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폈을 때, 글보다는 그림이 먼저 마음에 들어왔다. 색채. 아주 다양한 색채를 썼고 기본적으로 색감이 화려하고 강렬하다. 수첩에 끄적거린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무척 꼼꼼한 그림이 시선을 사로잡아서 글씨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작은 그림이지만 구도도 완벽하다. 대부분이 풍경화이다. 그의 색채에 대한 사랑은 그림에서뿐만 아니라, 매 페이지의 문장을 상당히 자주 다른 색깔의 필기구로 써 내려갔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파묵의 필통과 화구가 어떤 것일지 정말 보고 싶다.
내가 이 책의 여러 페이지 중 좋아하는 페이지들이다. 이 페이지에는 서로 연결되지 않은, 일관된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단어와 구절들이 둥둥 떠다닌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에게도 이렇게 표현할 수 없는 생각의 편린들이 있구나. 이런 혼란의 순간들이 있구나. 이 혼란의 페이지가 항상 혼란을 겪는 나에게 큰 동지가 되어주었다.
소설에 집중하고 빠져드는 예전의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오늘 나 자신에게 계엄령을 내렸다. 책상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기.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분량 쓰기 같은 예전에 많이 했던 것들이다. ..내 예전 글을 보고... 스스로 강요하듯이 소설을 쓰고 그게 실제로 결실을 거두는 것을 보는 일은 큰 즐거움이다. 상상력을 발휘해 이 세계에서 소설의 세계로 도망칠 수 있다는 의미다. p.170
그리고 내 소설에 만족하는 열정으로 앞으로 10년 안에 꼭 써서 완성할 소설을 하나하나 간절히 생각한다. 1. 내 마음의 낯섦, 2. 페스트의 밤, 3. 유럽인을 먹는 개의 기이한 이야기, 4. 우물, 5. 252점의 그림. 모두 길고 충격적인 소설일 수 있다. 10년 안에 이 5권의 책을 완성하고 싶다.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그림 판화 진열장의 복제품을 만들어 예술 세계에 약간 발을 담그고, 즐기고, 실험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일은 많겠지만 이 모든 일은 행복이다. p.186
작은 일에도 행복하고 종일 아무도 만나지 않고 일하는 것, 이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소설을 쓰는 동안 내 머릿속 한 편은 책상까지 들려오는 소리 새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 등으로 분주하다. 초록색, 주황색, 노란색빛 멀리 보이는 바다 색깔을 좋아하고, 그 존재를 더 많이 느끼고 있다. p.188
소설을 쓰다 막히면 자신감 결여와 불신이 죽음처럼 나를 압도한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주위를 돌아봐, 오르한. 침착해, 기죽지 마. 그리고 바다에서 한동안 수영했다. 바다에서 등을 대고 뒤로 헤엄쳐갈 때 소설의 조각들이 내 상상 속에서 합치되어 하나의 전체를 이루었다. ... 아침. 새로운 장을 시작하기 전의 두려움: 이 소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잘 될까? 두려워하지 마, 오르한.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는 모든 소설을 이렇게 썼다. 낯선 ... 혹은 내 이름은 빨강의 세밀화가들 또는 내 이름은 빨강에서 애니시테의 영혼이 천국으로 가는 여정을 쓸 때 자신감이 넘쳤나? 이 두려움은 항상 존재했다. 그렇다. 설렘과 행복도 느꼈다. 내가 쓴 것들이 얼마나 독창적인지 느꼈으니까. p.245
나는 특히 글을 쓰는 과정에 대한 서술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도 쓰라고 시키지 않은 소설을 써내려고 오로지 혼자서 365일 하루 종일 고민하고, 걱정하고, 달달 볶는다. 향후 십 년간 쓰고 싶은 소설의 목록이 있다. 그리고 그 계획을 달성할 것을 생각하면서 혼자서 기뻐한다.(나는 쓰고 싶은 소설의 목록은 없지만 점점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소설가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나도 이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도시의 집들과 거리들을 빨강, 핑크, 노랑, 초록으로 그린 그림을 보고 나니, 파묵이 자신이 사는 도시를, 세상을, 풍경을 얼마나 아름답게 느끼고 바라보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 그림들을 보고 나서 눈을 들어 내가 사는 도시를 보니, 내가 사는 도시도 알록달록 얼마든지 예쁘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마음속의 풍경을 얼마든지 아름답게 그릴 수 있다.
p.s.
아버지의 여행가방(2006), 오르한 파묵
<아버지의 여행가방>은 오르한 파묵의 노벨상 수상 연설문이다. <다른 색들>이라는 책의 맨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파묵의 아버지는 젊어서 작가나 시인으로서의 꿈을 가지신 분이었다. 그러나 활발한 삶과 생활의 즐거움을 놓아버리지 못해서, 작가가 아니라 부유한 사업가(?)로서의 삶을 사셨다. 아주 이따금 파묵의 아버지는 유럽 등지로 가셔서 혼자 틀어박혀 글을 쓰셨는데, 그런 노트들을 여행가방에 담아 돌아가시기 전에 파묵에게 건네주셨다. '그중에 쓸만한 글이 있으면 출판을 해도 좋고…' 라고 말씀하시면서.
반면 파묵은 자기 자신을 방안에 감금했다. 하루에 10시간이고, 그 이상이고 오로지 단어와 문장만으로 자신의 내면의 자아를 만나기 위해 수십 년을 그렇게 한 셈이다. 그래서 노벨상까지 수상했지만, 파묵은 자신이 포기해야 했던 다양한 삶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파묵은 아버지의 선택을 이야기하면서 그에 비추어진 자신의 선택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