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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달 전등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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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레몬 Feb 04. 2022

양파에 싹이 자랐어!

너에게 보내는 편지

친애하는 나의 친구에게.



안녕? 오늘 날씨가 참 좋네. 이런 날은 한강에서 치킨을 뜯으면서 맥주를 한잔해야하는데. 오늘이 평일이라니 너무 아쉽다. 꼭 평일은 날씨가 화창하더라? 괜히 나가서 놀고 싶게 말이야.



이 편지가 너에게 닿을 때쯤 너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나는 지금 편지를 쓰면서 양파를 보고 있어. 엄마가 시장에서 사 오신 양파 중 하나를 키우는 중이거든. 일주일 전에 유리컵에 차가운 물을 잔뜩 넣고 양파를 살짝만 담궜어. 유튜브에서 양파를 키우는 걸 봤는데, 양파가 정말 너무 건강하게 잘 자라는 거야. 그걸 보고 나도 따라서 양파를 키우게 되었어.



그런데 이 양파가 싹이 안 나더라? 유튜브에서는 분명 며칠 후에 싹이 날 거라고 했는데 기미도 없더라고. 싹을 틔울 기세가 전혀 아니었어. 그래서 물도 갈아주고 햇볕도 쐬어주었지. 하지만 사 일째도, 오 일째도 싹이 나지 않았어. 몇 날 며칠을 양파만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아빠는 그 양파가 잘못된 것 같다면서 요리를 해먹던지 버리라고 하셨어. 동생도 뭔가 문제가 있으니 양파가 자라지 않는 것 같다면서 다른 양파를 키우라고 하더라. 그래도 나는 조금 더 기다렸어. 왠지 이 양파가 조금만 더 있으면 싹을 틔울 것 같았거든.



그리고 있잖아,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니? 오늘 자고 일어나보니, 양파에 싹이 났지 뭐야! 정말 깜짝 놀랐어! 파르스름한 아주 조그만 싹이 까꿍하고 양파 위로 바짝 솟아올라 있었어. 자기 존재를 세상에 알리듯이 아주 위풍당당한 형태로 말이야. 조그맣지만 단단하고, 아주 색깔도 건강해. 세상에 싹이 나다니. 너무 기뻐서 양파를 갖고 부모님과 동생에게 자랑하고 다녔어. 양파 속이 썩어 들어가서 싹이 나지 않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셨던 아빠는 싹이 난 양파를 보더니 정말 신통방통하다며 신기해하셨어. 동생도 양파가 마침내 싹을 틔웠다는 거에 놀라워했어. 그리고 나는 아침부터 지금 이 편지를 쓰는 순간까지 양파를 보고 있는 중이야. 책을 읽다가 양파를 보고, 요리를 하다가도 양파를 보고, 글을 쓰다가도 양파를 봐.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어.



그러다 문득 네 생각이 났어. 얼마 전에 네가 말했잖아.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이때까지 네가 해왔던 일들은 모두 쓸모없는 일 같다고 말이야. 시간낭비 한 게 바보 같다면서 많이 울었었지. 다른 동기들은 앞서가는데 너는 아직 운동화 끈도 제대로 못 묶었다고 말이야. 있잖아, 내가 키우는 이 양파가 싹을 틔우기 전에 그 속에 얼마나 무한한 잠재력이 있었을까? 우리 가족이 양파를 애타게 바라보면서, 언제 싹이 날까 조바심을 낼 때 양파 속에서는 이미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지. 다만 그게 아직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거야. 속으로 양파가 싹을 영차, 영차 끌어올리고 있었을 때 양파를 포기해버렸다면 큰일 날 뻔했어. 귀엽고 파릇파릇한 싹을 못 볼 뻔 했지 뭐야.



양파가 잠재된 싹을 밀어올리고 있었던 것처럼, 네 안에도 싹이 자라고 있는 중일거야. 네 안에 차곡차곡 쌓인 무엇인가가 네 싹을 밀어올리고 있을 걸? 너는 파릇한 싹을 틔우기 위해 지금까지 기다려왔던 거지. 네가 기필코 그 싹을 틔울 때 네 싹은 다른 어떤 싹보다 단단할 거야. 내가 장담할게.



내 말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그냥 오늘도 나는 네가 보고 싶고, 네가 잘 지냈으면 좋겠어.



오늘도 수고하는 친구야, 건강하고 행복하자.



너의 하루를 응원하며.



                                                                                                                     너의 길동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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