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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롬 Oct 21. 2023

낭만 속에 숨겨진 모순

<바람이 분다>(2013)

'낭만'이란 뜻을 아는가. 낭만은 '주정적(主情的)·이상적(理想的)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적 상태. 또는, 그런 심리 상태로 인한 감미로운 분위기'를 뜻한다. <바람이 분다>(2013)는 '0식 함서전투기 A6M' 일명 '제로센'을 만든 '호리코시 지로'를 다룬 전기 영화다. 공간적 제약을 벗어난 애니메이션 특성다운 아름다운 작화는 황홀경에 이른다. 미야자키 감독식 작화가 일본 근현대적 사건의 흐름과 함께 지로의 인생 속 낭만과 인간의 모순을 담은 영화 <바람이 분다>(2013)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IMDB

지로는 어렸을 적, 파일럿을 꿈꾸던 소년이었다. 그러나 근시로 인해 파일럿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꿈속에서 이탈리아 항공기술자 '카프로니 백작'을 만나 항공설계자가 되기로 맘먹는다. 이때부터 자신만의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지로의 첫 번째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바람이 분다>는 '호리코시 지로'의 전기 애니메이션 영화다. 지로의 인생 중 바람이 부는 즉, 인생의 선택과 변화가 이루어지는 순간을 보여준다. 지로의 아내 '나호코'를 관동 대지진 때 처음 만나 도와주는 장면도 지로의 모자를 나호코가 잡아주면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전투기를 완성하고 나서 다시 카프로니 백작을 만났던 순간 다시금 바람이 분다. 영화가 시작하고 자막으로 등장하는 폴 발레리의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는 구절은 영화 전체를 꿰뚫는 문장으로 작용한다. 인생의 변환을 가져오는 바람을 통해 살아간다는 의미와 바람이 부는 평범한 일상들을 살아간다는 중의적인 의미가 느껴진다.


지로의 인생은 1910년대 일본 근현대 사건을 걸쳐 간다. 나호코를 처음 봤던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미쓰비시 중공업으로 가는 길에 사람들이 화를 내며 은행에 달려가는 장면은 1929년 대공황을 그린다. 지로가 제로센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장면과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의 간접적인 언급은 1930년대 2차 세계대전을 비롯 격변적인 동아시아사에 일본 시대상을 보여준다.  


지로가 꿈꾸는 낭만은 항공설계자답게 자신이 손수 제작한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생선 가시와 같은 순수한 시선으로 만든 비행기는 전쟁 속 전투기로 얼룩져 하늘로 날아간다. 카프로니 백작과 나눈 질문 중 "피라미드가 있는 세계와 없는 세계 어느 쪽을 더 좋아하나?"라는 질문에 지로는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카프로니 백작은 피라미드가 있는 세계를 택했다고 답변한다. 피라미드는 신비스러운 이미지와 정삼각형 형태를 갖고 있는 7대 불가사의에 포함된 미스터리 한 건축물이다. 이들이 이러한 선택을 한 이유는 자신만의 꿈을 이루고 싶기 때문이다. 낭만을 찾기 위한 여정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현실은 불가피했다. 인간이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이자 낭만은 전쟁이란 대격변의 시대 속 살육과 피해로 검게 물들고 바스러진다. 아내 나호코 역시 영원해 보이는 사랑도 질병으로 인해 전쟁 종전 시점에 사망해 버린다. 꿈과 낭만이 현실에 부딪쳐 변질되고, 사라져 가는 인생이지만, 폴 발레리의 시 구절처럼 바람이 불기에 살아간다는 것. 낭만이 아직 마음속에 꺼져가지 않기 때문이다. <바람이 분다>에서는 인간의 모순을 자주 드러낸다. 지로의 동료가 말한 것처럼 '가난한 나라가 비행기를 원해서 우리들이 일을 할 수 있다는 모순', '안정되게 일하려면 가정을 가져야 한다는 모순'이 지로는 자신만의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전쟁에 사용하는 전투기 '제로센'을 만들어야 한 모순이 있다. <바람이 분다>라는 영화 자체에도 모순이 있다. 지로의 꿈과 낭만,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드러내지만, 정작 전쟁에 사용한 전투기, 전쟁에 대한 사과가 없다는 모순이다. 낭만으로만 포장된 본질적인 문제의 응어리를 다루지 않는다. 지로가 생각하는 비행기가 전투기가 돼버렸을 때, 기술에 대한 가치중립과 도덕성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점 이것 역시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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