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여인(2016), 오르한 파묵

by 봄눈

빨강머리 여인(오르한 파묵, 민음사)은 파묵의 2016년 소설인데 우리나라에서 유명하기 쉬운 작품은 아니다. 몇가지 금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을 크게 선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답답한 우리나라.

이 책에는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 작업하는 방식이 자세히 나온다. 물이 있을 것이라 무조건 믿고 수십 미터씩 땅을 파내려 가면서 시멘트로 우물벽을 다지기까지 한다. 이곳에서 물이 나올 거라는 아무 근거 없는 믿음 하나로 그 어려운 작업을 지속해 나갈 수밖에 없다니, 요즘 사고방식으로는 어이가 없다. 그런데 예전에는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인생이 우물 파기와 결국 비슷하다. 있을 거라 근거 없이 믿고 평생을 파는 것.


당시에도 나는 생각이 우리 머릿속에 때로는 말로, 때로는 이미지로 떠오른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생각은 이미지로만 떠올릴 수 있다. p.17

땅 주인 하이리 씨가 다시 왔을 때 마흐무트 우스타는 도무지 진전이 없고 이 단단한 바위층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지만, 다른 곳에 새로 우물을 팔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물은 지금 우리가 파는 곳에서 나온다는 말도 했다. p.87

마을에서 돌아올 때 무수한 별들을 보며 나는 작가가 될 거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p.93

좋아하는 귀중한 것을 우물 안에 던져놓고 잊어버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p.96

당시에 나는 아무도 나를 보지 않을 때 가장 완벽하게 나 자신이 된다고 생각했다. p.100


읽다가 그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모아보았다. 16살 소년인 젬이 우물파는 우스타의 조수가 되어 우물 파는 현장에서 함께 일하게 된다.


<빨강머리 여인> 영문판 책표지

소설은 지루하게 흘러가다가 갑자기 재미있어진다. 16살짜리 주인공 젬이 엄마 나이 또래의 빨강머리 여인과 사랑을 한 후, 넋이 약간 빠져 있던 상태에서 우물 파는 우스타의 조수 일을 하다가 통을 우물 안으로 떨어뜨려 우스타를 다치게 했는지 죽게 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우물 속의 우스타를 버리고 도망치는 장면이다. 주인공이 살인자일 수 있다니. ‘내 이름은 빨강’에도 살인 사건이 나오는데. 파묵은 살인 사건으로 글의 흥미를 높이나 보다.

살인을 하고도 젬은 계속 좋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어찌 된 일인가? 우물 속의 우스타는 어떻게 되었는가? 작가는 젬이 왜 도망가는지 모른다고 하면서 소년의 행동을 설명하기를 회피해 버린다. 젬은 우스타를 좋아하는 편이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 때문에 죽거나 크게 다친 채로 허허벌판의 우물 속에 들어가 있는데, 그걸 버리고 도망가다니, 이것은 그 결과 여하와 관계없이 엄연한 살인이다. 그런데 그토록 분석적인 작가가 이 부분에서는 젬이 도망가는 이유를 모른다고 말하고는 끝이다. 청소년의 비행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인가? 이토록 분석적인 책에 왜 이 장면에 대한 이유는 안 쓰여있는가?


그런데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되돌아왔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몰랐다. p.163

다행히 나의 우스타를 우물 바닥에 두고 온 후 작가가 되고 싶었던 바람은 빠르게 무뎌져 말라 버리고 말았다. p.179


이 소설에는 오이디푸스 신화와 쉬흐랍의 신화가 나온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알지만, 쉬흐랍의 신화는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정말 재미있다. 아들 쉬흐랍과 그의 아버지가 서로 가족인 줄을 모른 채 죽도록 전투를 하다가, 아버지가 속임수를 써서 아들을 죽이는 이야기이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만약 그의 아버지가 오이디푸스를 악운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에게 재앙은 닥치지 않았을 것이다. p.183

나는 창조적인 작가는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신뢰하는 책을 쓰고 싶었다! p.188

이것이 선의를 가진 착한 쉬흐랍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적들이 얼마나 음흉하고 교활한지는 헤아리지 못했다. .... 다양한 속임수와 꾐, 운명의 장난이 있은 후 전설적인 전사 뤼스템과 아들 쉬흐랍은 전장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p.209

아버지 뤼스템은 아들 쉬흐랍에게 말한다. "단번에 죽이지 말고 나를 땅에 두 번 쓰러뜨려라, 그래야만 날 정당하게 죽이는 셈이 될 것이다. 우리 전통은 이러하다. 이 전통을 따르면 사람들은 널 진정 용감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 셋째 날 결투가 시작되자마자 갑자기 뤼스템이 아들을 땅에 눕힌다. ...뤼스템은 잽싸게 쉬흐랍의 몸에 검을 꽂아 아들을 죽인다. p.212


아무리 훌륭한 삶을 사는 사람도 인생의 아이러니에 걸리면 파멸하는 수 밖에 없다. 비극이다.

<쉬흐랍의 신화>의 한 장면


소설의 뒷부분은 갑자기 전개가 빨라지고, 그동안 감춰져 있던 진실이 한꺼번에 드러난다.


그러니까 마흐무트 우스타에게 아무 일도 없었으며, 더욱이 계속 우물을 파서 수맥을 찾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256

당신이 거만해서, 당신이 그보다 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를 우물 바닥에 방치한 거야. 당신 학교, 대학교, 인생이 그 가난한 사람의 인생(목숨) 보다 훨씬 더 중요했지. p.322


이건 도망간 젬에 대한 우스타의 평가다. 그리고 물론 젬의 무의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궁금한 것은 그토록 명석한 젬이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그 이유를 제대로 생각도 해보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간 상황이다. 작가는 왜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까. 젊은이의 충동은 설명하지 않고 지나가도 된다는 특권이라도 있는가? 젬은 자신이 저지른 과오가 자신의 인생을 망칠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뒤도 안돌아보고 내뺀 것인가?


여기서는 네 어머니 말고 아무도 널 사랑하지 않아. p.324

두 명의 남자를 잃고 난 후 투르가이의 아이 같은 젊음은 그가 오래도록 곁에 있을 거라는 일종의 보증서 같았습니다. p.333

무대 위에서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닐 시기의 감성적이고 진정 어린 젊은이들, 외로움을 느끼는 군인들에게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꿈과 동경을 향해 진심을 다해 나 자신을 열어 보였습니다. p.334

그들(남자들)이 아버지도 아들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p.344


이 부분은 빨강머리 여인의 이야기이다. 소설 중에 서술 시점의 변동이 있다. 파묵은 다중시점 방법을 많이 쓰는구나.


<빨강머리 여인> 책 표지


이 소설은 마지막에 휘몰아 치는데, 정말 재미있다. 문명의 충돌, 이슬람 고전과 그리스 고전의 흥미진진한 해석, 그 당시 터키의 사회상, 중요하고 빛나는 조각들이 만화경처럼 서로 뒤얽혀 반짝거리며 돌아간다. 그리고 두 개의 금기가 깨진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죽이는 모티브가 반복되고,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성과 동침하는 사건도 반복된다. 파격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책이 1쇄밖에 못 찍을 수밖에 없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실수로 죽이지만 빨강머리 여인은 의도적으로 아들과 동침한다. 노벨상 작가의 파격. 오이디푸스의 이야기와 쉬흐랍의 전설로 1권 내내 빌드업을 해 놓지 않았으면 아무리 노벨상 수상 작가라 할지라도 이러한 반인륜적 스토리가 용납되진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노벨상 수상 작가가 아니라면 아무리 빌드업을 해도 이런 패륜이라 불릴 수 있는 이야기를 쓰면 매장당할 것 같다. 노벨상 수상 작가만 누릴 수 있는 자유다.

파묵의 서술은 꾸덕한 치즈케이크 같다. 일부분만 읽어도 그 안에 풍부한 내용이 찐득하게 들어가 있다. 스토리의 아쉬운 부분이라 하면 우스타가 우연하게 구조되었다는 설정뿐이다. 우스타를 구해낸 빨강머리 여인을 울음으로 세상을 구해내는 구원자이면서 동시에 젬을 죽게 만드는 원흉으로 그리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