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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Aug 14. 2024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받았다

L.A에서 생긴 일-Part 2

여행을 다니면서 나만의 철칙이 있다. 바로 그 나라에 왔으면 그 나라 문화를 제대로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나는 항상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 나라의 언어를 최소한 기본이라도 공부하고 가는 편이다. 다행히도 L.A에서는 따로 공부할 필요는 없었지만, 여기에서는 파티 문화가 흔하다 보니 꼭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Tom'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그가 크리스마스에 자신의 집에서 포트럭 파티를 연다고 우리를 초대했다.

 

영화에서만 보던 미국의 크리스마스 파티라니. 그것도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라니! 우리 둘 다 기대에 잔뜩 부푼 채 그의 초대에 응했다.




포트럭 파티란 각자 음식을 만들어 가져가는 파티를 말하는데, 우리는 어떤 음식을 가져갈지 고민하다가 한국적인 감자전과 계란말이를 만들기로 했다. 간단하면서도 누구나 좋아할 만한 메뉴 같았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아침, 느긋하게 일어나 요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요리가 꽤 복잡했다. 밀가루, 식용유, 소금 등 필요한 재료들이 꽤 많았다. 결국 에어비앤비 주인 오빠들의 식재료를 살짝 빌려야 했다. 특히 감자전을 튀기듯이 굽다 보니 식용유를 거의 다 써버렸다. 결국 우린 마트에 가서 새 식용유를 사다 원래 있던 자리에 살포시 놓아두었다. 새 거니까 괜찮겠지?


우리가 정성 들여 만든 감자전과 계란말이가 드디어 완성되었다. 그런데 음식을 담아갈 그릇이 없는 게 아닌가. 다시 한번 집주인 오빠들의 그릇을 빌려야 했다. 물론 그분들은 현장에 없어서 몰랐겠지만 말이다. 요리는 오전 11시에 시작했는데, 끝났을 때는 이미 오후 3시가 넘었다. 열심히 요리만 했는데도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고, 급하게 음식을 포장해 약속한 4시에 Tom의 집으로 향했다.


Tom의 집은 Silver Lake가 내려다보이는 어마어마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아직 미국 문화를 반만 이해한 것 같았다. 약속한 4시에 딱 맞춰 갔더니 우리가 첫 손님이었던 것이다. '코리아 타임'이 아니라 'LA 타임'도 있었나 보다, 싶었다. 그렇게 먼저 도착한 우리에게 Tom이 집을 구경시켜 주었고, 잠시 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Tom의 집은 그야말로 ‘어메이징’ 그 자체였다. 집도 아름다웠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더욱 아름다웠다. 차가 잘 다니지 않는 위치에 있어서 그런지 여유롭고 고요한 느낌이었고, 집들도 널찍이 떨어져 있어서 더욱 좋았다. 이웃들은 서로 다 아는 사이 같았다. 이웃들이 놀러 오기도 하고, 우리 같은 여행객들도 오기도 했다. 우리는 샴페인과 에피타이저를 즐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뉴욕에서 온 언니들, 캐나다에 사는 중국인, 프랑스 사람, 브라질 사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짧은 영어로도 대화가 된다는 게 신기했다. 한 미국 아저씨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자 기타리스트 ‘김세황’과 친하다고 자랑하며 크리스마스에 받은 문자까지 보여주었다.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김세황은 알았기 때문에 꽤 신기했다.


한 프랑스 아저씨는 본인 직업이 ‘Sexologist’라고 했다. 그게 뭔지 몰라 그냥 가만히 아는 척하며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는데, 다들 ‘역시 프랑스~’라며 웃었다. 19금 드립이 오가는데, 짧은 내 영어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서 그냥 웃고 넘겼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성 연구가'라는 직업이었다. 세상에는 정말 특이한 직업이 많다.


뉴욕에서 온 언니들은 무척 친절했다. 다만, 영어 속도가 너무 빨라서 수능 영어의 다섯 배는 되는 것 같았다.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들었지만, 대화의 20%는 놓치고 말았다. 언니들이 LA보다 뉴욕이 더 친절하고 좋다며 자랑했는데, ‘그럼 친절하게 말 좀 천천히 해주면 안 돼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언니들과 같이 사진을 찍는데, 다들 입을 활짝 벌리고 웃으며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내가 너무 오버한 것 같은 사진 아니냐고 물었더니 미국인들은 원래 그렇게 웃어야 한다고 하더라.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즐거운 사람들이었다.




Tom이 칠면조 요리가 다 됐다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진짜 영화에서만 보던 그 칠면조 요리였다! 각자 가져온 음식들도 함께 놓아두고 먹었는데, 우리가 만든 감자전을 가리키며 누군가 ‘이거 너무 맛있는데 뭐야?’라고 물어봤다. 한국 음식을 자랑하고 싶었지만, 그 마음보다 사실 뉴욕 언니들과의 긴 영어 듣기 평가로 지쳐서 그냥 사람들이 알아서 추측하도록 놔두었다.


식사가 끝난 후, 큰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댄스파티 시간이란다. 장소와 음악을 가리지 않고 모두 춤을 추기 시작했다. 금발의 뉴욕 언니는 산타 모자를 쓴 잘생긴 브라질 오빠한테 엄청 들이대고, 게이 커플 중 한 명도 그 브라질 오빠한테 들이대고 있었다. 남자고 여자고 정말 보는 눈이 똑같은가 보다. 그 뉴욕 언니는 자신의 엄마랑 언니랑 같이 왔는데도 가족들은 신경도 안 쓰고 그렇게 들이대고 있었고 정말 말 그대로의 개방적인 문화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한 구석에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뭔가 했더니 대마초를 피우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던 금기물이 이렇게 쉽게 접할 수 있다니, 나도 마치 미국에서 사는 것처럼 즐거웠던 시간은 가고 순간적인 괴리감이 느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꽤나 큰 마약류에 속하는데 말이다.


캐나다에 영주권을 얻고 미국에서 산다는 중국 오빠는 계속해서 내게 내일 뭐 하냐고 묻고, 한국에 가면 가이드 해달라고 하고, 자꾸 나가서 춤추자고 했다. 물론 그냥 어색함을 덮기 위해 말을 걸었던 걸지도 모르지만, 혹시나 내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잠깐 착각의 늪에 빠져봤다.


파티는 정말 다양한 나이, 인종, 성별, 문화가 섞인 자리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걸 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바닷가에서 비키니도 입고, 클럽에도 가고, 이 날처럼 파티에도 즐겁게 참석해서 춤을 추곤 했다. 이런 모습들이 내 눈에는 삶을 더 주체적으로, 아름답게 사는 모습으로 보였다.


미국에서의 홈파티는 정말 내가 꿈꿔왔던 최고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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