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고 힘들 땐 내게 기대 - 카스텔의 집합소비론
우리나라에서 늘 문제 되는 것 중 하나는 집값인 것 같다. 집이 인간적으로 너무 비싸다. 안 그래도 비싼 집을 더 비싸게 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인프라이다. 우리가 흔히 인프라라고 사용하는 용어는 하부구조를 뜻하는 인프라스트럭쳐(infrastructure)의 줄임말이다. 사회간접자본(social overhead capital)이라고도 한다. 인프라란 도로, 철도, 전력, 수도와 같이 생산 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기반시설을 뜻한다. 도로가 직접적으로 빵을 생산하는데 쓰이지는 않지만, 도로가 없으면 빵을 만들 밀가루를 수송할 수 없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생산에 필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프라는 우리 사회 구성원이라면 무상으로 혹은 약간의 요금을 지불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사회’+‘간접’ 자본인 것이다.
인프라에는 많은 시설들이 포함되어 있다. 좁게 보면 경제, 건설, 교통 부문의 시설들이 있고, 넓게 보면 학교, 도서관, 공원 등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생활 SOC(social overhead capital)가 있다. 특히, 도보 5~10분 거리에서 이용할 수 있는 생활 SOC가 중요해졌는데, 동네에서 생활에 필요한 활동들을 모두 할 수 있다는 점이 포인트이다. 이렇게 인프라는 주민들의 삶과 직결되기 때문에 집값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집 근처에 학교, 지하철, 간선도로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학군, 직장 출퇴근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이에 따라 집값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다. 그래서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와 역세권 등 주변 인프라가 잘 갖춰진 집이 다른 집보다 더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지하철역 신설이나 연장, 학교나 기관 유치 등
인프라 호재가 발생하면 집값이 급등하기 마련이다. 삶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프라는 도시민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김 씨가 마포에 살게 된 배경 역시 인프라, 특히 교통 시설의 영향이 컸다.
반대로 주변에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으면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은 뚝 떨어진다. 학교가 애매하게 멀면 아이들이 멀리 걸어가야 하고, 교통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으면 가까운 거리도 빙 둘러 비효율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삶의 질의 문제로 부동산 시장에서는 주변 인프라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도시에서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프라는 누가, 왜 지어주는 것일까? 오늘의 사회학자를 만나 도시의 인프라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마누엘 카스텔(M. Castells)은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하여 1970년대에 혜성처럼 나타난 신(新)도시사회학자였다. 당시 미국 도시사회학계를 주름잡던 주류 이론은 우리가 일전에 다룬 적 있는 시카고학파의 도시생태학이었다. 도시생태학은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집단 간 균형을 유지하며 도시공간이 형성될 것이라고 보았다.
반면에 카스텔은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 간 갈등에 초점을 맞추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도시생태학을 비판하였다. 카스텔은 도시 내의 공간 형성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단들 사이의 투쟁과 갈등에 기반한 사회운동처럼 복잡한 사회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적 토대 위에서 도시를 균형이 아닌 갈등의 장으로 해석한 그의 시각은 도시문제(The Urban Question)라는 저서에 집약되어 있다. 도시에서는 왜 이러한 투쟁과 갈등 상황이 벌어질까?
알다시피 자본주의 사회는 상품을 생산하여 판매하고 이윤을 남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마르크주의에 따르면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활동을 지탱하는 것은 바로 ‘노동’이다. 상품이라는 것은 자본가가 가지고 있는 공장, 자본, 토지 등의 생산수단만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재료에 가치를 부여하는 마법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노동이다. 노동자들이 지급된 원료와 도구를 사용해서 직접 밀가루를 반죽하고 구워야만 빵이 나오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가 이윤창출이라는 목적을 이루도록 자본주의 사회를 안정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것은 바로 노동자인 셈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노동자들은 로봇이 아닌 사람이다. 사람이기에 기력이 한정되어 있다. 노동자가 지치고 힘든 상태에서 제대로 노동을 할 수 있을까?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뽑아먹을 만큼의 충분한 노동 효율성이 나올 수 있을까? 지속적이고 꾸준하게 상품을 생산하고자 한다면 자본가 역시 노동자의 상태를 고려해야만 한다. 노동자가 강도 높은 노동 후에 다시 생산과정에 투입되려면 몸을 충분히 회복하고, 노동력을 ‘재생산’ 해야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것이 ‘소비’이다.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위해 집을 임대하거나, 더 효율적인 노동을 위해 교육을 받고, 더 빨리 집에 가서 쉬기 위해 급행열차를 타며,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 집, 학교, 대중교통, 병원 등 우리가 인프라라고 부르는 모든 것이 소비의 대상인 것이다. 이러한 소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노동자는 시름시름 앓으면서 제대로 일하지 못할 것이고, 자본가에게도 손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즉, 노동자가 인프라를 소비하지 않고는 생산이 불가능하다!
카스텔은 이러한 맥락에서 도시를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집합적 소비(collective consumption)'의 공간 단위로 규정하였다. 인프라는 혼자서 소비하는 시설이 아니다. 이재용 회장님도 학창 시절에는 학교에 다니는 수많은 학생들 중 한 명이셨을 것이다. 도시에 함께 모여사는 사람들이 다 같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프라의 소비는 도시에서 집합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어야만 도시의 노동자들은 노동력을 재생산해서 다시 일터로 나가 자본주의 사회의 산업 역꾼으로 활동할 수 있다.
이러한 도시의 인프라는 누가 짓는 것일까? 당연히 노동력 재생산을 가장 필요로 하는 기업...이 아니다! 대부분의 인프라의 경우, 국가 혹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부문의 주도로 만들어지고, 직접 만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의료시설, 교육시설을 포함한 다양한 인프라에 공공부문의 보조금이 들어간다. 어마어마한 자본이 소요되고, 수익이 담보되지 않아 자본가는 단독으로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 지하철을 놓으려면 철도를 깔아야 하고, 그 철도를 까는 곳에 있는 토지 소유자들에게 보상을 해야 하며, 열차를 구매하고, 역을 운영할 직원들을 고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지하철 운임비를 올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 이윤 추구를 제1목적으로 하는 자본가가 이 모든 것을 감안할 리가 없다.
노동력을 재생산해야 한다는 필연성과 이윤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자본주의적인 욕구 사이에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누구도 인프라 구축에 나서지 않는다면 피곤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국가가 자본가를 대신하여 인프라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배분하기 위해 개입하게 된다. 이로 인해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비용은 국가가 부담하면서, 노동력 재생산으로부터 나오는 이득은 자본가가 챙기는 ‘비용의 사회화와 수익의 사유화(socialization of costs and privatization of profits)’ 현상이 발생한다.
국가는 노동자들이 모여사는 도시에 도로, 공공시설, 공공주택 등 자본주의 경제활동에 필수적인 인프라를 짓게 되는데, 당연히 이 인프라를 운영하려면 재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프라를 운영해서 얻는 이윤이 투자금보다 훨씬 적고, 국가 재정 역시 화수분처럼 계속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인프라 때문에 국가는 재정 위기를 마주하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려면 세금을 더 걷어야 하겠지만, 성난 민심이 걱정되어 무작정 세금을 크게 인상할 수도 없다. 그러면 마지못해 복지를 줄이거나 비싼 돈 들여 만든 인프라를 기업에 팔아 민영화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러한 재정 위기 때문에 1980년대에 영국은 복지정책을 축소하고, 인프라 운영의 민영화를 단행하였다. 여기에 미국까지 동참하면서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는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세금 인상이나 인프라 지원 축소는 도시의 집합적 소비에 큰 타격을 주고,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도시문제를 만든다. 이에 따라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불만과 저항의 불길은 사회운동(social movements)으로 번지게 된다. 즉, 자본가를 위해 국가가 대신 손해를 감수하여 발생한 집합적 소비의 축소는 결국 도시를 무대로 한 사회운동을 초래하는 것이다. 도시에서의 사회운동을 통해 시민들은 모순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며, 집합적 소비의 질 저하로 인한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집한다.
인프라의 질 저하로 인해 안 그래도 힘들고 지치는 일상이 배로 힘들어져 시민들이 반발하는 경우는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이제 카스텔의 렌즈를 빌려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인프라 문제와 사회운동 양상을 관찰해 보도록 하자.
우리나라 수도권 지역 특성상 서울로의 출퇴근이 많다. 김 씨의 고향 고양시, 구리시, 하남시 등 서울을 둘러싼 경기도 지역에서 특히 그렇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출퇴근 시에 우리는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빽빽한 대중교통을 타고 회사에 출근하면 벌써 그날 에너지 총량의 반이 없어진 느낌이다. 하루 일을 마치고 방전 상태에서 또다시 대중교통을 타고 귀가하는 것도 정말 못할 짓이다.
그렇기에 카스텔이 이야기한 것처럼, 좋은 교통 인프라를 도시에서 집합적으로 소비하는 것은 노동력 재생산, 즉 노동자가 새 힘을 얻고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 하지만 철도와 같은 교통수단은 구축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따라서 노동력 재생산의 수혜를 얻는 기업이 아니라, 국가 혹은 지자체 같은 공공부문에서 이를 담당하고 운영하게 된다. 부담은 공공부문이 지고, 이득은 자본가가 얻는 이 모순적인 구조에서, 시민들이 이용하는 인프라의 질 역시 저하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카스텔의 렌즈로 살펴볼 도시는 바로 김포이다. 김포는 전체 인구 중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구가 12.7%나 될 정도로 서울 의존도가 심각하다. 김포 내에서 자족성을 키워 서울 의존성을 줄이는 게 베스트이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김포의 직장인들을 서울로 원활하게 실어 나를 교통수단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 인구 47만 명의 김포는 본래 이 정도로 큰 규모의 도시가 아니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김포시는 인구 20만 대 언저리의 도시였다. 그 당시에는 김포대로가 서울로의 수송량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포의 도시계획으로 사우지구, 풍무지구의 택지개발이 진행되고, 김포한강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인구가 급증했다. 불과 10여 년 만에 인구가 두 배가 되었다. 이러한 인구 급증에 따라 김포대로의 부담을 덜만한 추가적인 교통수단이 필요했다. 그 필요성에 따라 구축된 교통 인프라가 바로 2019년에 개통된 김포골드라인이라는 무인 경전철이다.
애석하게도 김포골드라인은 국내 최악의 지옥철이라고 인식되며, '김포골병라인'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왜일까? 처음 김포시는 김포의 성장으로 인한 인구 증가를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인구 급증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김포골드라인 역시 교통 수요에 맞게 설계되지 않았다.
김포골드라인 신설로 편안한 출퇴근을 기대했던 김포 시민들의 기대와 달리 김포골드라인은 밀려드는 출퇴근 교통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에는 열차를 이용하려는 승객들의 줄이 승강장은 물론 대합실과 환승통로까지 빼곡한 진풍경이 펼쳐진다. 한 번에 열차를 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기다렸다가 두 세대는 보내야지 겨우 탈 수 있다. 이러한 최악의 혼잡도로 시민들은 매번 압사사고, 과호흡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실제로 거의 5일에 한 번 꼴로 실신 사고가 있다고 한다. 최고 혼잡률이 무려 285%이다.
이러한 최악의 지옥철은 누가 만든 것일까? 100% 김포시에 의해 만들어졌다. 도시철도법상 도시철도 건설 분담은 통상적으로 국비 60%에 지방자치단체 40%이다(서울시는 국비 40%에 서울시 60%). 경우에 따라 비율이 달라질 수는 있는데, 김포골드라인의 경우 총사업비 1조 5086억 원을 김포시 재정과 김포한강신도시 입주민들의 교통분담금으로 충당하였다. 김포골드라인은 이렇게 기초자치단체 재정만으로 구축한 최초의 도시철도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원래 4량으로 계획되었었던 김포골드라인은 시의 재정 부담 문제로 인해 2량으로 축소되었고, 플랫폼은 확장이 불가능한 형태로 설계되었다. 즉, 교통 수요 급증에 따라 열차 칸을 더 늘리고 싶어도 못 늘린다! 시 예산 1,500억 원 정도를 절감하긴 했다만, 이내 김포시의 택지개발과 인구 증가를 감당 못해지옥철로 변한 것이다.
어찌저찌 운영하면서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는데, 김포골드라인의 철도 운영비가 부족해 파산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거기에 저예산으로 인해 인력난이 발생했는데, 출퇴근 시간에 역 하나를 직원 한 명이 관리해야 하는 상황까지 됐다. 이런 상황에서는 승객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카스텔이 이야기한 것처럼 공공부문이 노동력 재생산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결국 인프라의 질을 낮춰 김포골병라인을 만든 것이다. 미래에 대한 고려 없이 시의 재정 상황에 맞춰 만들어진 김포골드라인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 실패했다. 시민들이 편히 집과 직장을 오가지도 못하는데 무슨 노동력 재생산을 논하겠는가!
이런 도시 생활의 불편함은 시민들의 사회운동을 초래했는데 그것이 바로 2021년에 시작된 ‘너도 함 타봐라’ 챌린지이다. ‘너도 함 타봐라’ 챌린지는 김포시민 한 명이 김포 지역 온라인 카페에 올린 글로부터 유래되었다. 김포골드라인을 탈 필요 없이 편히 이동할 수 있는 정관계 인사들에게 김포시민들의 불편함을 직접 느껴보라는 의도인 것이다. ‘너도 함 타봐라’ 챌린지가 이슈가 되면서, 김포시장, 김포 지역구 국회의원, 정당 대표, 국토부 장관, 대통령 후보들까지 김포골드라인을 직접 경험하였고, 하나 같이 ‘힘들다’는 소회를 밝혔다. 특히 2021년 당시 김포시장은 이건 교통이 아니라 ‘고통’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챌린지 덕분일까, 최근 8월 30일, 김포시는 김포골드라인 출퇴근 시간에 열차 2개 편성 추가 투입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현재 3분대였던 배차 간격이 2분대로 줄어들 전망이다. 또한 국비 153억 원을 추가로 확보하여 2026년 말까지 현재 28편인 열차 수를 34편까지 늘릴 예정이다. 물론 근본적인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인프라와 관련된 도시의 문제 상황에서 한 시민으로부터 시작된 사회운동이 작게나마 변화를 이끌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인프라의 집합적 소비는 김포골드라인처럼 주목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 우리 눈 밖에 있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의 인프라는 도시개발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던 1970~80년대 사이에 주로 구축되었다. 오래된 경우에는 벌써 50여 년 전이다. 2016년에 조사했을 당시 우리나라 공공 인프라 시설물 중 약 10.3%가 30년 이상된 노후 인프라였다. 그리고 2030년까지 노후 인프라의 비율이 44.3%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철도의 경우 37%가 30년 이상된 노후 인프라였고, 도시개발의 역사가 깊은 서울의 경우 노후화된 도로시설물이 무려 63%라고 한다.
아무리 처음 만들어질 때 잘 만들어졌어도 세월 앞에는 장사 없듯, 노후 인프라는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실제로, 개발된 지 30여 년이 지난 일산신도시 백석역 인근에서 2018년에 노후된 난방공사 온수배관이 파열되어 1명이 사망하고 41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집합적으로 소비하는 인프라의 점검과 재구축이 필요하다. 누가 이를 담당할까? 아마도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부문에서 담당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또 한정된 재원으로 충분히 안전하고 편리한 수준의 인프라를 구축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여기서 피해를 보는 것은 집합소비의 공간인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들일 것이다.
최소한적인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공공부문에서 지원하는 인프라를 통해 자본가가 비용을 사회화하고 수혜를 사유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 시작점은 도시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작은 목소리로부터이다. 이 작은 변화의 목소리들이 모여 사회운동이 본격화될 때, 우리는 더 안전하고 편리한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인프라의 미래는 결국 카스텔이 이야기한 것처럼 시민들의 결집과 사회운동에 달려 있다. 집합적 소비 공간이면서 사회운동의 공간인 도시에서 외쳐봤으면 좋겠다. 그 인프라 “너도 함 이용해 봐라!”
마누엘 카스텔은 1942년에 태어난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 사회학자이다. 마르크스주의 토대 위에서 도시사회학의 새로운 장을 연 카스텔은 1967년 프랑스 파리대학에서 파리 지역의 산업입지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12년간 파리대학 교수로서 도시사회학을 가르치며 도시구조론, 도시사회운동론 등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도시사회학의 새 장을 열었던 카스텔은 그에게 더 큰 명성을 안겨준 ‘네트워크 사회’ 연구에서도 선구자가 되었다. 그의 정보시대 3부작인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 ‘정체성의 힘’, ‘밀레니엄의 종언’은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핵심 요소로 떠오른 ‘정보’를 통해 네트워크가 자본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과정을 논의한다.
최근에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석좌교수로서 도시계획학, 도시사회학, 커뮤니케이션학 등 그의 전문 분야를 연구하고 있고, 유럽혁신기술연구소 집행위원회 구성원으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도시사회학과 네트워크 사회학의 대가인 카스텔은 헌재까지도 사회학 분야에서 인용지수 7위를 기록했을 만큼, 그의 이론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해석하는 데 큰 시사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