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작가인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비밀노트(1986), 타인의 증거(1988), 50년간의 고독(1991), 이렇게 3개의 소설을 묶어서 만든 소설집이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다.
표지 그림이 일단 제목과 어우러져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다. 간결하고 건조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1부: 비밀 노트'가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감정의 이입이 지나치게 없는 이야기로 쓰여서 정말 특이하다고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2부:타인의 증거'부터는 문체가 다소 달라져서 작중인물들 간의 대화도 나오고 묘사도 나온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이해하는 열쇠는 문체가 아니라 제목이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즉 거짓말이 세 가지이니까, 1부에서 쌍둥이 형제가 있는 것이 첫 번째 거짓말, 2부에서 루카스라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의 삶을 그린 것이 거짓말, 3부에서 작중 주인공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자신이 그리워하던 존재하지 않는 쌍둥이 형제를 만나는 상황이 세 번째 거짓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전쟁고아이다. 이름은 클라우스(Klaus) 일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전쟁이 벌어진 속에서 애인이 생긴 아버지가 엄마를 떠나려고 하자, 엄마는 아버지에게 총을 쏜다. 엄마가 쏜 총에 맞아서 아버지는 죽고, 엄마는 정신병원에 갇힌다. 주인공 자신도 엄마가 쏜 총알이 허리를 스치고 지나가서 재활원에 맡겨진 후, 재활원이 폭격을 당해서 알 수 없는 시골의 할머니에게 맡겨진다. 자신을 맡아주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우연히 국경 근처의 자기 집으로 피난 온 도망자의 뒤를 따라 국경을 넘어간 후, 평생을 외국 생활을 한 인물이다.
그 인물은 삶이 너무 외로워서 어렸을 때는 비밀 노트를 쓴다. 어린 시절 쌍둥이 형제 루카스(Lucas)가 있다고 상상하면서 함께 보낸 일들을 쓴 것이다. 비밀 노트를 쓰느라고 공책과 연필을 문방구에서 계속 사간 것이다. 비밀 노트에는 인물의 감정 표현이 배제되어 있는데, 이는 인물의 존재 자체가 허상이기 때문일까? 즉 1부는 클라우스가 쓴 비밀 노트 그 자체이다.
2부는 전쟁과 러시아의 점령 때문에 본국에 돌아갈 수 없어서 외국에서 살게 된 클라우스가 자신이 국경을 넘지 않고 고향에 남았더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며, 고향에 남은 자신의 쌍둥이 동생 루카스라는 인물을 설정하고 상상해서 쓴 소설이다. 외국에서 외로운 삶을 견디면서, 만나지는 못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동생이 저기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덜 외로울 것이다.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도 이와 비슷한 설정이 나온다.) 그러나 2부에서 상상 속의 동생 루카스의 삶이 비극적이었던 것을 보면, 본국에 남았더라도 자신의 삶은 역시 외롭고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을 것이라 상상한다.
3부에서는 드디어 공산주의의 통제가 끝나고 고국 방문이 가능해졌을 때, 고향으로 돌아와 상상 속에 존재했던 동생을 찾아가는 상상을 써보는 것이다. 그러나 상상 속의 동생은 클라우스의 고독한 현실을 반영했는지, 자신의 행복을 위장하는 거짓말을 하며 클라우스를 내친다. 외국에서도 왜 외롭게 살았냐는 질문에 주인공은 '아무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나는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문장은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당신도 가족이 있을 것 같은데...
그가 말했다.
- 아니. 나는 아직 혼자 살고 있어.
- 왜 혼자 사는 거요?
루카스가 말했다.
- 모르겠어. 어쩌면 아무도 내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 p.491
전쟁 중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평생을 혼자서 살아간 아이에게 누가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겠는가? 그래서 3부의 제목인 '50년간의 고독' 속에서 결국 주인공은 기찻길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상상 속의 인물인 동생도 그 소식을 듣고 같은 방법으로 자살하리라 결심하며 소설이 끝난다.
전쟁 중에는 어쩌면 흔할 수 있는 전쟁고아의 삶을, 그가 살면서 상상한 이야기만을 서술하여, 그의 외로움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끼게 해주는 독창적인 방법을 쓴 소설이다. 작가인 아고타가 헝가리에서 태어났지만 전쟁으로 인하여 외국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람임을 생각해 보면 디아스포라의 내면, 즉 과거의 끔찍한 기억과 그럼에도 떼어버릴 수 없는 그리움을 형상화한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또한 작중 화자의 외로움뿐만 아니라 전쟁이 인간의 삶 자체를 얼마나 황폐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지를 소설속 주변인들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는 소설이다. 작가는 헝가리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로 갔는데, 그곳에서 다시 스위스의 프랑스어를 말하는 지역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프랑스어를 모르는 아고타는 시계 공장에서 12시간을 일하며, 함께 일하던 난민 여성들이 약을 먹고, 목매달아 자살을 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 인간성의 바닥을 보여주는 사건들은 전쟁이라는 상황이 인간이 실제적으로 어떤 존재인가를 드러낸 것을 기술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용구는 다음과 같다.
“아니, 그게 다는 아니야. 그건 나도 이미 알고 있네. 하지만 자네는 그 여자를 사랑하나?”
루카스가 문을 열었다.
“저는 그 단어의 뜻을 잘 모르겠어요. 아무도 그 뜻을 모르는 것 아닐까요? 당신이 하는 그런 질문은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그렇지만 그런 종류의 질문이 자네 인생에서 가장 흔한 질문이 아니겠어? 때로는 그런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을걸.” p.290
난 이제 쉰 살 밖에 안 됐어. 내가 담배와 술을, 그래, 술과 담배를 끊는다면, 난 책을 한 권 쓸 수 있을 거야. 여러 권도 쓸 수 있겠지만 어쩌면 단 한 권이 될 거야. 난 이제 깨달았네.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나.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 지나갈 뿐이네. p.302
생각에 깊이 빠지기 시작하면, 인생을 사랑할 수 없어. p.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