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동 하나 주세요."
가끔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아련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전에 다니던 직장 근처에 있는 규동집 같은 것이다. 업무시간에 몰래 나와 땡땡이치던 곳이었다. 몇 년이 지나 다시 찾아보니 초현실적인 기분이었다. (삼성전자에겐 이 기회를 통해 예전에 업무시간에 땡땡이쳤음을 고백합니다. 지금에 와서는 미안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도 저 많이 착취하지 않았습니까?)
하여튼 거의 몇 년 만에 서초사옥 옆 오니기리와 이규동 집에 와서 규동을 시켜먹었다. 경비실 방을 개조한 코딱지만 한 가게인데 소문으로는 월 매출이 수억대가 된다고 했다. 역시 상권은 강남이다.
토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아주머니는 한 분만 있었다. 회사 다니던 시절에 느낀 가게의 활기참은 보이질 않았다. 규동은 괜찮았지만 예전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바닥에 찰박하게 깔아놓는 육수의 분량 조절에 실패한 느낌. 무엇보다 토요일 당번인 아주머니의 분위기가 실망스러웠다. 평일 아침, 출근해서 자리에 가방만 얹어 두고 아침먹으러 내려왔을 때의 느낌과 달랐다. 활력이 떨어지는 기분이랄까. 모르던 사이에 회사가 어려워졌나? (그럴리는 없겠지 삼성전자인데)
규동의 맛을 논하자면 우삼겹의 텍스쳐도 중요하지만, 서빙하는 아주머니들의 에너지도 중요했다. 때문에 오랜만에 찾은 규동집에 약간의 실망감이 들었다. 가게에 틀어 놓은 라디오에선 정지영 아나운서가 예의 그 착한 말투로 작가가 대신 써준 감성글을 줄줄 읽어주고 있었다. DJ에게도 작가에게도 미안하지만 별로 감각적이지도 감성적이지도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나사 하나가 빠진 기분이었다.
혹시 업무시간에 몰래 나와 먹어야만 그 맛이 나는 걸까? 나는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단순히 규동의 맛 때문은 아닐지도 모른다. 원래 그 당시 땡땡이치며 규동 한 그릇 해치우는 것은 나에게 의식 같은 것이었다. 그때의 루틴을 떠올려 보니, 규동을 먹고 나서는 항상 스타벅스 더블샷 에스프레소 캔커피를 마셨다. 뭔가 불량스럽게 달달한 맛의 커피를 들이키고 나면 다시 회사로 돌아갈 마음이 생기곤 했다. 내 인생에 좀 더 관대해질 수 있었다. 그런 의식적 행동이 완벽하게 재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가게에 들어가기 전에 캔커피를 사놓았다. 나는 묘한 불만족의 의혹을 걷어 내기 위해 그 시절에 그랬듯이 캔커피를 따서 한 모금 들이켰다. 당분이 몸에 퍼지는 게 느껴졌다. 가게에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시간도 때울 겸 느긋하게 캔커피를 마시며 가게 벽에 있는 메뉴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메뉴 판 아래에 아주 작은 종이가 코팅되어 붙어 있었다. 생각해 보니 몇 년 전에도 붙어 있었다. 너무 작아서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너무 오랜만에 왔기 때문이다.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생계란은 추가 주문하셔야 합니다.”
유주얼 서스펙트 마지막 장면에 카이저 소제의 취조를 마치고 보내 준 형사가 떠올랐다. 형사는 벽에 붙은 잡다한 전단지를 읽다가 카이저 소제가 전단지 내용들을 이용해 아무 말이나 지어냈다는 것을 깨닫는다. 뒤늦게 거짓말을 눈치챈 형사는 충격을 받은 나머지 마시던 커피잔을 바닥에 떨어트린다. 커피잔이 떨어지는 장면이 느린 슬로모션으로 처절함을 더해 주었다. (물론 마시던 캔커피를 떨어트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생계란은
추가
주문하셔야
합니다
규동은 잘못한 게 없었다. 내가 생계란 추가 주문을 깜빡한 것이다. 규동을 먹는데 생계란을 섞지 않았다니... 너무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가끔 추억의 공간을 방문하게 되면 ‘이 곳이 예전 같지 않음’을 탄식한다. 하지만 스스로도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은 종종 놓치곤 한다. 사람의 마음은 딱 그만큼 간사하기 때문이다.
캔커피를 다 먹을 때쯤에는 아주머니 한 분이 더 출근했다. 먼저 온 아주머니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과연 규동 집에는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