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무시했던 보통의 이야기
밤 9시 40분
육퇴를 하고 돌아온 언니와 함께 ‘82년생 김지영’을 보았다. 출간하자마자 쏟아지는 관심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던 그 유명한 작품의 막이 올랐다. 개봉 전부터 평점 1점 테러를 받고 온라인에서 엄청난 토론거리였던 논란의 작품이 우리를 찾아왔다. 난 면접에 줄줄이 낙방하고 답답한 마음에 들른 교보문고에서 이 작품을 만났다.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진실은 항상 무겁고 날카롭다는 것이다. 문장의 마침표마다 나의 마음은 쿵쿵 내려앉았다.
여성 우월주의와 성 불평등을 오히려 조장하는 책이라며 어떤 무리들은 신랄하게 작품을 비난하였다. 하지만 82년에 태어나 온갖 세상의 더러움을 겪은 김지영은 우리에게 불만이 아닌 이해를 이야기했고 싸움이 아닌 포옹을 기도했다. 82년생 김지영은 그저 여성으로서 현대를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만 다룬 것이 아니다. 남의 사정을 모르면서 속단하는 사람들과 그로 인해 아파하는 보통의 이야기다.
아내와 직장 사이에서 고민하는 어느 남편의 이야기고, 더 주고 싶었지만 기센 가족 분위기에 주저했던 부모의 이야기이며,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며 작아질 수밖에 없던 세상의 이야기이다. 육아휴직이란 제도가 있어도 돌아오지 못할까 봐 무서워 쓰지 못하는 남자들의 모습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엄마가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남편은 또 스스로 속을 끓일 수밖에 없었다. 남편 한 사람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세상의 문제는 너무도 무겁고 버겁다.
하지만 가장 서글픈 건,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무관심이다. 지영이는 그저 먼발치에 있는 누군가의 비난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시어머니, 할머니, 아버지)에게 더 많은 상처를 받았다. 세상의 차가움에 포근한 품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지영에게 이기적이라며 네가 잘못한 거라며 비난의 말을 서슴치 않았다. 차가운 얼음 덩어리를 삼켜낸 듯 시린 가슴을 잡고 또 지영은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지영의 꿈, 재기, 도약은 가정이란 울타리에서는 철저히 지양되어야 했다.
차별은 너무 쉽고 속단은 더 쉬웠다. 흘러가는 이야기로, 우리끼리만 하는 이야기로 우린 너무 많은 사람들을 구석으로 몰아낸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눈이 시큰거렸다. 날 선 시선으로 남을 겨우 10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재단하고 결정한다. 그리고 꾹꾹 참아내는 것이 할 일이라며 배워온 지영은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약육강식의 이론 아래 조용하고 참는 사람에게 더 날쌘 이빨을 드러낸다. 목소리를 내야 했다. 오래 말하지 못해 목소리를 잃어버리기 전에.
결국 자신을 뒤돌아본 지영이는 본인의 방식으로 소리친다. 우린 살아가고 있다고, 누구보다 더 고단하게 치열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맘충이라는 두 글자에 그 소중한 삶을 구겨 넣지 말라고.
82년생 김지영은 그저 82년생에 산후우울증을 겪는 일을 하지 않는 여자(주부는 과연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인가?)가 아닌 당신이거나 바로 당신 옆에 앉아있는 그 사람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