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아침 6시 55분 김 씨가 기상한다. 10분만 일찍 일어나면 여유 있게 준비하고 나가는데 늘 그렇게 하지 못한다. 생쥐 같이 꾀죄죄한 몰골을 그나마 사람답게 하고 나서면 오전 7시 반이다. 잘은 모르지만 엘리베이터를 타면 늘 김 씨와 비슷한 시간에 출근하는 이웃이 있어 가볍게 눈으로 인사하고 헐레벌떡 광역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간다. 버스 기사님이 그냥 지나칠까 싶어 다가오는 버스에 강렬한 눈빛을 보내고 성공적으로 버스에 몸을 싣는다. 오전 8시 55분, 간신히 지각을 면하고 자리에 앉아 어제 확인 못한 메일들을 체크하며 일을 시작한다. 하루가 순탄하지 않을 것을 감지한 김 씨는 점심시간이 되자 빠르게 식사를 때우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햄버거를 5분 만에 욱여넣고 나온다. 그렇게 일하고도 칼퇴근에 실패한 김 씨는 오후 8시에 비로소 집으로 향한다. 버스에는 엄마와 킨텍스에 다녀온 듯한 아이가 오늘 하루가 끝내주게 재밌었는지 재잘거린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당 떨어질 때 먹으려고 주머니에 넣어둔 사탕 하나를 주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버스 창 너머에는 홍대 상권에서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사람들이 어두운 밤을 빛내고 있다. 오후 9시 반, 집에서 나온 지 14시간 만에 비로소 다시 집으로 회귀하였다. 천사 같은 와이프가 해준 늦은 식사를 하고 함께 유튜브 좀 보다가 오전 1시쯤 침대에 눕는다. 아마 내일도 비슷한 하루일 것이다.
여러분들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셨는가. 김 씨와 비슷한 하루를 보내셨는지, 혹은 김 씨와는 다른 하루를 보내셨는지. 아마 비슷한 결의 하루를 보내셨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상(日常, daily life)을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5년마다 10세 이상 국민들을 대상으로 ‘생활시간조사’를 실시한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조사하는 것이다. 2019년 평일과 주말의 평균으로 분석된 생활시간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한국 사람들은 필수시간(먹고, 자고, 씻고)에 11시간 34분, 의무시간(일, 가사노동, 이동, 학습)에 7시간 28분, 여가시간(미디어, 교제, 문화/관광, 스포츠 등)에 4시간 47분을 사용한다고 한다. 아마 성인들만 따로 조사하면 구체적인 시간 사용은 다소 다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비슷한 일상이 반복된다는 점은 동일할 것이다.
2019 생활시간조사
이렇듯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은 특별할 것 없어 보인다. 때로는 이 사회가 뭔가 잘 구축된 시스템처럼 우리를 일상의 틀에 가두어 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의 하루는 정말 특별한 게 하나 없을까? 그렇다면 우리 일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매일 그대로일까?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의 겉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 우리의 일상은 매일매일이 특별하고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이 사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재글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해 주실 사회학자의 렌즈를 빌려 특별한 우리의 일상과 도시생활을 관찰해 보도록 하자.
2. 버거의 사회학에의 초대
오늘의 사회학자 피터 버거(Peter L. Berger)는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에서 특별함과 의미를 발견하는 데 사회학적 관점이 도움이 될 것이라 보았다. 그의 저서 ‘사회학에의 초대(Invitation to Sociology)’는 제목처럼 그가 우리에게 보내는 사회학 세계로의 초대장이다. 1963년도에 출간된 이 책은 사실 사회학도라면 '무조건' 책장에 꽂혀있는 책이다. 출간 이후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회학게에서는 최고의 사회학 입문서로 꼽힌다.
피터 버거와 그의 저서 '사회학에의 초대'
여러분들은 사회학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가? 당연한 걸 어려운 말로 뭔가 있는 듯 이야기하는 학문, 재미없는 학문, 삐딱한 학문, 입만 살아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다. 대략 다 맞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하지만 버거는 사회학의 세계가 그 이상이라고 한다.
사회학의 연구 대상은 다름 아닌 인간과 인간이 이루는 사회이다. 그렇기에 연구 주제는 대부분 우리에게 친숙한 분야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공동체, 제도, 생활을 연구한다. 이러한 주제들은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네이버 켜서 뉴스만 봐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주제들이다.
그렇지만 사회학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버거는 사회학자를 '열쇠 구멍으로 문 너머를 바라보고 싶어 하는 사람' 혹은 '다른 사람들의 우편물을 훔쳐보는 사람', '잠겨 있는 캐비닛을 열어 뭐가 있는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 등으로 비유한다. 남들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별 것 아닌 상황에서도 굳이 그 안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학자들은 아무리 친숙해 보이는 인간 세상일지라도 결코 싫증 내지 않고 계속 들여다보려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친숙한 세계를 ‘새로운 조명 속에서’ 바라보는 것이 바로 사회학의 백미이다. 버거가 이야기하는 사회학의 첫 번째 지혜는 ‘사물은 겉보기와는 다른 법’이라는 것이다. 연구실에서 집에 가면 일상을 온전히 보낼 수 있는 다른 학문과 달리, 사회학은 이 세상 자체가 연구실이다. 집에 간다고 학문적 통찰력과 일상생활이 분리되지 않는다. 사회학자는 커피 한 잔 마시더라도 과테말라 커피농장의 아동노동 착취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회학은 누군가가 싫증낼만 한 일상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질문을 되풀이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새로운 측면을 알게 되는 것에 황홀함을 느끼는 열정적인 학문인 것이다.
버거의 표현에 따르자면, 닫힌 문 앞에서 문을 열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강 건너에 무엇이 있는지보다 그저 강의 경치에만 감탄하는 사람들은 사회학에 적합하지 않다. 버거는 사회학적 관점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공식적으로 정의되어 있는 것을 꿰뚫어 보고(seeing through), 배후를 살펴보는 것(looking behind)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기 우해 일산의 아파트 단지를 가보자. 외관상 별 차이 없는 아파트들이 개성 없이 늘어서 있다. 사회학은 겉으로 보이는 일관된 아파트들을 보는 학문이 아니다. 가리어진 아파트 세대의 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불빛에 의존해 그 집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궁금해하는 학문이다. 즉, 외관을 꿰뚫어 보고 외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간 활동의 무한한 다양성을 탐구하는 것이 사회학적 시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학적 시각은 인간생활에 대한 개방된 시야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버거의 관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우리는 일상 안에서 자유를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그저 조그마한 무대 위에서 춤추고, 누군가 당기는 줄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이미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때 사회학은 꼭두각시 같은 우리에게 고개를 들어 우리 몸에 달려있는 끈과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장치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버거는 이것이 바로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사회학은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움직이는 우리 일상 속에서 자유를 향한 초대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고개를 들어 나를 묶어둔 끈과 장치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사회학
3. 도시로의 초대
1장에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는 곧 도시 사회’라고 밝히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을 시작하였다. 먹고, 자고, 일하고, 노는 우리 일상의 배경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것이 도시이기 때문이다. ‘도시가 뭐예요?’라고 질문하면 우리는 대체로 개발, 건물, 도로, 아파트 등 물리적인 것들을 떠올릴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도시계획 교육 과정에서는 대부분 공학적 시각을 강조한다. 토지를 구획하고, 도로를 깔고, 재개발의 경제적 이익은 얼마인지 계산하는 등 주로 도시의 물리적 공간 측면을 탐구하는 것 같다. 아마 우리나라가 개발하고, 짓고, 공장 만드는 게 중요했던 산업화 시대를 빠르게 거쳐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버거가 우리에게 빌려준 사회학적 렌즈를 통해 바라보면,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잘 구축된 시스템처럼 돌아가는 우리의 도시생활에서 도시가 특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인 것이다.
도시의 물리적인 외피를 뚫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우리의 인간적인 활동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서두에 나왔던 도시인인 김 씨의 일상만 봐도 그렇다. 너무 당연했던 집에서의 자유로운 생활과 집 밖에서의 연극, 알듯 말 듯 약하게 이어져 있지만 때로는 우리의 세상을 넓혀주는 이웃들, 버스 기사님과 주고받는 무언의 소통, 우리를 이동시키는 대중교통, 우리를 착취하는 노동, 빠르고 배부른 패스트푸드, 도시에서 자라나는 아이들, 핫플레이스 등은 도시의 일상 너머 작동하는 원리가 있다.
그리고 사회학은 도시의 속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렌즈를 제공하는 학문인 셈이다. 이 렌즈를 활용하여 우리 도시 일상의 특별함을 찾아낼 수 있을 때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 진정으로 초대될 수 있는 것이다.
도시의 일상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4. 도시로의 초대장을 받은 여러분들께
오늘까지 30주 동안 사회학 거장들의 카메라를 빌려 우리 사회와 도시를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렌즈들을 소개해왔다. 밀즈부터 버거까지 우리가 중요하게 나눴던 이야기들은 어떻게 사회학의 렌즈를 활용하여 도시를 관찰할 수 있을까였다.
이 렌즈 활용법을 숙지함으로 비로소 도시로의 초대장을 받게 되었다. 이제 우리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속에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우리와 연결된 도시의 끈을 바라볼 준비가 끝났다.
사실 이 연재글에서 우리에게 렌즈를 빌려준 사회학자들은 한 사람 한 사람만 파도 평생이 걸릴만한 거장들이다. 1장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그런 거장들의 바다에 아직 발만 담갔을 뿐이다. 그렇지만 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헤엄도 치고 싶은 법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 대해 아직 못다한 이야기들도 많지만, 이제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이 되었다. 그러다 보면 여러분들 중 누군가는 사회학과 도시의 바다에서 헤엄치게 되실지도 모르겠다.
이 연재글에서 도시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표했던 김 씨는 오늘도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도시에서 때로는 평온하게, 때로는 고단하게, 때로는 재미있게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계속 사회학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도시에서 사회학 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언젠가 우리들은 서로의 카메라를 들고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바로 이 도시에서.
그동안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제 각자의 카메라를 들고 도시에서 만나길 기대합니다. 건강하세요!
피터 버거 (1929 – 2017)
피터 버거는 192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버거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며 부모님과 미국 뉴욕에 정착하였다. 열여덟 나이에 종교적 열정이 충만했던 버거는 루터파 목사님이 되고 싶었으나, 이제 막 도착한 미국 사회를 더 잘 알고 싶어 신학 공부 대신 사회학을 먼저 공부하기로 한다. 사회학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면 미국 사회를 잘 알 수 있겠거니 생각했던 것이다.
부유한 편이 아니었기에 버거는 일을 병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뉴욕에서 유일하게 야간 대학원 과정을 마칠 수 있는 뉴스쿨(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석사과정에 등록하여 사회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어쩌다’ 사회학을 공부하게 된 버거에게 사회학은 예상과 다른 학문이었다. ‘인간이 하는 온갖 짓들’을 연구하고, 애써 감추어진 것들을 폭로하는 학문이었던 것이다. 세상을 사회학적으로 바라보는 데서 흥분을 알게 된 버거는 박사과정까지 밟고 착각에서 시작했던 사회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피터 버거는 ‘사회학에로의 초대’, ‘실재의 사회적 구성(The Social Construction of Reality), '성스러운 천개(The Sacred Canopy)‘ 등 24권 이상의 책을 남겼다고 한다. 특히 사회학의 초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전 세계 사회학도들에게 영향을 준 책이 아닐까 싶다.
버거는 지식사회학과 종교사회학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보스턴 칼리지, 러트거스 대학, 뉴스쿨을 거쳐 1981년부터 보스턴 대학 교수로 재직하였고 2017년 88세의 나이로 어쩌다 사회학자가 된 그의 모험을 마무리하였다. 그의 사회학 모험은 그의 에세이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Adventures of an Accidental Sociologist)’에서 위트 있게 다루어진다.
사회학에 대한 버거의 농담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사회학자란 제일 가까운 유곽을 찾아가는 데 백만 달러 기부금이 필요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