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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Aug 21. 2024

남미의 길거리에서 술에 취한 까닭

페루에서 생긴 일-Part 1

당시의 20대 중반이라는 젊은 피라는 사실 하나 믿고 미친 듯이 맥주를 들이켰다. 분명히 남미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무서운 대륙으로 간다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는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그저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고 느꼈었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낯선 땅 한가운데에서 젊은 여자 둘이 그렇게 술을 마시면 언제나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는 또 운이 좋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L.A에서 출발해서 페루까지 도착하는 여정은 정말 끔찍했다. 악명 높은 미국의 저가 항공인 스피릿 항공을 탔던 우리의 잘못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페루에 간다고 하니 스피릿 항공사 카운터에 있는 아저씨가 페루에서 다른 곳으로 나가는 루트를 보여 달라고 했다.


"아니, 남미를 한 바퀴 여행하고 아르헨티나에서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니깐요?"

"그래도 페루에서 나가는 티켓이 없잖아요. 그걸 보여주세요."


돌아버리겠다. 여행 계획을 면밀히 짠 것도 아니고 그저 여행자로 돌아다니는 건데, 페루에서 나가는 루트를 생각해 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아르헨티나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미리 끊어 놓았기에 그것을 보여주었지만 그건 페루에서 나가는 루트가 아니란다.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아저씨.


페루에서 우리가 불법체류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억울했지만 그가 보여달라고 하니, 결국은 구석으로 가 그 자리에서 페루에서 나가는 버스 티켓이라도 일단 끊기로 한다. 그렇게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가는 버스를 구매하는데 또다른 문제가 생겼다. 우리 둘 모두의 카드가 어플에서 작동을 하지 않는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어려웠다. 한국은 새벽 3시가량 된 시간이었던 탓이다.


실례를 무릅쓰고 K의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 내 남자친구인 M도 전화가 되지 않았다. 부모님은 전화하면 받을 수 있겠지만 티켓을 대신 끊어달라며 어플에 입력하도록 하나하나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비행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어느덧 20분 정도의 시간만이 남아 있었다.


아무리 카드 번호를 입력해도 결제가 되지 않았고 시간은 다가오고 나도 모르게 긴장과 당황과 조급함 그리고 황당함으로 인해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결국엄마에게 부탁하기로 하고 전화를 걸었다. 엄마에게 스피커폰으로 어플에 들어가 버스 티켓을 결제하는 방법을 설명을 하면서도 긴장감에 눈에서 눈물이 나고 있었다. 그렇게 15분 즈음 걸렸나, 드디어 티켓 구매에 성공하였다. 성공하기가 무섭게 갑자기 스피릿 항공사 카운터 직원이 우리를 부른다. 얼핏 보니 그냥 보내주려 하던 기세였다. 진작 보내주던가..


아무튼 우리는 그에게 페루에서 나가는 버스 티켓을 구매했다며 보여주었고 결국 무사히 비행기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5분을 남기고 겨우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그즈음에 M과도 연락이 닿아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M이 한다.


"근데 그냥 부모님 카드 번호만 받아가서 어플에 너네가 입력하면 되는 것 아니야?"


오 마이갓. 여러분, 멍청이들 두 명이 여기 있어요! 우린 그 쉬운 방법을 왜 몰랐을까. 이래서 머리가 안 좋으면 몸이 사서 고생을 하게 되나 보다.




L.A에서 라스베이거스로 이동후 그곳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페루의 리마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중간에 트랜스퍼가 되는데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자그마치 10시간을 기다려서 트랜스퍼를 해야 했다. 라스베이거스의 공항엔 그 이름답게 수많은 카지노 기기들이 있었지만 돈도 없고 할 줄도 모르는 우리는 그저 구경만 했다.


10시간은 끔찍이도 느리게 흘렀다. 카지노 기기 말고는 볼 것이 없는 공항에서 노숙을 마친 뒤 겨우 비행기에 탑승해서 페루에 도착했고, 우리는 바로 호스텔 숙소에 들어가 잠에 빠져들었다. 일어나 보니 이미 밖은 꽤나 어둑해져 있었다. K에게 밖에 돌아다니며 맥주라도 하자고 했고 호스텔의 직원들에게 주변 지역의 치안에 대해 물어보니 괜찮지만 너무 늦게만 다니지 말라고 한다.


전날의 끔찍했던 기억들이 아직도 가시질 않았다. 어찌 맥주가 땡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호스텔에서 15분 정도 걸으니 호프집들이 모여있는 거리가 있었다. 관광객들이 많이 있었고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직원들이 자신들의 가게에 들어오라고 아우성이다. 그나마 저렴해 보이는 곳으로 갔다.  


'피스코 샤워'가 유명하다기에 한 번 시켜보았는데, 너무 독했다. 우리의 갈증을 가시게 할 수 없는 맛이었고 결국 우리는 메뉴에 있던 '1리터' 맥주를 시켰다. 내 얼굴보다 커 보이던 맥주였는데 1잔에 4천 원 정도 하는 가격이었다. 미국에 있다가 남미로 넘어오니 물가가 천국이다.


그렇게 K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찌나 갈증이 났던지 1리터가 금방 동나버렸다. 저렴한 물가에 취해버린 우리는 바로 1리터 맥주를 한잔씩 더 시켰고, 각자 피스코샤워 1잔과 맥주 2리터를 마신 후 우리는 거하게 취해버리고야 말았다.



눈을 떠보니 나는 호스텔 내 침대 위에서 자고 있었다. 기억이 조각조각 흩어져 있었다. 얼핏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분명히 가게에서 나올 때 술에 취했었고, 가게 앞에서 우리를 호객하던 아저씨와 길거리에서 살사 댄스를 추던 것이 생각났다. 그렇게 춤을 춘 뒤, 그 아저씨는 일 끝나고 제대로 춤을 추러 갈 거라며 어떠한 장소로 우리를 초대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장소에 갔던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을 보니 다행히도 그곳엔 가지 않았던 듯하다. 몸치에 가까운 내가 길거리에서 춤을 춘 기억을 떠올리니 얼굴이 화끈거렸고 이불을 몇 차례 발로 뻥뻥 차야만 했다.


그러더니 조각조각 또 다른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호스텔에 돌아왔더니 호스텔에서도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너무 술에 취해 거기에 있던 여행자들과 몇 마디 나누고 미드에서 흔히 보던 맥주잔에 탁구공을 넣는 술게임 몇 판만 했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조차 기억에 나지 않았다.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는 걸 보니 쓸데없는 짓을 하지는 않았나 보다. 새벽 1시 즈음에 방에 들어와 잠에 들었던 것 같다. K에게 물어보니 본인은 새벽 3시까지 놀다가 들어왔단다. 대단한 녀석.


우리의 여정이 얼마나 고되었었으면 그렇게 쾌락을 찾아 떠났던 것일까. 물론 이는 핑계고, 사실 정말 위험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안다. 페루라는 남미 국가에서 길도 잘 모르면서 그렇게 밤 10시 넘어서 길거리를 무방비 상태로 다녔다니. 그 후로 K와 나는 약속했다. 다시는 술을 1잔 이상 마시지 않기로.


그날도 역시나 운빨로 사했을 에게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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