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겨울과 관련된 많은 것들을 싫어한다. 앙상한 나뭇가지도 싫고, 살을 에는 추위도 싫다. 움직임은 부자연스러워지는데 은근히 안에선 땀이 나는 두터운 파카도 싫다. 처음 1분 정도는 낭만적이지만 그 뒤로 최소 며칠은 수북이 쌓여 출퇴근길을 방해하는 눈도 싫다. 코를 막히게 하는 건조한 공기도 싫다. 말하자면 나는 겨울에 대해선 굉장히 편협하다. 반면 여름과 관련된 많은 것들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들은 상당히 많지만, 그중에서 코코넛 나무를 제일 좋아한다.
코코넛 나무는 기분을 좋게 해 준다. 열대의 파란 하늘을 예리하게 도려내는 길쭉한 코코넛 나무의 실루엣은 품위가 있으면서도 경쾌하다. 코코넛 열매도 좋다. 느끼하면서 개운한 희한한 맛의 코코넛 주스가 가득히 들어있다. 열대의 현지인이 커다란 식칼로 꼭대기를 날린 후 대충 빨대를 꽂아서 파는 코코넛 주스를 마실 때 느끼는 청량감은 경험한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다.
언젠가 남태평양의 수많은 섬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아주 조그맣고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무인도에도 코코넛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번성해 있다. 코코넛이 어떤 여정을 거쳐 곳곳의 섬에 잡게 되는지를 보게 되었다.
해안가 모래밭에 늘어선 코코넛 나무의 높은 꼭대기에서 무거워진 코코넛 열매가 떨어진다. 떨어진 열매는 뿌리를 내리고 기둥이 솟아서 또 하나의 커다란 코코넛 나무가 된다. 때때로 코코넛 열매는 바다로 굴러가 파도를 타고 멀고 먼 여정을 떠나게 된다. 때에 따라서는 수천 킬로 밖에 있는 섬까지 떠밀려 가게 된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망망대해를 떠 다니다 문득 새로운 해안가에 도착하게 된 코코넛 열매는 새로운 뿌리를 내리고 기둥이 솟아 또 다른 키다리 코코넛 나무가 된다.
그렇게 해서 지구의 허리를 두르고 있는 수많은 열대의 바닷가는 코코넛 나무들이 지배하고 있다. 큰 키와 펑키한 헤어스타일과 맛있는 코코넛 열매를 뽐내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한 사람의 인간이 사랑을 하고 명예를 떨칠 수 있는 정도의 시간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랜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굉장히 따뜻한 태양과 드넓은 바다와 거대한 바람의 이동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나 자신이 얼마나 수수하고 작은 동물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내가 하나의 코코넛 열매라면 그런 기약 없는 기다림을 견딜 수 있을까? 하염없이 바다에 떠다니며 수천 킬로 밖의 이름도 없는 작은 섬에 도달해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을 수 있을까? 그런 압도적인 느긋함을 견딜 수 있을까?
코코넛 열매의 여정을 떠올리다 보면 코코넛 나무는 우주적인 스케일의 한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코코넛 나무를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