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각시나방이라는 나방의 종류가 있다. 일단 덩치가 큰 편이고, 종이 비행기처럼 저돌적인 삼각형의 몸태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영어 표현에서 박각시나방은 hawk-moth라고 부른다. 매를 닮은 나방이라는 것이다. 두툼한 몸통에 속도감있는 몸태가 매를 닮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주로 야행성이라 시골 가로등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박쥐의 초음파를 회피하기 위한 기름진 털이 온몸을 덮고 있기 때문에 게 중에는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털달린 큰 나방을 귀엽고 이쁘게 여길 사람은 그렇게 많진 않다.
한 편, ‘꼬리박각시’라는 이름을 가진 나방이 있다. 이 나방은 대부분의 나방과 다르게 낮에 활동하며 꽃의 꿀을 먹으며 산다. 그리고 화려한 색과 무늬를 가지고 있다. 나방보다는 나비에 가까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특징이 있는데, 벌새를 닮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 때문에 나는 이 꼬리박각시라는 나방이 다른 박각시나방보다 훨씬 싫어졌다.
실제로 꼬리박각시의 영어 이름은 hummingbird hawk-moth다. '벌새매나방'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건 좀 웃기긴 하다. '호주식 월남쌈'같은 모순적인 맛이 있다. 어찌되었건 매나방 종류 중에서도 유독 벌새를 닮았기 때문에 이름을 붙이는 입장에선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제주로 이사를 오면서, 서울에 살 때와 다르게 자연환경을 관찰할 기회가 훨씬 많아졌다.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연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얼마 전에 키우는 개(만수르, 4세)를 산책시키다가 아파트단지 화단에서 박각시나방의 실물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하얀 꽃 사이를 분주하게 날아다니는 벌새를 발견하고는 와 신기하다 하면서 휴대폰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어 보았다. 나중에 영상을 확인했는데 벌새에게 기다란 더듬이가 달려 있는 것이다. 후... 벌레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경험이었다.
내가 정말 싫었던 이유는 그냥 닮은 정도가 아니라, '의도성'이 느껴질 정도로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의도성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보면 정말 가증스럽고도 섬뜩하다. 일단 전체적인 몸의 크기나 비율이 매우 비슷하다. 나방이라고 하기엔 꽤 커서 작은 새라고 착각하기 쉬울 정도다. 게다가 날갯짓 또한 벌새와 비슷하게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다. 꿀을 빨기 위해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이동하는 모습 또한 방송에서 본 벌새의 몸짓과 너무 비슷했다. 일반적인 곤충처럼 나는 게 아니라 벌새처럼 날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꼬리박각시 나방의 눈동자는 곤충의 눈이 아니라 새의 눈처럼 생겼다. 순진 무구한 새의 눈망울을 따라 하기 위해 작정한 것처럼, 동공 모양으로 무늬가 만들어져 있다. 보통 곤충의 눈은 수천개의 눈이 합쳐진 겹눈이다. 동공 모양으로 가운데만 동그랗고 까맣게 생겨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꼬리박각시 나방은 그렇게 생겼다. 새의 눈동자처럼 보이기 위해 일부러 동공을 닮은 겹눈 무늬를 만든 것이다.
꼬리박각시 나방의 모습은, 어딜 봐도 벌새처럼 생겨먹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나도 안다. 혹독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수단 중 하나는 '변장'이다. 먹고 살자니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변장의 완성도가 너무나도 뛰어나다 보니, 약간은 무서운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내 비록 만물의 영장이지만, 백주 대낮에 날아다니는 나방 따위에게도 언제든 속을 수 있다. 그런 종류의 무서움일 수도 있다. 아무튼 꼼짝없이 벌새라고 착각했는데 사실은 나방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공포의 본질은, 나방 자체가 아니라 내가 속았다는 패배감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동식물, 곤충 등에게 쉽게 속는다. 유명한 현상으로 '영리한 한스 효과(Clever Hans effect)'가 있다. 독일에 있던 '한스'라는 이름의 말 한마리는 고등 수학을 자유자재로 푸는 천재라고 알려졌으나, 사실은 실험자들의 정답을 맞췄을 때의 리액션을 캐치해 답을 맞춘 것이었다. 간단히 설명하면, 말이 정답을 맞추는 과정에서 정답 숫자만큼 자신의 발굽을 두드리는 식으로 실험이 진행되었다. 이 말의 경우는 발굽 두드리기 횟수가 정답이 되었을 때, 앞에 있던 출제자의 표정이나 몸짓이 변한 것을 캐치하여 두드리던 것을 멈췄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스가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으로 착각했으나, 사실 한스는 실험자의 기대나 행동에 따른 미묘하고 비언어적인 반응을 알아채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오류, 즉 실험자의 기대나 행동이 피험자의 행동에 영향을 끼쳐 실험 결과를 바꾸는 현상을 지금은 '영리한 한스 효과'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말이 수학 문제를 풀어야만 대단한 것은 아니다. 실험의 주동자였던 인간들이 미처 눈치채지 못한 비언어적 반응을 세심하게 캐치하는 능력 또한 분명 대단한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둔감한 면이 있다.
결국 벌새는 아니었다. 꼬리박각시 나방이었다. 나방이라서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지만, 속았기 때문에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