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이가 죽었다. ‘사육 곰’으로서 20년 넘게 농장에 갇혀 살던 곰이었다. 편안이가 내실에 들어가 일주일째 나오지 않자, 활동가들은 막대기에 핸드폰을 고정해 내실을 들여다봤다. 곰은 움직임이 없었다. 활동가들이 죽었다는 확신이 들어 어두컴컴한 내실로 들어갔을 때, 사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고 한다.
하필 폭염 속이라 부패 속도는 더 빨랐다. 편안이의 사체를 수습하기 위해 시신 아래로 손을 넣고 힘을 주는 순간, 사체는 말 그대로 부서져내렸다. 편안이의 사체를 수습했던 동물권행동 카라 고현선 활동가는 ‘다섯 종류가 넘는 구더기가 한꺼번에 있는 건 처음 봤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사체를 만진 순간 편안이의 까만 털과 구더기들이 힘없이 땀범벅인 피부로 옮겨 엉겨 붙었다고, 그 감촉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활동가들은 편안이의 사체를 어떻게든, 간신히 수습했다. 장례조차 치를 수가 없어 농장 한 켠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근처에 있던 커다란 돌을 가져와 비석을 세웠다. ‘편안이, 이곳에 편안이 잠들다.’ 편안이는 손도 쓸 새 없이 우리 손을 떠났다. 그리고 농장에는 아직 열네 마리 사육 곰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곰 생츄어리’로 보내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진 공간이 아니기 때문일까, 아직 ‘생츄어리’라는 공간이 낯선 사람들이 많다. 생츄어리란 구조된 동물들의 복지를 보장하는 어떤 안식처, 자연 공원 등을 너르게 일컫는 개념이다. 생츄어리는 야생성을 잃어 자연 생태계로 내보낼 수는 없는 동물, 혹은 생태계 속 삶의 터전이 파괴되어 갈 데를 잃은 동물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카라는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와 함께 생츄어리를 짓기 위해 연대하고 있다. 부지는 정해졌고, 이게 생츄어리를 세우고 운영 프로그램을 만들고 곰들을 옮겨 오는 것을 기획하는 단계다. 화천 사육 곰 농가의 곰들은 이 생츄어리로 입소할 첫 번째 주인공들이다. 선친에게서 사육 곰 농가를 물려받은 농장주는 곰들을 헐값에 도살하기보다는 누군가 곰들을 살려주기를 바랐다. 우리는 곧장 곰 15마리의 소유권을 확보하기 위해 농장주에 15마리 모두에 대한 구조비용을 지불했고, 생츄어리로 가는 것을 앞두게 된 것이다.
그중 편안이는 생전에는 이름이 없이 L2라고 구별되던 곰이었다. 편안이는 몸이 둥글고 컸으며 밤색의 동그란 두 눈이 빛나던 곰이었다. 편안이와 다른 곰들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는 잘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반달가슴곰보다는 덩치가 훨씬 작고, 외모를 관찰하건대 아마 1980년대에 일본이나 대만에서 수입된 곰들의 후손이지 않을까 추정할 뿐이다.
곰 농장의 곰들은 대개 정형행동을 한다. 좁고 단조로운 공간에 오래 갇혀 산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것이다. 한 공간을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한자리에서 머리를 계속 흔들기도 한다. 아니면 습진으로 가려운 발바닥을 계속 핥거나 비빈다. 편안이도 생전에 많이 다르지 않았다. 더 넓고 자유로운 생츄어리로 데려간다면 건강하고 지혜로운 곰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편안이의 스무 해 삶은 끝났다. 편안이는 죽어서야 평생 갇혀 살던 곰사를 나올 수 있었다. 작은 위로라면 편안이가 죽기 전에 처음으로 과일을 먹었던 것이라고 해야 할까, 모르겠다. 편안이를 땅속에 묻던 길, 활동가들은 편안이가 너무나 좋아했던 멜론을 함께 묻었다고 했다.
징역살이의 종지부, 곰 생츄어리로
여름특식 얼린 토마토를 곁들인 과일 바구니
곰들은 평소 이전 농가 주인이었던 이들이 곰에게 건사료를 부어주는 것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화천 사육 곰 농가를 방문해 곰들을 보살피고 있다. 곰사 청소를 하고 과일을 나눠 주고, 곰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어떤 신체 부위를 불편해하는지 살핀다.
토마토 한 입 먹고 사과만 먹던 U1. 밥 먹는 시간을 규칙을 익혔다.
대개 열 살이 넘으면 도축되는 다른 곰들과 달리, 화천 사육 곰들은 20년 넘게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음식물쓰레기를 먹었지만 이제는 조심스럽게 건사료와 과일과 채소를 먹는다. 우리는 호스를 가져와 폭염 속에 등목을 시켜주기도 하고, 타이어로 작은 방석을 만들어 넣어주기도 한다. 평생 아무것도 할 일 없이 살았던 곰들은 이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깨닫고 있고, 우리는 그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활동가들을 구경하는 사육곰. 심심하던 일상에 가장 큰 자극이 사람의 방문과 과일 급여다.
만나는 횟수가 늘 때마다, 사진을 들여다볼 때마다 곰들이 낡은 콘크리트 시설이 아니라 풀과 나무가 있는 흙을 딛고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편안이와 같은 죽음은 더 없어야 한다. 인간의 욕심과 무지로 박탈되어버린 곰들의 자유, 이제 그 자유를 돌려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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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나연 털동생을 먹여 살리는 중.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사진.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동물권행동 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