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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Aug 11. 2024

동성애자로 오해받았을 때

L.A에서 생긴 일-Part 1

그런 말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살려면 평생 경쟁을 해야 하지만, 미국에서 살려면 평생 내가 게이가 아님을 증명하며 살아야 한다.'. 미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평생을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드러내며 살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다.


... 우스갯소리인 줄로만 알았다. 나와 K가 하루에 세 번씩 오해를 받기 전까지는.




K는 키 170cm, 나는 160cm(근소하게 160이 안되지만). 우리는 둘 다 펑퍼짐한 티셔츠를 좋아하는 여자들이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입고 다녔는데, 딱히 스타일이 나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K는 오히려 스타일 좋다는 칭찬까지 종종 들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LA에 도착해서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평소 스타일대로 입고 돌아다니게 되었다.


미국에 도착해서 첫날,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Gay friendly'라고 쓰여 있는, 게이 커플이 운영하는 집이었다. 이 숙소를 선택한 이유는 방이 예쁘고 깨끗했으며, 가격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게이 분들이 운영하니까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 컸다.


나는 평소에도 동성애자에 대해 특별히 더 좋다거나 나쁘다는 생각을 가진 적은 없었다. 영화 '캐롤'을 보고 나서, 그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숙소를 정할 때도 거리낌이 없었고, 실제로 집주인분들도 굉장히 젠틀하고 친절했다. 방도 사진에서 보던 것과 같이 굉장히 깔끔했고, 프라이빗한 화장실도 마음에 쏙 들었다.


짐을 풀고, 첫날 저녁엔 맥주 한 잔 마시러 우버를 타고 펍에 갔다. 미국 분위기를 만끽하며 풋볼 경기를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남자가 맥주를 들고 우리 테이블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저 사람 우리한테 오는 거 같은데. 우리 플러팅 당하는 거 아냐?"

"뭐야 뭐야, 우리 둘 중에 누굴 마음에 들어 하는지 한번 보자."


그가 다가와서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왔냐, 여행객이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뭔가 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아, 이분 게이구나.'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본론이 들어왔다. "너희 혹시 커플이야?" 우리는 깜짝 놀라며 "아니!"라고 말했다. 그제야 그는 "아, 그러냐"며 다른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다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뒤에 있던 다른 게이분들이 우리를 슬쩍 보고 있는 게 보였다. 알고 보니, 그분들은 우리를 동양인 레즈비언 커플로 오해하고 신기해서 말을 걸었던 것이었다. 처음엔 미국에서 플러팅 당하는 줄 알고 살짝 설렜는데,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그렇게 약간의 아쉬움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 집 근처에서 흑인 아줌마와 남자분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우리가 지나가자 아줌마가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냐', '여행 중이냐'와 같은 유사한 레퍼토리를 반복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질문이 훅 들어왔다.


"너네는 결혼한 커플이니?"


또 한 번 우리는 펄쩍 뛰며 "아니요!"라고 말했다. 아줌마는 술에 취해서 우리에게 "결혼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아!"라는 이상한 말을 했고, 우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가 레즈비언이라 해도 얘는 안 만난다"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아줌마가 자신이 마시는 술을 몇 잔 권하기에 예의상 한 모금 마셔 보았더니 적어도 60도는 될 것 같은 술이었다. 목이 타들어갈 뻔했다. 그렇게 본인을 'Anti Lorr'이라고 소개하던 아줌마와 몇 마디 더 나누며 친해졌고, 그러다 아줌마는 근처 해변에 가면 몸매 좋은 오빠들이 많으니 내일 가보자며 본인의 전화번호를 주었다. 술에 많이 취해 보였는데 과연 내일 이걸 기억이나 하실까 싶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몇 번의 오해를 받은 후 집에 도착했다. 집주인과 인사를 나누는데, 그제야 깨달았다. 처음 우리가 이 집에 들어왔을 때, 집주인들이 왜 그렇게 궁금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는지. 처음엔 그저 동양에서 온 여행객에 대한 호기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 여자애들이 커플인지 아닌지가 더 궁금했던 거였다. 우리 집주인들은 젠틀한 분들이었기에 우리에게 직접 물어보진 않았지만, 집에서 마주칠 때마다 궁금해하는 눈빛을 보내곤 했다. 우리는 끝까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그 궁금증을 남겨둔 채 LA에서의 여정을 마쳤다.




한국에서는 경쟁하며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에서는 다른 의미로 눈치를 봐야 할 일이 많다는 걸 느꼈다. 며칠 여행 중에 받는 오해야 재밌지만, 매일같이 이런 오해를 받는다면 꽤 피곤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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