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잔잔 Sep 28. 2024

오락실, 세계 과자점, 다이소

Ep 10. 오빠의 취미 생활

몇 년 전, 부모님께서 유럽 여행을 떠나셨고, 나는 오빠와 함께 집에 남게 되었다. 평소에는 주말마다 부모님이 오빠를 데리고 외식을 하거나 놀러 다니시곤 했지만, 그때는 부모님이 없었으니 오빠가 많이 심심할 것 같았다. 나는 평소에도 친구들과 약속을 쉽게 잡을 수 있었지만, 오빠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소같았으면 부모님이 계셨기에 내가 오빠의 주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왠일인지 평일에 열심히 일한 오빠가 주말에 혼자 있으면 지루해할 것 같다는 이타적인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언젠가 오빠를 챙겨야 할 때를 대비한 연습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빠와 특별한 주말 데이트를 하기로 결심했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내가 고등학생 때 자주 가던 파스타 집이 떠올랐다. 짭조름한 맛이 특징이어서 어렸을 때는 좋아했지만, 성인이 된 후로는 거의 가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오빠는 그곳을 좋아할 것 같았다. 예상대로 오빠는 치즈 오븐 스파게티를 시키며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밥을 먹고 난 후, 내가 생각한 다음 코스는 오락실이었다. 내가 어릴 때 종종 가던 오락실이었는데,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오빠의 눈이 반짝거렸다.


"나 어릴 때 많이 갔던 데네!"


같은 곳은 아니었지만, 어릴 적 엄마가 가끔 오락실에 데려가 주셨었다고 했다. 오빠는 총 게임도 하고, 자동차 게임도 하였으며, 인형 뽑기까지 시도해 보았다. 오락실 안에 있는 코인 노래방에도 들어가 30분 동안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나왔다. 오빠는 오랜만에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그 이후로 오빠는 교회를 다녀오는 길에 혼자 오락실에 들르곤 했다. 매번 무언가를 사 먹고 남은 동전을 모아 한 움큼 들고 오락실에 갔다. 엄마도 처음엔 오빠의 새로운 취미를 용인해 주셨다. 그러나 점점 오락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인형 뽑기로 3만 원 넘게 날린 것을 알게 되자 결국 '오락실 금지령'이 떨어졌다. 그 후로 오빠는 두 달에 한 번씩만 오락실에 갈 수 있었고, 그날을 위해 동전을 꼬박꼬박 모으는 버릇이 생겼다.




오빠의 또 다른 취미는 물건을 사는 것이다. 요즘에는 세계 과자점과 다이소를 자주 들른다. 단 것을 좋아하는 오빠는 혼자 세계 과자점에 들러 새로운 과자를 몰래 사 오고는 한다. 그리고 그 과자들을 방구석구석에 숨겨 놓는다. 보이는 곳에 두면 또 불량식품을 사 왔다며 부모님께 혼나기도 하고, 가끔 내가 몰래 훔쳐먹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이소에서는 쓸데없는 물건을 자꾸 사 온다. 물건을 정리한다며 이상한 정리함을 사 오기도 하고, 공책이나 볼펜을 종류별로 사기도 한다. 너무 자주 사러 다니다 보니 불필요한 물건들이 쌓여, 부모님께 '다이소 금지령'도 받게 되었다.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다이소 금지된 것이다. 


부모님은 오빠에게 경제관념 교육을 시키기 위해 말씀하시곤 한다.


"네가 하루에 시급 1만 원 정도 벌면 8만 원이 되는데, 오락실 인형 뽑기 하느라 힘들게 번 돈을 날리고, 다이소에서 쓸데없는 물건 산다고 하루 동안 열심히 번 돈을 다 쓰는 거야."


그리고 오빠가 가장 무서워하는 말을 덧붙이신다.


"결혼하고 싶다며. 결혼 자금 모은다며. 그러면 돈을 불필요한 데 써서 되겠어?"


첫 번째 말은 크게 와닿지 않는 듯하지만, 두 번째 말 금방 알아듣고 겁을 먹는다.


"아니, 이제 안 살래."


나는 밖에서 내가 쓰는 돈만큼 오빠가 다이소나 오락실에서 쓰는 것은 아니다 보니, 오빠가 심심할 텐데 그거라도 하게 해 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보시기엔 오빠가 너무 쉽게 물건을 사고, 돈을 낭비하며, 또 부모님과 함께 다니지 않아 또 다른 문제에 얽힐까 봐 걱정하신 것 같다.


그렇게 오빠의 취미는 부모님으로부터 어느 정도 제약을 받았지만, 그래도 오빠는 그날만을 기다리며 한 주 한 주를 살아간다. 그나마 세계 과자점에서 과자를 사 올 때는 몰래 숨겨서 집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부모님으로부터 금지령을 받아도 몰래 사 오기도 한다. 그 작은 낙이라도 있는 게 어디인가 싶어서 부모님도, 나도 그 정도는 알면서 눈을 감아주기도 한다.


이렇게 오빠는 작은 즐거움을 통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스스로 찾아가며 작은 변화와 성장을 해 나가고 있다. 



이전 10화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