. 동굴 속 울림 같은 혹등고래의 독특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보는 동영상과 사진은 관람객의 마음을 색다른 공간으로 이끈다. 앉아서 볼 수 있으면 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의 4차 대유행으로 인해 수도권에 강화된 방역수칙 때문인지 의자가 없어 아쉬웠다.
사진가 장남원은 중앙일보에 1977년 사진기자로 입사하면서 수중사진을 처음 배웠다. 회사 일로 시작한 수중촬영은 국내 해저에서 시작해 해외로 이어졌다. 결국 1998년 퇴직 후 본격적으로 수중 사진가 길로 가면서 통가의 혹등고래까지 닿게 됐다. 장남원 사진가는 혹등고래 촬영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통가는 혹등고래가 새끼를 낳고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다. 많은 섬 사이 얕은 수심과 잔잔한 바다는 어린 혹등고래 새끼가 천적인 상어나 범고래로부터 피하기 좋다. 이곳에서 몸집을 키운 혹등고래 새끼는 어미와 함께 남극까지 기나긴 여행을 떠난다.
혹등고래 https://ko.wikipedia.org/wiki/%ED%98%B9%EB%93%B1%EA%B3%A0%EB%9E%98
통가 정부는 혹등고래를 보기 위해 오는 관광객과 함께 사진가들의 수중촬영 작업에 제한을 두고 있다. 근접할 수 있는 거리제한이 대표적이다. 수중 촬영 작업은 이 보다도 더 제한이 있다. 잠수해야 하지만 공기통과 같은 스쿠버 장비를 사용할 수 없다. 공기통에서 나오는 대량의 물방울이 혹등고래에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한마디로 해녀처럼 무호흡 잠수를 하면서 촬영을 해야 한다.
혹등고래 촬영은 배를 타고 나가 고래 찾기부터 시작한다. 오랜 시간 이곳에서 사진을 찍은 장남원은 혹등고래 전문 사진가로 인정받고 있다. 당연히 전문가급 안내원과 배를 수배해 현장으로 간다. 그렇다 해도 고래를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래를 만나도 이미 다른 사진가가 먼저 발견해 사진을 찍고 있다면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 이곳의 규칙이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다 고래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대개 다른 고래를 찾아 나선다.
통가 지역이 혹등고래가 새끼를 낳고 키우는 지역이라 그나마 쉽게 찾을 수 있다. 혹등고래를 발견하면 배를 접근시킨다. 그러면 혹등고래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자리를 옮긴다. 그러면 다시 쫓아가 접근해 기다린다. 이렇게 몇 차례 반복하면 어미 고래도 자신들을 해치지 않는 것을 알고 주변에 머문다. 혹등고래 어미는 천천히 움직이지만 새끼는 정신없이 주변을 왔다 갔다 한다. 이때가 촬영을 시작할 때다. 물속에 들어가서도 혹등고래와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혹등고래 진행방향 앞에 잠수해 수중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그러면서 계속 혹등고래 촬영을 위해 거꾸로 수영을 하면서 촬영을 한다. 혹등고래가 지느러미를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지만 한 두 번 휘저으면 금방 지나가 버린다. 그러면 다시 배로 올라와 고래 앞으로 가는 일을 반복한다.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36컷이라는 한계 때문에 필름 교환을 위해 자주 배에 올라와야 했지만 디지털카메라로 바뀐 뒤로는 수 천장 촬영이 가능해져 편해졌다고 장남원 사진가는 말한다.
장남원 사진가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건장한 체격과 체력을 지녔다. 하지만 이런 그도 수중촬영 중 얻은 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2014년 멕시코 플라야 델 까르멘(Playa del Carmen) 지역의 수중 동굴 촬영 중 발생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곳은 혹등고래 촬영과 달리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스쿠버 장비를 착용 후 오랜 시간 수중촬영을 하면 목이 마르게 된다. 그래서 함께 잠수한 현지 가이드가 물을 입에 물고 뱉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물을 머금었다가 사고를 당했다. 찝찔한 맛이 나는 민물을 뱉지 않고 그냥 마신 것이다. 당시 홍수가 있어서 평소보다 물이 살짝 탁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날 저녁부터 설사가 나면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그는 나머지 일정을 취소하고 바로 귀국 비행기에 올라탔다. 귀국 후 대학병원에 입원했으나 패혈증까지 와서 한때 생사의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당시 의료진은 원인을 밝히지 못했으나 후일 수중 미생물 내지 박테리아 감염으로 인한 병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먹지 말아야 할 물을 마신 것이 원인이었다. 이 때문인지 다음 해인 2015년에는 심장판막 대체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주변에선 이제 수중촬영은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심장 수술 후 6개월이 지난 2016년 장남원 사진가는 혹등고래를 만나기 위해 다시 통가의 바다에 들어갔다. 코로나19로 인한 여행 제한이 풀리면 다시 고래를 만나러 가겠다고 말한다.
'움직이는 섬 고래' 장남원 사진전은 롯데백화점 인천점 갤러리에서 8월 15일까지 계속된다. 올해 광주 롯데갤러리( 8월 17일~10월 10일)와 대구 사진비엔날레(9월 10일~11월 2일) 행사에서도 볼 수 있다. [빈모]
추가 글
Q : 컬러로 촬영한 것으로 아는데 왜 흑백사진으로 전시했나?
A : 인화된 사진이 모니터에서 보여준, 오묘하게 푸른 바닷물 색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다.
(현학적이고 뭔가 폼 나는(?) 대답을 할 줄 알았는데 단순하고 명쾌한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