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계에서 죽은 친구를 만났을 때

by 알머리 제이슨

꿈을 꾸면 실존적인 세계 밖에 존재하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이루어진 세계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설령 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선명한 감촉을 무의식의 피부로 느낄 수 있다.


2011년에 죽은 동갑내기 친구 여자애가 있었다. 과로사였다. 실기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수능을 친 후 상경해 미술학원을 다녔을 때, 같은 반에서 만난 친구였다. 고향은 부산이라고 했다. 같은 과에 지원했고, 특차에 합격한 후 이듬해에 같은 과에서 다시 만났다. 3학년 이후에 나는 군대를 가야 했고, 그 친구는 군대를 가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이트로 졸업했다. 제대하고 한 해 뒤에 복학했을 때는 이미 졸업하고 나가 있었다. 나는 아직도 3학년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많은 것이 나보다 빨랐다. 입시미술을 할 때도 그림을 빨리 완성하는 걸로 유명했다. 나도 그리는 속도는 빨랐는데 나보다 훨씬 빨랐다. 그 친구가 수채화로 그리는 석고상 뒤 배경을 굉장히 대범한 오렌지색으로 칠했던 게 기억난다. 학원 선생님에게 칭찬을 많이 들었다. 시험도 쉽게 치고 합격도 쉽게 했었다.


4년 내내 학점도 매우 좋았다. 거의 대부분 A 아니면 A+라고 들었다. 학교에 와서는 한 번의 휴학 없이 바로 졸업을 했다. 05년에 내가 학교로 복학했을 때, 그 친구는 이미 졸업해서 대기업 광고회사에 취직했다. 당시에는 과에서 졸업 후 광고회사로 진출하는 게 제일 인기였다. 내가 4학년 때 산학 프로젝트를 그 회사와 하게 되었는데, 우리 과 졸업생인 그 친구가 연락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학생들이 단체로 회사에 방문했을 때 목에 사원증을 걸고 환하게 웃으며 맞이해 주었다. 나는 졸업 후 오랜만에 만난 그 친구가 반가웠고, 부러웠다. 그 친구는 나를 그냥 반가워했다.


나중에 나도 광고회사 몇 군데에 지원했지만, 나는 다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은근히 그 친구에게 경쟁심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동향 사람이었고 생일도 비슷했다. 2월생이라 재수생이 많은 과에서 어린 축에 속하는 것도 비슷했다. 나는 사실 맨날 뺀질거린 주제에 그 친구가 성실히 학교생활을 하고, 좋은 점수를 받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좋은 직장에 일찍 취직한 것을 질투했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내가 그런 마음이 있었다는 걸 전혀 몰랐다. 우리 과에서 그녀의 별명은 '바보'였다. 약간 어리숙하게 '흐허허허' 하고 웃는 버릇이 있었다. 사실 그 별명은 내가 지어 주었다. 하지만 웃는 소리가 웃긴 걸 빼면 그 친구는 정말 똑똑하고 유능했다. 아무도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디자인 과제를 할 때도 명확히 드러나는 본인만의 센스가 있었다. 게다가 성실했다. 그런 장점들 때문에 회사에서도 선배들에게 많이 인정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사인은 과로사였다.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입학 동기들을 만났을 때, 기분이 너무도 이상했다. 많이 슬퍼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슬픈 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부러워하던 감정은 이미 예전에 사라져 있었고, 사회생활하느라 얼굴을 본지도 꽤 지난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3년 전에 내가 학생이었을 때 산학 때문에 회사에 방문했다가 본 것이었다. 굉장히 따뜻한 봄볕 아래에서 회사 잘 다니라고 인사했던 게 마지막이었다. 장례식 같은 건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가 그 여자애와 아주 잠깐 사귄 적이 있었다. 남자답게 좋아한다고 고백했고, 사귀게 되었지만 오래지 않아 이별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런 감정이었을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본 그 친구의 표정 또한 그랬다.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아주 잠깐 연애감정이 있긴 했지만, 정말 잠깐이었기 때문에 상실보다는 비현실이 더 크다는 표정이었다.


얼마 지나 나는 해외출장을 가게 되었다. 런던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밟는 유럽 땅이었다. 런던에 도착하고 첫날 잠이 들었을 때, 꿈속에서 죽었던 그 친구를 만났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게 단순한 꿈은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분명히, 죽은 친구의 영혼을 만난 꿈이었다. 그 꿈속에서 나는 중간계에 있었다고 확신한다.


꿈에서 그 친구를 만난 공간은, 백화점 같은 밝은 조명이 가득한 실내였다. 빛나고 넓고 반짝반짝하는 곳이었다. 중간계가 왜 그렇게 반짝반짝하고 매끈한 곳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백화점 같은 쇼핑을 하는 공간이었다. 먼 곳으로 여행을 갈 때 공항 면세점을 들렀다 가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친구는 갈색 블라우스 같은 상의를 입고 검은 바지에 높은 통굽 구두를 신고 있었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친구 치고는 꽤나 시크한 패션이었다. 섬뜩함도, 의아함도 없었다. 내가 제일 처음 느낀 감정은 "지극한 자연스러움과 반가움"이었다. 멋쩍어하면서 악수를 하려다가...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싶어서 가볍게 안아 주었다. 그러고 나서 무슨 말을 할까 고민을 했다. 어떤 말을 해야 좋을까. 어떤 덕담이 어울릴까. 몇 초 가량 침묵이 흘렀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어렵게 입을 떼었다.


"저승에서도 살이 찔 수 있는 거야?"


끝끝내 따뜻한 말을 못 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그 친구는 실제로 약간 통통해진 모습이었다. 현실세계에서 대면한 마지막의 모습은 학교에 다닐 때보다 약간 날씬해진 모습이었다. 회사도 다니고 꾸미고 하니 많이 세련되어 보였다. 그런데 죽은 후에 만난 모습은 좀 더 살이 찐 모습이었다. 1학년 때의 처음 만나 바보라고 놀렸을 때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죽은 동기 여자애한테 살쪘다는 소리를 한 건... 너무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나는 20대였다. 20대의 나는 한심한 말만 골라서 하고 다녔었다.

물론 그것이 모욕감을 주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었다. 살아생전에 친구를 알고 지냈을 때 으레 그랬듯이 나는 짓궂게 장난을 걸었던 것이다, 거의 반사적으로.. 그것이 자연스러웠고 나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 왠지 그런 의무감이 들었다. 농담으로 시작해야 했다. 뭔가 슬프지 않고 유쾌했으면 했다. 다행히 친구의 반응도 유쾌했다. 중간계에서 처음 들은 디스였음에도, 살아생전에 그랬듯이, 화도 안 내고 특유의 바보 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칠 뿐이었다. 예전 그대로였다.


저승에서도 살이 찔 수 있냐는 나의 질문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와 보면 알아"


우리 옆에는 그녀와 짧게 사귀었던 내 베프도 서 있었다. 꿈속에서 우리는 약간의 대화를 하였다. 근황 정도 공유했던 것 같다. 즐겁고 들뜨진 않았지만, 결코 침울하지도 않았다.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그녀는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먼 곳으로 긴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말을 아끼고 어른스러워진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흐허허허 하는 바보 웃음으로 내가 던지는 농담들을 받아 주었다.


그녀의 표정에 평화로움이 묻어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다음 세상에는 조금 덜 성실하고 조금 더 고상하게 웃는 사람으로 태어나 과로 같은 것 하지 않고 행복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죽을 때 화장을 한다면 줄넘기(이수열 줄넘기)와 조깅화 한 켤례(나이키)를 같이 불살라 달라고 유언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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