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사랑하게 된 이유

너를 이해하고 보내주는 방식

by 민들레

난 사실 그렇게 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어릴 적에 독후감을 내라 하면 초록창에 줄거리, 느낀 점을 쳐보면서 나의 생각을 남에게 맡겨버리고 싶었다. 많이 읽고 생각을 키우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주신 계몽 전집은 오히려 나에게 주어진 엄청난 과제처럼 느껴졌다

그런 내가 독서를 이렇게도 지독하게 사랑하게 사랑하게 된 이유는 ‘그 사람’ 때문이었다. 까만 뿔테 안경 쓴 채 좁은 자취방에 온 우주의 신비를 채우고 싶었던 그 사람 때문이었다.

겨우 한 꺼풀 벗겨진 모습으로 난 20대 초반을 맞으며 짧고 영양가 없는 연애에 지쳐 있을 때쯤 그를 만났다. 철학이 하고 싶어 철학과를 왔다고 말하는 그 사람에게 난 속절없이 빠져버렸다.



그는 말도 못 하는 독서광이었고 특히 이상을 사랑하는 괴짜였다. 그저 청춘을 술로 허비하는 어린 성인이 아니었다. 난 그의 머릿속 곳곳을 알고 싶었고 내가 느끼는 만큼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봐줬으면 했다. 그래서 그의 자취방에 있던 이상문학상 시리즈를 비롯한 수십 권의 책을 몇 달에 걸쳐 탐독했다. 그리곤 잠이 들 때쯤 그에게 작품에 나왔던 주제를 나누며 더 오래 이야기를 이어갔다. 독서는 그를 사랑하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뜨거웠던 2년의 연애를 내 손으로 끊어내고 오히려 내가 많이 아팠다. 지나가다 들은 노래에 무너지고 우연히 클라우드에서 그의 사진을 튀어나올 때면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지우고 피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문득 들른 서점에서 그와 내가 사랑했던 이상문학상 책을 보고 말았다. 난 책을 사들고 집에 와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밤낮으로 책만 읽었다. 어디선가 서점에서 나와 같이 느끼며 아파할 그를 생각하며 읽고 또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 내 안에서 솟구치는 시원함을 느꼈다. 그의 자취방 컬렉션을 다 다시 읽고 난 뒤 그를 보내줄 수 있었다. 독서는 나의 뜨거웠던 시절에게 안녕을 고하는 이별 방식이었다.


난 여전히 많은 책을 읽고 독서를 사랑하고 있다.

우리의 연애는 끝났지만 그를 통해 내가 사랑하게 된 독서라는 세계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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