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하윤아, 엄마가 햄버거 먹지 말라고 했잖아.”
“하지만 맛있는데…. 서준이도 잘 먹었어요.”
“맛있지만 건강에 좋지 않잖니.”
“네, 알겠어요.”
꾸지람을 들은 하윤이 힘없이 터덜터덜 방으로 들어갔다. 하윤은 굉장히 억울했다. 햄버거 먹은 걸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약속을 못 지킨 서준이 에게도 화가 났다. 그때 방문이 빼꼼히 열리고 서준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서준은 하윤의 눈치를 보다가 슬며시 말했다.
“누나 미안해….”
하지만 하윤의 화는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평소에 귀찮게 자신을 따라다니던 서준이 오늘따라 더 귀찮게 느껴졌다.
“너 가. 이제 너랑 안 놀아줄 거야.”
그래서 하윤은 애처럼 토라졌다. 하윤은 울상이 된 서준이를 힐끗 보고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고개를 돌린 채 오랫동안 서준을 쳐다보지 않자 조용히 방문이 닫혔다. 하윤은 일기장을 꺼내서 오늘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의 하루는 정말 짜증났다. 오늘도 서준이와 함께 놀았다.’
하윤은 동생이 얼마나 귀찮은 존재인지, 누나로서 동생을 챙긴다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 것인지를 털어놓으려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일기를 쓰면 쓸수록 서준이가 환하게 웃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사자 캐릭터 장난감을 들고 환하게 웃던 모습과 햄버거를 먹을 때 입에 케첩을 묻히고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결국 하윤은 일기장을 덮고, 방을 나섰다. 서준의 방문을 몇 번 두드렸는데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하윤은 결국 서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여전히 답이 없었다. 그 사이에 어머니가 ‘왜 그러니’하시며 하윤의 곁으로 다가왔다. 하윤이 서준의 방문을 열자 하윤을 맞이하는 건 서준 대신 싸늘한 방 안의 공기 뿐 이었다.
“아니, 서준이가 어디 갔지? 벌써 해가 저물었는데….”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윤이는 순간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이제 안 놀아주겠다는 말에 울상이 된 서준이의 얼굴이 떠오른 것이다. 하윤이는 서둘러서 문 밖을 나섰다.
“서준아, 서준아!”
하윤은 어머니와 함께 서준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불렀다. 하윤과 어머니는 서준이 있을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우선 아파트 놀이터에 갔다. 아파트 놀이터에는 몇몇 아이들이 있었지만 서준은 찾을 수 없었다. 공원도 마찬가지였다. 저녁이 되어 텅텅 빈 공원은 을씨년스러웠다.
“이 추운 날에 어딜 간 거지.”
12월 초인만큼 날씨가 매서웠다. 콧잔등을 때리는 매서운 바람에 하윤은 서준이 더더욱 걱정이 되었다. 놀이터와 공원을 샅샅이 뒤졌지만 서준이를 찾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경찰서에 신고하겠다고 말했다. 그때 하윤이에게 한 장소가 떠올랐다. 오늘 서준이와 뽑기를 하던 문방구 앞이었다. 서준이가 너무나 즐거워하며 뽑기를 더 하고 싶어 했으니 어쩌면 그 곳에서 뽑기를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윤은 어머니의 손을 이끌고 문방구로 향했다. 차가운 바람이 윙윙 빨라지자 하윤과 어머니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서준아, 서준아!”
어머니와 하윤이는 서준이를 애타게 불렀다. 하지만 문방구 어디에도 서준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어머니가 휴대폰을 들어 112를 누르려는 순간 뽑기 기계 뒤 쪽에서 익숙한 인영이 빼꼼 튀어나왔다. 서준이었다.
“누나?”
“서준아! 너 도대체 어디 갔었어!”
어머니와 하윤이는 한달음에 달려서 서준을 와락 껴안았다. 서준의 온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온 몸이 꽁꽁 언 서준의 손을 하윤이 따듯한 입김을 불어 녹여주었다. 빨갛게 얼어붙은 손이 펼쳐지자 그 안에서 작은 장난감이 나왔다. 하윤이 가장 좋아하는 복숭아 캐릭터 장난감이었다.
“이거 누나 가져.”
서준은 하윤에게 뽑기로 뽑은 복숭아 캐릭터 장난감을 건네주었다. 하윤은 건네받은 장난감을 두 손에 꼭 쥐었다.
“서준이 너 이거 뽑아주려고 여기 온거야?”
하윤이 묻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윤은 눈가가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다. 서준의 양 손은 아직까지 빨갛게 얼어붙어있었다.
“누나, 내가 미안해.”
“아니야, 서준아 누나가 미안해.”
서준이와 하윤이가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그 둘을 부둥켜안는 커다란 온기가 있었다. 바로 어머니였다.
“아니야, 엄마가 괜히 햄버거 먹었다고 혼내서 미안해.”
그 셋은 그렇게 한참동안 하나가 되어 끌어안았다. 더 이상 겨울의 찬바람이 차게 느껴지지 않았다. 서로의 온기로 인해 몸이 따듯해졌기 때문이었다. 하윤과 서준을 꼭 끌어안고 있던 어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 내일 햄버거 먹으러 갈까?”
“좋아요!”
하윤과 서준의 눈이 반짝였다. 셋은 나란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겨울이라 일찍 뜬 별이 세 사람이 가는 길을 반짝반짝 비춰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