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로 이사를 결정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위도'였다. 말하자면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남쪽에서 살아 보고 싶었다. 10년을 다니던 직장생활을 접고 무리한 조기 은퇴를 결정한 것과 별개로, 가능하면 최대한 이국적인 곳에서 살고 싶기도 했다. 서귀포는 한겨울에도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많지 않다. 특히 한라산을 북쪽에 두고 있어 찬 공기가 막히기 때문에 제주시와 비교해도 5도 이상 따뜻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한겨울에 손발 끝이 얼어붙는 와중에 속으로 욕을 하면서 억지로 출근하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런 라이프스타일과 가장 먼 곳을 찾고 싶었다. 결국 가장 따뜻한 곳이 가장 먼 곳이었다. 애완견을 키우고 있어 외국 이주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떠올린 최고의 선택지는 서귀포였다.
사실 적잖이 큰 결심이었기 때문에, 과연 괜찮을지 확인해 볼 겸 사전 답사를 온 적이 있었다. 아내와 함께 여름휴가를 맞춰서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 여행을 왔다. 네이버 지도에서 손품을 팔아 발견했던 아파트 단지를 찾아 중개사무소에 들어가 보았다. 나를 삼춘이라고 부르는 나이 든 아주머니가 몇 개의 집을 보여주었다. 처음 보여준 집은 잔디밭이 넓게 펼쳐진 2층 집이었다. 원래 펜션으로 쓰던 곳인데 장사가 안되어 일반 주택으로 쓰는 곳이었다. 주인분의 모친께서 혼자 집을 쓰시는데, 너무 넓고 잔디도 관리하기도 번거로워 젊은 사람들에게 세를 주려 한다고 했다. 잔디밭이 너무 넓고 예뻐서 거의 넘어갈 뻔했다. 분명 아파트를 찾고 있었는데...
그 집도 굉장히 매력이 있었지만, 사실은 결정적인 두려움이 하나 있었다. 벌레였다. 아내도 그렇고 (유감스럽지만) 나도 그렇고 벌레라면 질색을 한다. 특히 그 주택은 야트막한 돌담에 둘러 쌓인 예쁜 감귤밭의 한가운데 있었다. 냉정한 현실을 이야기하자면 이런 감귤밭 근처에 지네가 굉장히 많다. 직접 확인한 건 아니고 제주 이주에 관한 내용을 인터넷으로 한참 검색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하얀 리넨을 특히 좋아해 잠을 자는 한밤중에 이불속으로 지네가 기어들어왔다' 그런 식의 무시무시한 경험담들이었다. 아무튼 그 부분이 마음에 좀 걸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중개사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이런 주택가에는 지네도 들어온다고 하는데 여긴 어떤가요?"
쭈뼛쭈뼛 물어보는 나의 질문을 듣더니 아주머니는 너무나도 대범하게 답했다.
"아유 삼춘 이렇게 예쁜 집에서 지네는 좀 있어도 되지."
실로 대범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네' 라던지 '여긴 별로 없을 거예요'라고 진실을 왜곡한다거나 그런 게 없었다. 계약을 시키고 싶을 텐데... 솔직한 것일 수도 있고, 그 정도로 확실히 지네가 출몰한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결국은 그 부분에서 공포감을 이겨 내지 못하고, 아내와 나는 주택은 포기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다음으로 아주머니는 사무실이 위치한 아파트 단지의 제일 앞 동. 바다가 보이는 동의 8층 집을 보여주었다.
뷰를 확인한 후, 아내와 나는 서귀포 이주를 결심했다. "이 곳으로 와야겠다."
2018년 8월 말, 여름이 정점에 이르던 즈음이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선금을 넘긴 후, 공교롭게도 태풍이 찾아와 비행기가 결항되었다. 나와 아내는 2박 3일이 아니라 4박 5일의 여행을 끝내고 가까스로 육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제주도에 태풍이 심하다고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심했다. 생명의 위협을 강하게 느꼈다. 중간에 맹렬한 비를 뚫고 시속 20km로 벌벌 떨며 운전을 해서 한라산을 넘은 적도 있었다. '너무 성급하게 결정해 버린 건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한라산을 넘고 나서 하늘 전체를 뒤덮는 무지개를 만났다. 하와이 여행 때나 볼 수 있었던 겁나게 큰 무지개였다. '아니야 역시 잘한 것 같아' 하고 마음을 바꾸었다.
3개월 후 11월 초에 이사를 했다. 차를 몰고 6시간을 달려 완도에서 카페리를 탄 후, 2시간 반 동안 배를 타고 제주항으로 넘어왔다. 거기서 다시 1시간 10분을 운전해 새 집으로 도착했다. 차멀미에 뱃멀미에 다시 차멀미를 하며 뒷좌석에 탄 개가 헛구역질을 했다. 도착하니 밤 아홉 시였다. 판교에서 출발한 이사 트럭은 다음 날 아침에 오기 때문에 집은 텅 비어 있었다. 가스도 연결을 안 해 온수가 안 나왔다. 마룻바닥에 얇은 요를 깔고 커다란 빈 집에서 아내와 개와 함께 1박을 하였다. 다음날 오전에 판교에서 부친 짐을 다 정리하고 나서는 이튿날도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이사를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내 평생에 가장 길고 험난한 이사 경험이었다.
3일째 되는 날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날씨였다. 서귀포는 11월에도 꽤 따뜻해서, 해가 쨍쨍한 낮에는 반팔을 입고 다녀야 했다. 거실 창을 열었다. 방충망까지 열고 깨끗한 공기 너머로 그어진 새파란 수평선을 내다보았다. 그래, 이래서 이사를 온 것이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두 팔을 넓게 벌리고 경치를 만끽하였다. 뭔가 그럴듯한 구호를 외쳐야 할 것 같았다. 뭐라도 외치자. 의식의 흐름대로 뱉은 첫마디는 '브라질!'이었다.
왜 브라질이냐 하면, 영화배우 빈 디젤 때문이다. 빈 디젤의 간판 영화인 분노의 질주 중 리우데자네이루 씬이 하나 있었다. 거기서 경찰인 드웨인 존슨에게 쫓기던 빈 디젤이 수많은 폭주족들의 가운데서 역전된 전세를 과시하는 장면이었다. 미국이라면 모르지만 이곳은 브라질이기 때문에 넌 나를 함부로 할 수 없다 이런 뉘앙스였다. 뻐기는 듯한 표정으로 드웨인 존슨의 코앞에서 양 팔을 크게 벌리고 빈 디젤이 외쳤다. '위 아 인 브라질!(We are in Brazil!)' 구구절절 설명하고 보니 사실 연관성은 별로 없다. 영화는 심지어 밤이었고, 바다는 보이지도 않았고, 주변엔 문신한 폭주족만 가득한 씬이었다. 그리고 나는 브라질이 아니라 서귀포에 있었다. 양 팔을 벌린 것과 대머리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당시 내가 느낀 해방감은 빈 디젤에 뒤지지 않았다.
지금도 아침이면 창문을 다 열고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쳐다보곤 한다. 아주 가끔은 그때의 기분을 되살리기 위해 브라질! 하고 외쳐 본다. 하지만 그때와 똑같은 기분은 아니다. 지금은 햇빛이 잘 드는 바다가 보이는 집에 살 때의 단점도 잘 느끼고 있다. 제일 큰 단점은 햇빛이 너무 세서 집 안에서도 자외선의 공격을 강하게 받는다는 것이다. 바다에 반사된 햇빛은 정말 강하다. 그래서 집 안에 있어도 얼굴에 기미가 생긴다. 햇빛에 특히 민감한 아내가 불만을 표하곤 해서, 흰색 커튼을 달아 낮 시간에는 닫아 두고 있다. 하루의 대부분은 커튼이 닫힌 상태로 지낸다.
한 번은 육지에서 놀러 온 친구가 커튼을 닫은 것을 보고 내게 질문하기도 했다. 이렇게 좋은 경치를 두고 왜 커튼을 치냐는 것이다. 사실 경치가 아까울 때도 있지만, 피부 노화를 막는 것도 중요하다.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다. 멋진 경치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비록 커튼이 닫혀 있더라도,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언제든 원하면 커튼을 열고 멋진 경치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만족감을 준다. 당장 닫혀 있고 경치를 볼 수 없더라도, 원한다면 3초 안에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전 집에서도 똑같은 흰색 커튼을 닫고 있었다. 그때는 커튼을 열면 앞 동 아파트의 뒷베란다가 보였다. 커튼을 닫았을 때는 큰 차이가 없지만,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하면 큰 차이가 있다.
때때로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옅은 바람에 느긋하게 흔들리는 흰색 커튼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