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와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 등산 비슷한 것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저 1박 2일 산행을 하면서 산 중턱에 있는 마을에서 묵는다는 것만으로 설렘이 가득할 뿐이었다. 그 거리가 총 18km가 된다는 사실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특히 그날이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날이었으니 우리의 기대감만 배가 되었다.
등산을 할 때의 준비물에 대한 지식도 하나 없었던 우리는 작은 힙색에 우산 하나와 물 한 병, 그리고 과자 한 개만 달랑 넣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페루 아레키파에 도착해 여행사를 돌아다니다, 한 아저씨에게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1박 2일 트레킹과 삼시 세 끼를 제공하는데 115 솔(한화 약 4만 원)이라니, 우리가 예상했던 예산에 딱 맞았다. 아저씨는 우리를 설득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자, 1박 숙소에, 가이드, 삼시 세 끼까지 전부 포함해서 95 솔이야. 다른 데 가면 여러 사람과 방을 공유해야 할 수도 있는데, 너네는 프라이빗 롯지에서 묵을 수 있게 해 줄게. 근데 혹시 모르니까 너네가 먹을 과자는 챙겨 와."
그의 말솜씨와 손짓에 우리는 홀린 듯 결제를 하고 말았다. 마지막 날 점심은 추가비용 20 솔(약 8천 원)이라기에 그것도 신청했다. 사실 고산병 때문에 몸도 지치고 정신도 없어서, 웬만한 건 그냥 '오케이' 하고 말았다. 출발은 다음 날 새벽 3시. 일찍 떠나는 게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드디어 1박 2일 트레킹 로망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며 새벽 2시에 알람을 맞추고 잠에 들었다.
새벽 2시에 알람이 울린다. 이제 막 잠에 든 것 같은데 벌서 일어날 시간이라니. '대체 왜 이걸 한다고 했지?'라는 후회의 1분과 알람을 5분씩 미루기를 두 번이나 반복한 후, 겨우 몸을 일으켜 씻기 시작했다. 호스텔에 짐을 맡기고 밖에서 기다리는데, 남미의 치안 문제 때문인지 모든 문이 철문, 돌문, 쇠문으로 단단히 잠겨 있었다. 아레키파는 그나마 안전한 편이라고 들었는데도 말이다. 호스텔 담당자가 직접 문을 열어주었고, 우리는 마침내 출발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우리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눈을 떠보니 차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탑승해 있었고, 남미 사람 5명, 영국인 4명, 미국인 1명, 폴란드인 2명, 그리고 우리 둘로 총 14명이었다.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의 함께 하는 여행은 언제나 신선하고 즐겁다. 그럼에도 고산병으로 인해 피곤한 것이 먼저였기에 그들과의 대화를 미루고 다시 눈을 감고 스르르 잠에 들었다. 그러다가 가이드의 아침을 먹으라는 소리에 일어났다. 그곳에서 주는 아침은 정말 부실했다. 우유, 오트밀, 마른 빵 정도. 전날 아저씨가 왜 과자를 꼭 챙기라고 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배고픔을 간신히 참고 트레킹을 장소에 도착했다.
트레킹을 시작했지만 함께 투어를 시작한 외국인들은 우리에게 말을 잘 걸지 않았고, 우리도 먼저 나서서 말을 걸진 않았다. 그들이 묻는 말엔 친절히 답했지만, 고산병에 시달리며 피곤함이 극에 달했던 우리에겐 모든 게 귀찮았다. 1박 2일 트레킹의 로망도 없어진 지 오래였다. 아마 그들은 우리가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한 시간 즈음 걸었을 때였을까, 가이드가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키며 우리가 점심 먹을 곳과 오늘 밤 묵을 곳을 알려주었는데, 나와 K는 웃음이 터졌다. 어디를 가리키는지도 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 곳이었다. 괜히 한다고 했나, 약간의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산행을 해본 적도 없는 우리가 오르락내리락 산을 넘나들며 3시간을 걷는 건 정말 힘들었다. 돌길이 펼쳐지면 발이 휘청거리기 일쑤였다. 그래도 오전 3시간은 비교적 견딜 만했다. 점심도 여전히 부실하게 나왔다. 다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는 곳이었는데, 같은 팀의 외국인들이 우리가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앞에 있던 영국 언니가 우리 영어 할 줄 안다고 했지만, 고산병에 시달리며 대답하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웃어만 주었다.
점심을 먹고 나와서 오후 코스를 시작했는데, 하늘에서는 비마저 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산도 하나밖에 없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척척 비옷을 꺼내 입는 것이었다. 우리의 준비성이란. 우산도, 간식도, 힙색 하나로 1박 2일을 버티려 했던 우리도 스스로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다행히 비는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곧 그쳤다.
그러자 이제는 돌길의 연속이 시작되었다. 경사진 오르막길에서는 10미터 오르고 쉬고, 또 오르고 쉬어야만 했다. 오후 코스의 3시간이 30시간처럼 느껴졌다. 마라톤을 했다던 영국 언니도 힘들어하며 우리와 함께 뒤에서 걸었다. 가이드가 중간중간에 페루의 전통 차와 과일들을 설명하며 주었지만, 힘들어서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30시간 같은 3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우리가 묵을 롯지에 도착했다. 풀장도 있고,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나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았고, 비는 오고, 숙소에서는 불빛 하나 없어서 휴대폰에 의존해야 했다. 우리는 샤워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한국인들이었기에, 샤워를 하러 갔지만 빛도 없는 곳에서 얼음장 같은 샤워기만 있을 뿐이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 앞에서 망을 보며 휴대폰 플래시를 비춰주며 번갈아 샤워를 했다.
얼음장 같은 물로 3분 만에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데, 외국인들은 그 추운 날씨에도 수영장에 들어가 있었다. 그들은 그 얼음장에서 샤워를 하는 우리를 대단해했고, 우리는 그 추운 곳에서 수영을 하는 그들을 대단해했다. 저녁을 먹으며 가이드가 다음 날 트레킹 대신 당나귀 타고 올라갈 사람이 없냐고 물었고, 우리는 고민 끝에 손을 들었다. 둘 다 하필 그날 한 달에 한 번 오는 대자연의 시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먹으며 함께 트레킹을 한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제야 그들은 우리가 영어를 꽤 할 줄 안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 같다. 외국인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그래도 그럴 기회가 잘 없기에 순간순간을 즐겼다. 롯지에서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며 상그리아를 무제한으로 마음껏 마시게 나누어 주었다. 피곤하지만 않았더라도 10잔은 마셨을 것 같은데, 서너 잔만 마시고 너무 피곤했던 우리는 방으로 들어왔다. 새해를 함께 맞이하고 싶었지만 우리는 9시도 되지 않아 잠에 빠져들었다. 물론 중간에 새해를 맞이하며 터지는 폭죽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방에서 나오진 않았다.
아침이 되었고 몸을 일으켰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리에 알이 잔뜩 베여 있었고, 힙색을 메고 걸어서인지 어깨도 빠질 것 같았다. 어제 당나귀를 타고 돌아가는 길을 신청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당나귀를 타고 가다 보니 어제 함께 걷던 팀원들을 중간에서 만났다. 끝까지 함께 걷기를 포기하고 당나귀를 탄 것 같아 괜스레 자존심이 상했지만, 오르막길이 너무 힘들었는지 오히려 함께 간 팀원들은 우리를 부러워했다.
마지막 코스는 온천이었다. 코스도 사실 제대로 모른 채 갔었는데 따스한 물에 들어가니 살 것만 같았다. 그곳에 들어가 피로를 풀었고, 20 솔짜리 뷔페식 점심식사를 하러 갔는데 정말 맛있었다. 역시 끝을 좋게 해 주어야 다들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일지 마지막 만찬은 어딜 가도 항상 맛있다.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산행을 해 본 것에 대해 꽤 흥미롭고 뿌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하이킹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무모한 1박 2일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첫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뿌듯하지만, 다음 날 정상적으로 걷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까.
이번 트레킹을 하면서 인생을 느꼈다. 목적지까지 한도 끝도 없이 멀어 보였는데 내 눈앞에 놓인 돌 하나를 보며 '이 돌계단 하나 오르면 목적지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니 견딜만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니 결국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머나먼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 힘들지만, 눈앞의 돌길 하나씩 넘다 보면 언젠가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도착해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