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 머신에 캡슐을 넣고 커피를 내린다.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내 코를 부드럽게 간질이는 커피 향은 잠에서 덜 깬 나를 각성시킨다. 나는 내린 커피에 우유를 타서 라떼를 만들어, 한 모금 마신다. 커피 향과 우유가 섞인 절묘한 풍미에 나는 행복을 느낀다. 미각적 행복은 나의 몸을 구석구석 돌며 세포를 깨우듯, 온 감각을 깨운다. 커피를 언제부터 좋아했나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손님이 오시면 엄마는 예쁜 찻잔에 커피를 타서 과일과 내오시곤 했다. 80년대였으니 커피믹스도 없던 시절, 그때는 커피도, 설탕도, 프림도 따로 사서 직접 타는 시대였다. 모두가 바리스타였던 시절이었다. 엄마는 커피, 프림, 설탕을 따로 사서 지금의 양념통 세트처럼, 커피 삼종세트 병에 담아 놨었다. 집집마다 싱크대 위에 자리하는 주방용품 품목이었다. 80년대 홈카페인 셈이다. 각각의 커피, 설탕, 프림을 타서, 최고의 커피조합을 뽑아내야 했는데 우리 엄마의 커피조합은 “그래 이 맛이야!”라는 조미료 광고카피처럼 감탄이 튀어나오는 조합이었다. 커피 한 스푼, 설탕 세 스푼, 프림 세 스푼의 커피 조합은 우리 엄마가 커피 믹스의 최고의 바리스타임을 증명하였다.
손님이 오면 엄마가 내오시던 달달한 커피 향이 어찌나 좋던지 나는 물에 젖은 낙엽이 붙은거먀냥, 엄마 옆에 찰싹 달라붙어 한 모금을 얻어먹으려고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아이들은 커피 먹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면서도 내게 병아리 오줌만큼의 커피를 남겨 주곤 했는데, 그럼 나는 무슨 생명수라도 되는 양 커피잔을 받아 들고, 티스푼으로 떠먹곤 했다. 나는 쓴맛과 단맛이 섞인 그때의 커피 맛이 어른과 아이의 중간쯤 되는 맛이라고 생각했다. 단맛도 있지만 쓴맛도 있는...그 오묘한 쓴맛을 음미할 줄 아는 것이 점잖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그 점잖음 때문인지 커피를 마시면 나는 조금 빨리 어른이 되는 것 같았다. 잔과 컵이 세트였던 꽃무늬 찻잔에 마시는 어른들의 커피타임은 내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요소 중 하나였다. 감질맛 나던 적은 양 때문이었을까? 나는 달달 쌉쌀했던 그때의 그 커피양이 늘 아쉬웠다. 커피를 좀 더 자유롭게 마실 수 있는 고등학생이 되었을 즈음, 공부를 핑계로 시험기간에 캔커피를 사 마시곤 했다. 그 캔커피 속에는 단맛도 쓴맛도 아닌 인공의 맛만 느껴질 뿐 커피의 향도 달달함도 느낄 수 없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기계적인 맛이 났던 캔커피에는 어떤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 캔커피는 마시지 않았다.
이 천년 대에 들어와 대학에 다니면서 많은 프랜차이즈 카페가 우리나라에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많은 카페가 생기면서 다양한 커피 메뉴들이 생겨났다. 카페모카, 카파라떼, 캐러멜 마끼아또, 카푸치노등 커피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커피의 쓴맛을 단맛과 조합하여 확장시켰고, 커피는 대중적인 기호식품이 되었다. 커피의 진화는 눈부시다. 커피의 진화와 더불어 사람들의 커피에 대한 수준도, 그만큼 발전하고, 상향되었다. 지금은 카페의 프랜차이즈를 넘어 홈카페 시대다. 80년대에는, 우리 집에 있던 커피, 설탕, 프림을 담는 커피 삼종 세트병이 홈카페였지만, 지금은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커피를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시대다. 나도 다양한 커피캡슐을 구매해 본다.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케냐, 아르페지오, 볼루토, 코지… 커피의 원산지를 뜻하기도 하고, 뜻을 알 수 없는 어려운 커피이름들. 정말 다들 구분하고, 알고 마시는 걸까? 나는 짓불도 원산지에 따른 커피맛을 구분하지도 못하고, 특징도 모르지만, 커피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매일 마시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는데 문득, 내가 커피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실제로 카페모카나, 캐러멜 마끼아또처럼 너무 단 커피를 좋아하지 않고 쓴맛을 썩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시지는 않는다. 내가 마시는 커피는 대부분이 카페라떼다. 쓴맛이 싫어 우유라도 타야 마시는 커피를 나는 진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내가 꾸준히 오랫동안 마셔왔던 커피는 커피믹스다. 일할 때도 출근하면 종이컵에 믹스커피 한봉을 털어놓고, 휘휘 저어 마시면 일할 준비가 된 것 마냥, 힘이 났다. 어떻게 이런 조합을 만들어 냈지? 80년대 커피를 타던 모든 여자들의 노하우가 들어간 맛이다. 어린아이 눈에 비친 예쁜 꽃무늬 찻잔 세트에 내오시던 엄마의 커피 맛.
어떤 세계적인 바리스타도 뛰어넘을 수 없는 엄마의 그 커피 한 스푼, 설탕 세 스푼, 프림 세 스푼의 조합이 내겐 35년 동안 잊을 수 없는 커피맛인 거지. 나는 여전히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이따금씩 유사한 커피믹스를 마신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커피란,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에티오피아산 고급 원두 커피가 아니라 나의 어린 시절에, 엄마가 병아리 오줌만큼 남겨주던 커피의 감질맛이 내 머릿속에 커피 자체를 좋아하는 각성을 일으킨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