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어머니 그림자 길이가 길었다. 집이 서쪽에 있어 집에 돌아오시는 어머니는 해를 정면으로 받았는데, 그 시간때 쯤 어머니가 달고 오는 그림자는 어머니의 키를 훌쩍 넘어있었다. 어머니의 그림자는 마치 어머니의 그늘 같았다. 고된 업무를 마치고 오는 어머니의 어깨에는 큰 짐이 가득 실려 있는 것처럼 무겁고 아파보였다.
어떻게 하면 어머니가 힘들지 않을 수 있을까? 어린 나에게 그것이 매우 중요하고 큰 숙제였다. 퇴근 후 쓰러져서 잠든 침대에서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대신해 어린 동생에게 밥을 먹이고, 달래서 잠을 재웠다.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어서 반찬을 만들 줄 몰라 대충 계란 후라이와 김을 꺼내놓고 동생에게 밥을 먹였던 기억이 난다. 배가 고팠던 동생이 입술 여기저기에 밥풀을 묻혀가며 먹었는데, 어머니는 나중에 잠이 든 동생 입에 묻은 밥풀들을 보고 그렇게 우셨다고 한다.
좀 더 머리가 굵어서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는 것만이 어머니가 고생하시는 것에 대한 보답이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를 하고 성적이 오르면 어머니가 기뻐하시는 것이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더더욱 열심히 했었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곳에 취직하면 정말 돈을 많이 벌 수 있겠지. 그 돈이면 더 이상 엄마가 힘들어 하지 않아도 돼. 대강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내가 꼭 돈 많이 벌어서 엄마 호강시켜줄게. 어렸을 때 곧장 이런 말을 했었다. 1억을 벌어서 호화로운 주택에 살게 해주겠다는 편지도 썼었다. 1억으로 서울에 호화로운 주택은커녕 이제는 원룸도 얻지 못하지만, 어린 내 머릿속에서 1억은 온 식구가 평생을 호의호식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이제는 작고 귀여운 좀좀따리 월급을 보며 이 돈을 불려 돈 벼락을 맞는 꿈을 꾼다. 엄마 우리 이제 아무 걱정 안 해도 돼! 하고 말하고 엄마와 널린 지폐 위에 눕는 그런 꿈 말이다. 꿈속에서 같이 돈 벼락을 맞을 수 있는 가족들이 있어 매일 힘을 내서 출근길에 오른다. 젊을 적 어머니도 이런 기분이지 않으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