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내내 맑고, 화창하다가도연휴만 되면 하늘은, 약 올리는 듯계속 비를 뿌려대며놀려댄다.
석가탄신일이 대체공휴일이 되면서 3일의 연휴가 생겼지만, 비소식은 김 빠진 사이다처럼
온몸에 힘이 빠지게 한다.
도서관이나 집 앞 마트 외에 특별한 외출이랄 게 없는 주부에게는 짧은 여행도 잡안에 묵혀있던 공기를 내보내고, 새 공기를 들이는 환기처럼 내 안의 에너지를 바꾸는 일인데...
이번캠핑도 취소해야 하는 걸까...
지난번 어린이날이 낀 연휴에 예약해 뒀던 캠핑장을, 비도 많이 온대고, 바람도 분다 해서 취소하고 다시 잡은 날짜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비... 같이 가기로 한 아이 친구 가족이 일단 가자한다. 삶은 액션이라 했던가. 미루기만 하는 인생에는 완성이 없지.늘 미완성이니 만족도 즐거움도 없겠지. 그래. 직진이다. go!
날씨가 궂어도 다들 나와 같은 마음인지
곳곳에 도로정체가 심하다.
다들 누구와, 어디를 가는 걸까?
어디를 가든, 누구와 가든
긴 문장에 잠시 숨고르고 읽는 쉼표처럼 그들의 삶에 행복한 기억으로 잠시 쉬어 머물기를...
가는 길 내내, 차 안에서 남편과 우리 20대 때의
음악을 들으며이야기를 나눴다.
남편은 말이 없는 편이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이런저런 말을 거는 편인데나는 이 시간이 좋다. 집에서는 각자 공간에서 나는 책을 보고 남편은 티브이를 보는 편이라 대화를 길게 하지는 않는데, 차를 타면 좀더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다. 차가 밀려 2시간 거리가 4시간이 걸렸다. 나는 마치 우리에게 대화에 주어진 시간이 더 늘어난 기분이 들었다. 함께한다는 것은 지루할 틈이 없는 이런 거겠지...
캠핑장 가는 길에, 강원도 "무릉도원"이라 이름 지어진 지역이 있다. 면사무소 명칭도 "무릉도원 면사무소"다. 무릉도원 지역명 앞에 압도되는 석산이 있고, 강이 흐르는데 비가 와서 운무에 둘러쌓인풍경이 신비로워 진짜"무릉도원" 같다. 어지러운 현실세계와 거리가 있는 아름답고 평온한 "이상향"을 뜻하는 "무릉도원"이 내 앞에 나타난 듯했다.
우리가 자주 가는 캠핑장은 강원도 영월 깊은 산속에 있다. 나무도 많고 계곡도 있어 시원하기도 하고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들리는 청명한 뻐꾸기소리. 바닥까지 비치는 맑은 계곡물처럼 뻐꾸기소리가 청아하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새소리에 청각이 활짝 열린다.나는 뻐꾸기를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우연히 뻐꾸기를 본다면, 나는 그새가 뻐꾸기인 줄도 모를 것이다.
나에게는 소리로만 존재하는 새. 비싼 벽시계의 상징. 정각을 알려주던 뻐꾸기 소리. 뻐꾸기는 왜 벽시계의 새가 되었을까? 오랜만에 듣는 낯설고도 반가운 뻐꾸기소리에 생각이 멀리까지 간다. 우리는 쉽게, 보는 것만 믿으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를 다른 식으로 인식하게 되면, 믿음이 생긴다. 존재의 인식은 후각, 청각을 통해서도 가능한 것. 믿는다는 것은 결국 감각의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일 테니까. 보이지 않아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뻐꾸기 소리에서 배운다.
주파수가 안 맞아 지직대는 라디오 소리처럼, 비가 오락가락한다. 지직대는 하늘아래 비를 맞아가며 텐트를 쳤다.
처음 캠핑을 시작할 때는 두 시간 걸리던 것이
이제는 남편과 합이 잘 맞아 한 시간이면 텐드를 친다. 뭐든지, 익숙해지고, 잘하려면 반복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당연함이 실천에는 왜 이렇게 당연하지 않음이 되는 걸까.
텐트를 치고 남편이 라면을 끓였다. 스프의 매운 향이 콧속으로 날아들었다. 재채기가 나올것처럼 콧속은 간질간질, 목구멍은 꼴깍꼴깍.
꼬들꼬들 잘 익은 면을 후후불며, 얼큰한 국물도 후루룩 후루룩~라면으로 뱃속을 뎁히니 온몸이 훈훈해졌다. 운무가 둘러쌓인 풍경에서 라면이라니~이게바로 캠핑의 맛이지.
비는 계속 내렸다. 텐트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니
리듬감이 그려졌다. 텐트의 겉면을 치고 튀어 오르는 수많은 물방울이 그려지면서, "타다닥"소리가 물방울의 환호성처럼 들렸다. 듣기 좋았다. 자연의 소리에는 소음이 없다. 소음이 아닌 소리의 편안함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비는 2박 3일, 캠핑하는 내내 계속되었다. 우중캠핑. 가는 날부터 비가 와서 집에 오는 날까지 비가 오고 집에 오면서 그쳤으니 완벽한 우중캠핑이다.(의도하지 않았지만...)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비오는데 집 놔두고 텐트 안에서 왜 고생을 할까 싶다면... 내 대답은 올해 첫 캠핑을 기다려 온 아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두 번째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순응하는 경험. 비를 그냥 즐기는 것이다. 살면서 어떻게 해 뜨는 날만 있을까? 삶에는 행복한 날도, 슬픈 날도, 힘든 날도 모든 날들이 있다. 그날들을 그저 살듯, 비 오는 날도 그저 살아보는 거다.
취소 없이, 원래 계획대로, 비를 맞으며.
어찌할 수 없는 것에 순응했더니, 비는 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맞기도 하는 것이 되었다.
그걸 가장 잘하는 사람이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텐트에 고인 빗물을 맞으며, 뿌리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아이들의 아이다운 웃음에 어른들도 웃었다. 아이는 신나게 비 맞은 경험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살면서 피해야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법도 알게 되겠지.
아이의 옷이 흠뻑 젖었다. 바로 씻기고, 텐트에 들어가 잠자리에 든다. 빗소리는 멜로디처럼 들리고, 텐트 안은 아늑하고, 전기매트를 깔아 논 바닥은 따뜻하다. 침낭 안에 들어가니 노곤노곤, 피곤이 녹아내렸다.
잘 먹고, 자연 속에서 잘 쉬었다 간다. 아침마다 들리던 낯선, 온갖 새소리는 숲 속의 피톤치드 공기만큼이나 기분 좋은 모닝콜이었다. 빗소리는 덤이다. 텐트를 걷고, 짐을 차에 싣고 집에 가는 길, 차 안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 저 끝에서 푸른빛이 도화지에 물감 스미듯 스며온다.
날이 개었다. 가는 날 개다니 이렇게 얄미울 수가...
그런데 어쩐지 이번 우중캠핑이 선물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비에, 바람까지 불면캠핑은 위험한데, 이번캠핑은 비만 왔지 바람은 불지 않았다.
2박 3일 그칠 줄 모르고 내리던 비에도 텐트 안에 물이 들이치지 않았다.
운무에 둘러싸인 캠핑장의 산 풍경은 신선이라도 내려올 것처럼 신비로웠다.
통제불가능한 상황에 순응은,
잔잔한 파도에 몸을 내맡기는 것만큼이나 평온하다. 비를 온전히 즐긴 선물 같은 2박3일이었다.
텐트를 말려야 되는 과제가 남았지만 그건 그저 어떻게든 말리면 될것이다. 당분간 방하나에는 텐트를 넓려 뜨려 놓고, 말리느라제습기가 몇 날 며칠 돌아가겠지만...
신선이 내려올 것 같은 신비로운 풍경.
어찌할 수없는것에 순응했더니 비는 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맞기도 하는것이 되었다. 비를 맞으며 신났던 우중캠핑~
제가 굉장히 사랑하는 그림책 <셀레스틴느 이야기> 시리즈 중 하나예요. 소풍을 가기로 했는데, 어쩌죠? 비가 오네요. 실망한 셀레스틴느를 달래는 에르네스트 아저씨의 방법은 "비 안 오는 셈 치고 소풍을 가면 어떨까?" 예요^^ 아이 마음을 헤아리는 에르네스트 아저씨는 정말 멋져요.
아이다움을 지켜준다는 건 무엇일까요? 아이다움을 지켜준다는 건 아이마음이 되어보는 거겠죠. 그 마음이 비 오는 날의 소풍도 즐거운 것으로 만들 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