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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Aug 07. 2024

배낭 하나 메고 사막에 도착했다

몽골에서 생긴 일

본디 흔히 생각하는 사막이라 함은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어 땀이 뻘뻘 흐르고, 목이 마르지 않아도 물을 마시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새에 탈수 증상이 생겨서 쓰러질지도 모르는 그런 장소 아니었던가?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렇게 배낭에는 물과 옷만 잔뜩 넣어 떠났는데, 이런. 몽골 사막의 밤은 생각지도 못하게 추웠다. 머리만 대면 잠을 자는 나조차도 추위에 못 이겨 몇 분에 한 번씩 잠들었다 깨었다를 반복한 것을 보면 사막의 밤에 찾아온 추위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 분명했다.


모래가 열을 담아두지 못하고 빠르게 방출한다는 사실을 왜 그땐 몰랐을까.



 


TV에서 배낭여행을 다니는 외국 사람들을 보면 앞에는 작은 가방, 뒤에는 큰 배낭을 메고 가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어릴 때 그게 왜 이렇게 멋있어 보이던지. 그때부터 나는 무조건 여행을 갈 때면 배낭을 메고 다녀야겠다고 다짐했다. 성인이 된 이후 내 지인들은 대부분 캐리어를 끌고 다녔지만, 나는 어린 시절에 꾸었던 꿈을 놓치지 않고 배낭을 고집했다. 비록 배낭의 무게는 내 소중한 허리와 맞바꾸 되긴 했지만.


내 친구들 3명과 함께 한 몽골의 사막 투어는 운전기사 아저씨 1명과, 몽골인 가이드 '솔라' 언니와 우리 4명이 전부였다. '솔라'사무실에서 사막으로 4박 5일 여정을 떠날 준비를 하며 우리에게 물어보았다.


" You have a sleeping bag, right?(너네 침낭은 들고 있지?)"

"..."


짧은 침묵이 흘렀다. 침낭? 침낭이 대체 왜 필요하지? 밥도 주고 잠도 재워준다고 들었는데? 한국에서 몽골 사막 여행을 찾아보았을 때 분명 그런 말은 없었는데 말이다. 우리가 찾은 몽골 사막 투어와 관련된 정보에 의하면 몽골의 사막에서는 볼일을 볼 곳이 없어서 우산으로 뒤를 가린 채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볼 방법밖에 없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야심 차게 들고 온 것은 뒤태 가림막용 우산이 전부였는데 도대체 사막 한가운데에서 침낭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물론 우리에게 이렇게 정보가 없었던 것의 가장 첫 번째 이유는, 그때만 해도 한국 사람들이 몽골 여행을 잘 다니지 않던 때였던 탓도 있었다. 모 사이트에서 찾은 몽골 여행기를 그린 웹툰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몽골 여행을 추진한 내가 검색보다는 몸으로 부딪치는 성격이 큰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복합적인 요인으로 우리 네 명은 모두 잠을 어디에서 자는지도 몰랐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전혀 몰랐다. 그저 상식 선에서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것만 준비했을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모든 여행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다니는 내 성격으로 인해 항상 바람 잘 날이 없었던 것 같다. 결국 '솔라'가 사무실에 남아있는 쓸만한 얇은 침낭 네 개를 우리를 위해 챙겨주었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사막까지는 6시간을 이동해야 했다. 울란바토르 시내는 차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많았는데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차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솔라'는 어릴 때 사막으로 가족 여행을 한 적이 있지만, 길게는 2주간 아무런 다른 사람들도 만난 적이 없었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때도 다른 차량은 거의 보이지 못한 채로 사막에 도착했고, 드디어 처음으로 몽골의 모래로 뒤덮인 사막에 발을 디뎠다. 물론 볼일을 보기 위해서.


어차피 아무도 없는 곳임에도 나름의 현대 문명인임을 자처하며 우리는, 각자 가져온 우산으로 서로를 가려주었고 문득 21세기에 사막 한복판에서 오줌을 누는 그 순간이 약간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나왔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현지인답게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우리의 시선조차 신경 쓰지 않고 정말 프리하게 볼일을 보았다. 우리도 여행이 끝날 때 즈음엔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기사 아저씨의 운전 실력은 정말 신기했는데, 모래와 허허벌판만 보이는 사막 한가운데에서도 어떻게 아는지 길을 다 찾아내서 매번 우리가 가야 할 곳에 정확하게 도착했다. 그렇게 사막에 있는 동굴과 협곡 등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가 운전기사 아저씨가 자신의 집에 가보지 않겠냐며 우리를 그의 집인 '게르'로 데리고 갔다. 그마저도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것이 신기하다고 느껴졌다.


몽골의 사막에 사는 현지인들은 주로 이동식 집인 게르에서 주로 사는우리가 실제로 현지인이 거주하는 게르에 방문해 보는 것은 꽤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기사 아저씨의 집에는 기사 아저씨의 어머니와 네다섯 살 즈음되어 보이는 아기들 두 명이 살고 있었다. 기저씨낙타들과 개도 키우고 있었는데,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낙타는 자그마치 400마리를 키운다고 말했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마셔 보라며 낙타 젖으로 만든 '에리크'라는 몽골 술을 권했다. 시큼한 맛이 나면서 우유 같기도 하고 술 같기도 한 음료였는데, 모두들 한 입 먹고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았고 나 혼자만 끝까지 기분 좋게 마셨다. 그 후, 아저씨는 '아로즈'라는 낙타 젖으로 만든 치즈를 주기도 했다. 몽골에서는 그걸 많이 먹으면 이가 좋아진다는 속설이 있으며, 아저씨의 할머니가 '아로즈'를 먹고 평생 동안 치과를 한 번도 간 적 없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 말을 듣고 '아로즈'를 한 입 베어무는 순간, 나 같은 둔탱이도 그걸 먹는 것은 포기했다.


집에 있는 아기들은 직접 낙타를 몰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영어와 한국어를 사용해서 말을 하기도 했다. 몽골 사막에 살다 보면 학교는 다닐 수 있나 싶은데도 아이들이 똑똑한 것을 보니 어디에 있든 몽골에서도 교육을 열심히 시키는 것 같아 신기했다. 그렇게 잘 쉬었다가 우리가 다시 여행을 떠날 때가 되니 아저씨의 어머니가 국자에 우유를 들고 나와서 뿌리기 시작했다. '솔라'에게 물어보니, 몽골의 엄마들은 아들이 멀리 떠날 때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몽골의 사막에도 밤이 찾아왔다. 우리는 잠을 잘 곳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고, 차 안에 있으니 늘에 쏟아질 법한 별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여전히 신기했던 것은 아무 불빛도 없는 깜깜한 사막 한 복판에서 분명 길이 나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 차의 헤드라이트만 의지한 채 아저씨는 어떻게 길을 알고 그렇게 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몇십 분이 흐르고, 갑자기 아저씨가 차를 세운 후 내린다. 길을 잃은 듯해 보였다. 역시 아저씨도 평범한 인간이긴 했었나 보다. 그렇게 내려서 누군가와 통화를 잠시 하더니, 다시금 어딘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분쯤 달렸을까, 사막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묵을 '게르' 숙소에 드디어 도착했다. 우리 눈에는 그저 허허벌판인데 그 와중에 통화 한 통으로 제대로 된 길을 찾다니. 우리는 모르는 그들만의 길을 찾는 방법이 있는 듯했다.


게르에 도착해서 하늘을 보니 쏟아져 내릴 듯한 별과 별똥별 너무도 아름다웠다. 우리가 가져온 돗자리를 깔고 누워 별을 보며 그 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낭만을 즐긴 것도 잠시, 서서히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가져온 몇 안 되는 옷을 겹겹이 입어 점점 뚱뚱해지고 있었다. 결국 '게르'에 들어가 침낭을 펴고 자리에 누웠는데, '솔라'가 챙겨준 침낭은 너무 얇았고, 결국 우리는 가져온 모든 옷들을 덧대고 덧대어 평소 몸집의 4배를 만들어야만 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위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수면양말을 들고 오긴 했지만 그냥 양말 두 개를 신고 그 위에 수면양말을 신어도 발이 동상에 걸릴 것 같은 기분임엔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잠에 살짝 들었다가 추위에 못 이겨 눈을 뜨고 다시 살짝 잠들었다가 다시금 싸한 바람에 눈을 뜨기를 반복하며 동이 트는 시간을 맞이하였다. 다들 평소라면 아주 늦게 일어났을 텐데도 사막의 밤이 어찌나 추웠던지 모두들 새벽 5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깨서 일출을 볼 수밖에 없었다.


입은 돌아갈 뻔했지만,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눈을 떠 보게 된 일출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광경이었다.


일출 시간, 시간대 별 촬영한 사진
운전기사 아저씨네 아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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