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신혁 Nov 09. 2024

유동하는 시대와 불안한 도시

인생이란 강물 위를 끝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 바우만의 액체근대


1. 불안한 사회     


    나이가 좀 들다 보면 “옛날이 좋았지”하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어느 나라이건 ‘황금기’라고 불리는 시대가 있고, 우리는 그런 황금기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32세 김 씨는 살아보지 못해 좀 아쉽지만, 우리나라의 황금기는 1980년대이지 않을까 싶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화가 결실을 맺어 3저호황(저금리, 저유가, 저달러)으로 단군 이래 한반도 최대 전성기를 맞이했던 때이다. 경제성장기였기에 취업이 그리 어렵지 않았고, 웬만하면 입사 후 정년까지 보장되는 평생직장 개념이 있어 고용이 안정됐던 때였다.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풍요로웠다. 대중음악 시장이 커졌고, 88 올림픽 개최와 함께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다. 청년들은 대학에서 전공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봐도 어려운 책을 읽고 토론하며, ‘자유’와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함께 들고 일어섰던 때였다. 결국, 1980년대가 우리나라 황금기였던 것은 바로 우리 시대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과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정답이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낭만의 시대’ 이야기가 다 들어있는 ‘응답하라 1988’이 그 당시를 살아갔던 어른들의 심금을 울리며 크게 흥행했던 것이 아닐까?       

응답하라 1988에 나온 대학가요제 장면 (tvN)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어떤가? 지금 우리 사회에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정답도 없다. 과거 어른들에게 당연했던 경제성장은 보이지 않고, 어른들이 정답이라 믿고 쟁취하기 위해 싸웠던 ‘민주주의’도 이미 주어진 지 오래이다. 대신 우리 사회에는 ‘불안’만이 남았다. 취업에 대한 불안으로 인문·사회 서적은 토익과 자격증 수험서로 바뀌었고, 평생직장은커녕 계약직만 늘어났으며, 사회 문제에 대한 친구들과의 열띤 토론은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인스타그램 DM이 대신하고 있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결혼과 출산율은 계속 감소하고 있고, 내 몸 하나 건사하기 위한 ‘각자도생’이 중요해졌다.       

    분명히 과거보다 기술도 발전하고, 살기는 좋아졌는데 우리 사회는 어쩌다 이렇게 불안해지고 파편화된 것일까? 이러한 불안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이러한 불안 사회를 날카롭게 통찰한 사회학자가 있다. 시대를 관통하는 그의 렌즈를 빌려 오늘날의 불안 사회와 불안 도시를 살펴보도록 하자.




2. 지그문트 바우만과 액체근대


    오늘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평생을 ‘유동하는 삶’을 헤쳐나가며 살다 간 유럽의 대표 지성 중 하나이다. 폴란드 출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바우만은 세계2차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소련, 이스라엘을 거쳐 마침내 영국에 정착하였다. 1925년부터 2017년까지 91세를 산 덕분에 그는 20세기를 관통하는 ‘근대성’을 날카롭게 통찰할 수 있었다.      

    바우만은 1989년 64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근대성과 홀로코스트(Modernity and the holocaust)’를 집필하여 사회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지난번 마르쿠제를 소개하며 비판학파 이야기를 잠깐 했었는데, 그때 나치의 강제수용소를 언급한 적이 있다. 바우만은 대량살인을 위한 관료제와 근대적 기술, 합리적 계산이 활용된 홀로코스트를 통해 근대성을 해석하였다. 그리고 2000년에는 ‘액체근대(Liquid Modernity)라는 그의 역작을 집필하여 과거와 달라진 새로운 근대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하였다.


파이프를 피우고 있는 지그문트 바우만과 그의 저서 액체근대(Liquid Modernity)

      

    바우만은 초기 근대와 후기 근대를 '고체'와 '액체'에 비유하며 구분한다. 초기 근대는 고체처럼 고정되고 구조화된 시대였다. 이전 글에서 우리가 다뤘던 것을 되새김질해보면, 초기 근대를 대표하는 사상에는 막스 베버의 합리성과 관료제, 마르크스의 토대와 상부구조가 있다. 이러한 사상들은 기본적으로 고정된 구조와 관련이 있다. 합리적인 제도 하에 위-아래가 명확한 관료제와 경제적 계급구조로 형성된 근대성은 일종의 족쇄와 사슬이 되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 경제 분야에서는 거대한 공장과 무거운 기계들이 등장하여 돌고 도는 컨베이어벨트가 노동자들을 '묶어' 버렸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초기 근대는 굉장히 암울한 시대였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고정된 것만큼 견고했기 때문이다.      

    초기 근대사회에서는 확실한 목적지가 있었다. 바로 정착이다. 초기 근대사회는 결혼, 평생직장, 질서 있는 사회와 공동체, 안정된 국가 체제 등 추구해야 할 정답이 있었다. 그렇기에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은 다소 제한되더라도 불확실성보다는 안정과 확실성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바우만은 80년대 즈음부터 초기 근대가 후기 근대로 전환되며 '유동하는 액체'로 변화했다고 한다. 이러한 후기 근대를 바우만은 액체근대(Liquide Modernity)라고 불었다. 액체근대 사회와 함께 등장한 세계화, 신자유주의, 소비사회는 과거 고체의 고정된 성격보다는 액체의 흐르는 성격으로 설명하기 쉽다. 명확한 국가의 영토 안에 살던 우리는 갑자기 범지구적인 삶을 살게 되었고, 온갖 걸 책임져주던 국가의 복지는 점차 줄어갔으며,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변덕스러운 소비자들의 소비성향이 더 중요한 사회가 되었다. 즉, 우리를 고정시켜 주던 경계와 제도가 녹아 사라지면서 액체처럼 흐르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러한 액체근대는 일종의 '최고 지도자 부재 시대‘이다. 고정된 고체와 같은 과거의 삶의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가운데, 새롭게 도래한 액체근대 사회를 헤쳐나갈 삶의 방식 역시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 다시 말해, 우리를 제약하는 틀이 사라지며 전보다 더 보장되는 자유를 얻었으나, 나아갈 방향은 모른다. 그렇기에 진정한 자유는 아닌 셈이다.

    안정된 삶이라는 초기 근대의 정답은 이제 오답이 되었다. 유동하고 흘러가는 사회에서 안정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경제, 사회 질서로 인해 우리는 늘 도전에 직면한다. 갑작스러운 산업구조의 변화로 코딩을 배우지 않으면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없고, 채용이 된다 한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늘 자기계발에 시달려야 한다. 소비 트렌드는 또 어떤가? 유행은 너무나 빠르게 바뀐다. 김 씨가 유행에 편승하고자 큰맘 먹고 롱패딩을 사자마자 갑자기 유행이 숏패딩으로 바뀌었다. 아직도 탕후루 안 먹어봤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사라졌다.      

    이와 더불어 초기 근대 사회에서 지속적이고 공적이었던 삶의 영역들이 점차 단기적이고 개인화되기 시작했다. 결혼은 동거로, 공동체는 인스타그램으로 대체되었다. 결혼을 안 하니 만남과 헤어짐이 가벼워졌고, 어제와 오늘이 너무 다른 온라인 인간관계는 지속적이기보다 단기적이다. 이제 우리는 함부로 '영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이렇게 무거웠던 공적 영역이 가볍고 흘러가는 개인적 영역으로 변하다 보니,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은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 된다. 취업을 못하는 이유를 거시적인 국가나 정치의 문제에서 찾기보다 미시적인 개인의 능력 문제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이다. 이제 모든 문제에 있어서 국가도, 사회도, 공동체도, 개인도 모두 정답을 모른다.         


이제 결혼은 필수가 아니다 (2018년 한국의 사회지표)


    이렇듯 바우만은 우연, 다양성, 변덕스러움, 즉시성이 일반화되고, 모든 것이 개인화되어 각자도생 해야만 하는 시대를 유동하는 액체근대의 특징이라 보았다. 액체근대 사회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모순적이게도 불확실성이고, 아무것도 정해진 바 없는 이 불확실성 속해서 우리 현대인들은 앞에 뭐가 있는지 알지 못한 채 흘러가고 있다. 즉, 액체사회는 불안한 사회이고, 우리의 삶의 불안은 필연적인 것이다.




3. 액체사회의 불안한 청년 도시인들


    액체근대의 도래와 함께 도시에서도 불안정성과 불안감이 감지되고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에서 특히 도시에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은 불확실한 주거, 고립된 삶, 소비지향 문화로 내몰리고 있다.      

    도시의 청년들은 주로 '지옥고' 속에 산다. 지옥고는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우며 사람답게 살만한 면적이 나오지 않는 방에 청년들이 살아가고 있다. 왜일까? 청년들은 내 집을 마련하여 정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나 직장을 다니려면 도시로 와야 하는데, 도시의 비싼 집값을 감당할 수 없어 내 집 마련은 꿈도 꾸지 않는다. 월세와 보증금이 싼 집을 찾아 흐르는 액체처럼 이사를 반복해야만 도시에 살 수 있다. 특히 토지주택공사 조사 결과, 서울에서 1인 가구 청년 중 최저 주거기준(약 4평)에 못 미치는 집에 살고 있는 비율은 2017년 기준으로 37.2%나 된다. 이런 조그만 집을 임대하기 위해 청년들이 내는 임대료는 월 임금의 37.5%라고 한다. 전체 연령 평균인 27.5%보다 10%나 더 높다. 어렵게 얻은 보금자리도 경제적 사정에 의해 언제 떠나야 할지 알 수 없는 주거 불안 속에 도시의 청년들이 살아가고 있다.     

최저주거기준 미달 거주 1인 가구 월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 (국토부) / 고시원 보고 진짜 놀란 정몽준 당시 서울시장 후보 (news1)


    청년들의 고립 문제도 심각하다. 과거 대학가는 패기 넘치는 대학생들이 으쌰으쌰 하며 사회를 논하고 함께 어울리던 만남의 장이었다. 그런데 이런 대학가 문화는 과거 초기 근대 사회에서나 있었던 유물인가 보다.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서울연구원의 조사에서 대학가의 사회적 고립 정도가 가장 심각한 수준을 보였다. 종합적인 사회적 고립 정도는 중구 장충동, 관악구 대학동, 종로구 혜화동, 동대문구 회기동, 성북구 안암동 등 대부분 대학가였다. 대학생들은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보다, 나 홀로 집에 틀어박혀 넷플릭스 보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 결과는 공동체가 사라지고 파편화된 개인만이 남게 되는 액체근대 사회의 특징을 뚜렷이 보이고 있다.     


서울 청년 사회적 고립지수 분포 (서울연구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한 것이 청년들은 소비에 거침이 없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과거 청년들의 소비가 교통비, 생활비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었다면, 액체근대 사회의 MZ 세대들을 보면 일회적, 즉흥적, 흥미 위주의 소비가 많이 늘어난 양상을 보인다. 어차피 티클 같은 돈 모아봤자 경기도에 집 사기도 어려운데,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소비가 더 합리적인 것 같기도 하다. 더현대 같은 도시의 백화점에는 늘 청년들이 붐비고, SNS에는 흑백요리사 셰프 레스토랑 방문 인증이 가득하다. 바우만은 이러한 소비가 액체성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액체근대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만들어진다. 수많은 핫템들이 만들어지며 무엇이 중한지 알 수 없는 현재, 빠르게 변하는 소비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뛰어드는 것이 가장 명확하게 행복을 얻는 방법이다. 물론 소비로는 채울 수 없는 공허함 때문에 반쪽짜리 행복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도시 청년들이 이러한 소비지향 문화 선두에 서있는 것이다.    


정말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심리학뉴스)

 

    이렇게 액체근대의 도시는 언제 떠나야 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주거환경에 살아가는 청년들, 공동체와 함께 살아가기고 보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청년들, 소비 트렌드에 민감한 청년들이 함께 살아가는 유동적인 공간인 것이다.




4. 희망의 도시


    지금까지 우리가 바우만의 렌즈로 살펴본 우리 사회와 도시는 암울하다. 그럼 우리는 계속 액체근대가 만들어내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 것인가? 대체로 사회학자는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지만, 늘 희망을 함께 제시한다. 바우만은 여전히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한다.     

    그 희망은 바로 도시이다. 바우만은 한 재미저널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도시 단위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바우만이 언급한 벤저민 바버(Benjamin Barber)의 '뜨는 도시 지는 국가(If Mayors Ruled the World)'를 보면 빠르게 변화하고 개인화된 액체근대의 불안함을 해결할 가능성을 도시에서 찾아낼 수 있다.      

    과거 초기 근대 사회와 달리 액체근대 사회에서 국가는 문제 해결사가 아니다. 국가는 고정되어 있고, 너무 육중하기 때문이다. 액체가 흐르는 것만큼 빠르게 움직이고,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사람들을 다시금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국가보다 작은 단위인 도시이다. 거시적인 국가와 미시적인 개인 사이에서 도시는 복잡한 관료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지역공동체를 회복시킬 수 있는 매개체인 것이다. 바우만은 이러한 도시에서 희망을 보았다.


벤자민 바버의 뜨는 도시 지는 국가(If Mayors Ruled the World)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액체근대 사회는 불안정성, 지속적인 위험, 신뢰의 위기를 야기하며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바우만에 따르면 인류는 지금껏 끊임없이 당대의 지배를 거스르며 발전해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우만은 우리가 액체근대의 불확실성과 직면하며 미래를 향한 희망의 싸움을 멈추지 말 것을 조언한다. 기존의 길에서 찾을 수 없는 불확실성의 대안은 지금의 세대가 창조해내야 한다. 이는 아마 유동하는 근대를 함께 유동하며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반고체·반액체인 도시에서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도시가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뤄, 소비가 아닌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청년들이 살아가는 공간이 되도록 도시에 살아가는 우리가 머리를 맞대 실용적인 정책과 미래를 만들어가야겠다. 


희망의 도시 (서울시 마을공동체지원센터)





지그문트 바우만 (1925 – 2017)

    지그문트 바우만은 1925년 폴란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세계2차대전의 발발로 인해 바우만은 불안정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39년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하자, 유대계였던 그의 가족은 소련으로 탈출하였고, 바우만은 소련에서 폴란드 의용군에 자원하여 전투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이후 폴란드 사회과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면 처음 사회학과 만났고, 바르샤바대학에 진학하여 철학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1954년부터 바르샤바대학에서 강의하며 마르크스주의이론가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1968년 폴란드 공산주의 정부의 반유대운동으로 폴란드에서 강제 추방당한 바우만은 이스라엘에 잠시 머물다가 영국 리즈대학의 제안으로 영국에 망명하게 된다. 

    이후 리즈 대학에 정착한 바우만은 64세에 근대성과 홀로코스트를 집필하면서 세계적 사회학자로 떠올랐다. 75세에는 오늘날 그를 대표하는 액체근대를 저술하며 후기 근대 사회의 유동성, 불안정성을 독창적인 시각으로 해석하였고, 유럽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퇴직 후 말년에도 바우만은 소비, 세계화, 공동체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며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다루는 책들을 출간하였고, 언론과 인터뷰에 자주 등장하여 그의 의견을 공유하였다. 사족이지만 그가 저술한 '사회학의 쓸모'는 사회학도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하는 책이다. 그리고 2017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그는 액체와 같이 유동하는 삶을 살았지만, 그저 흘러가는 부초처럼 살지는 않았다. 유럽의 주요 국가가 아닌 변방 출신의 사회학자였지만, 시대를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방대한 연구성과로 유럽의 아말피상(1992), 아도르노상(1998), 아스투리아스상(2010) 등 저명한 상을 수상하며 영원히 빛나는 사회학도들의 사회학자가 되었다.

    20세기를 관통하는 그의 굴곡진 인생은 최근 폴란드 사회학자 이자벨라 바그너(Izabela Wagner)가 쓴 784쪽의 전기 '지그문트 바우만 – 유동하는 삶을 헤쳐나간 영혼(Bauman: A Biography)‘에 더 자세히 담겨있다. 그의 인생을 고려하면 이것도 '요약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