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화자 Aug 20. 2021

글 쓰는 할머니의 오늘 이야기 37

정말 좋은 세상

 정말 좋은 세상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데 벨 소리가 난다. 누굴까? 전염병 방역 차원에서 이웃도 거리두기를 하느라 멀어졌다. 볼일이 없으면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졌는데 그나마 방문객은 택배기사들이다. 생필품을 안방에서 사 들인다. 핑계는 기동력(機動力)이 없어서 가고 싶은 장소에 가서 물건을 사고 운반할 수가 없다. 몸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홈 쇼핑이 늘었다. 부쩍 기력이 떨어짐을 느끼는 늙은이는 폰에다 어플을 저장해 놓고 쇼핑을 한다. 상품을 바구니에 담고 결제를 한다. 빠르면 당일배송도 가능하다. 다음 날 배송도 고맙다. 더러는 3,4일 걸리기도 하는데 틀림없이 배달되고 계산도 정확하다. 대개는 생필품이고 공산품들이다. 상품을 여기저기 이것저것들을 둘러보면서 비교할 수도 있다. 먼저 구매한 사람들의 상품 평을 보면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고려하고 가격 대비 품질도 대충 짐작할 수 있으므로 구매에 도움이 된다. 

  늙으면 모두 평준화된다고 하지만 많이 배운 사람과 조금 배운 사람은 품위와 교양의 정도가 다를 것이다. 잘 생긴 사람이 교만하게 늙으면 추해질 수 있고 못 생겼어도 깨끗하고 부지런해서 너그럽고 교양 있게 늙은 사람은 존경을 받는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건강하고 부지런하며 복지국가 반열에 올라서고 있으므로 평준화를 지향하고 있다. 돈을 많이 가졌어도 건강이 따르지 못하면 쓸 수가 없으므로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별로 다를 게 없다는 말은 수긍이 간다. 어쨌든 좋은 세상이다. 집에 앉아서도 돈을 쓸 수 있다는 것은.

  택배기사는 거의 벨을 누르지도 않는다. 대문은 항상 열려있고 언텍트 비대면으로 슬그머니 현관 앞에 상품을 놔두고는 문자를 보낸다. ‘몇 시 몇 분에 고객님의 소중한 상품을 현관 앞에 배달해 드렸습니다.’ 때로는 사진을 찍어서 함께 보내는 것은 택배사고를 염려한 기사님들의 증거물인 셈이다. 택배사고가 나거나 물건이 잘못 배송되는 일도 거의 없다. 빠르고 정확하기에 택배업과 인터넷 쇼핑이 활황(活況) 중이다.

 나는 가끔 삼십여 년 전에도 요즘처럼 택배가 성업(盛業)이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워하면서 젊은 택배기사님들에게 고마워한다. 삼십여 년 전에 서울에서 삼 남매가 공부할 때는 택배가 없었다. 그때는 어떻게 무슨 힘으로 된장 고추장 김치 통을 들어 나르면서 버티고 살아남았는고?라고 나를 대견해하느니 보다는 오히려 내 자식들이 장하다고 고맙다고 치하를 하고 싶다.  

  택배로 배송되는 물건이 가볍지만 물건 값이 조금 나가는 것도 있다. 그러나 생수를 배달받을 때는 미안하다. 가격에 비해서 무게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춘천의 수돗물은 청정하고 맛이 좋아서 음식을 할 때나 먹는 물로도 의심 없이 먹어왔는데 어떤 이는 거리낌 없이 수돗물을 마시는 나를 원시인 바라보듯 놀라운 듯 한심하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서울 수도권에 사는 자식들도 즐거워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정수기를 믿지 않는다기보다 관리하는 일에 대해서 믿음이 없으며 정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믿음이 없으므로 정수기를 사지 않는다. 정수기를 사 준다는 걸 거절했더니 생수가 배달되기 시작했다. 빈 생수병이 쌓이고 분리수거를 신경 써야 하는 불편함도 있으나 생수를 먹어보니까 좋은 점도 있다. 수원지도 다르고 생수 이름도 제 각각이고 약간의 가격차이도 있으면서 물맛도 조금씩 다른 생수에 익숙해지고 있다. 

 생수가 현관 앞에 배달이 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현관 앞에는 안 보인다. 두리번거리고 찾아보다가 혹시 대문 안에 넣고 갔는가? 나가서 찾아보았더니 역시 안 보인다. 순간 다른 집에 놓고 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택배기사에게 전화를 한다. 번지수를 확인했다. 틀림없이 배달을 했다고 하는데 놓고 간 장소가 대문 밖이라고 한다. 다시 나가보았더니 역시 대문 밖에 놓고 갔다. 안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이다. 네 바퀴로 굴러가는 밀차에 옮겨 싣고 집안에 끌어들이는데 ‘아구 구 무거워라~’ 엄살이 아니고 정말 무겁다. 2ℓ짜리 6병이니 12㎏이다. 2ℓ 짜리 빈 물병은 오이 밭에 관수용으로 필요하다. 오이 몇 포기 심어놓고 궁리하다가 빈 병을 거꾸로 묻어서 물을 채워 넣으면 작은 물탱크가 된다는 정보를 접수해서 실행할 참이다. 빈 물병 바닥을 잘라내고 거꾸로 묻어서 흙을 ⅓쯤 채운 다음 쇠말뚝으로 고정하면 오이밭 물탱크가 된다는 유익한 정보는 믿을 만한 유튜브 정보다. 물 먹고 오이농사도 돕고 폐품 활용을 하면 일석삼조가 될 같다.

 대형마트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났다. 대형의 창고는 상품이 여러 층으로 쌓여있고 작업환경도 열악했는데 여러 가지로 문제점이 많았다고 한다. 당일배송에 대한 책임과 약속을 지키려고 얼마나 고된 작업을 해 왔을까 생각하니까 미안하다.

 다양한 직업 중에는 사라지는 것이 있고 새롭게 떠오르는 직종들도 있다. 택배업은 비대면의 시대에 더욱 번창하고 있는 것 같다. 마트에서 장을 보면 집으로 배달을 해 준다. 밖에 나가서 외식을 하기보다 집에서 배달을 시키는 일이 늘어나면서 음식 배달 전문 택배도 성업 중이다. 자잘한 심부름 대행업체도 생겼다. 사는 게 이렇게 편해도 되나?라는 생각을 한다. 택배는 포장재가 필요하다. 종이박스와 스티로폼 박스들은 일회용이다. 음식 배달 용기도 일회용이다. 크고 작고 다양한 양념 그릇도 두 개씩 세 개씩 따라온다. 일회용 수저까지 들어있다. 비닐봉지를 열고 그릇 뚜껑만 열면 밥상이 차려진다. 음식점 일회 용기들은 플라스틱이다. 일회용 그릇들이 너무 견고하고 멀쩡하게 잘 생겼다. 한 번 쓰고 버리기엔 아깝다. 분리수거로 쓰레기 처리할 게 많아진다. 플라스틱 물병과 음식 담은 일회용 그릇과 포장재들을 분리해서 처리해야 한다. 살림살이가 편해짐과 동시에 일회 용기들이 너무 많다. 한편에서는 환경공해가 지구를 망가트린다고 일회용품을 없애자고 아우성이다. 쓰레기들이 넘쳐나고 지구환경은 공해로 몸살을 앓는다. 너무 더워서 기온이 높을 때는 홈 쇼핑도 쉬어야 하나? 그건 아니라고, 상품도 팔아야 하고 택배기사들도 일거리가 없어진다고 그러지는 말아달라고 그냥 돈을 쓰시라고 할 것 같다. 평준화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어쨌든 좋은 세상인데 문제는 플라스틱과 일회용품들이다. 삶의 편리함과 함께 ‘정말 좋은 세상’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카라가 본 세상_사육 곰에게 자유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