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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머리 제이슨 Mar 10. 2021

수영장 할머니의 한 방

서귀포에서 여름을 맞으며 정기적으로 하는 게 있다. 바로 수영이다. 바다수영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사실은 아니다. 내 경우는 실내수영을 고집하고 있다. 너무 샌님같긴 하지만 그나마 많이 발전한 것이다. 도시에 살 때는 수영장은 커녕 사우나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물과 가까이 살며 워터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조금 더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바다로 나가기에는 아직도 두렵고, 나의 게으름과 타협할 수준으로는 역시 실내 수영이 적당했다. 


이미 4월쯤 되면, 서귀포에선 반팔을 입고 다닌다. 5월이 되면 반바지와 슬리퍼가 추가된다. 그리고 6월쯤 되면 반팔이 아니라 민소매 옷을 입는다. 그리고 '이제 슬슬 수영을 시작해볼까?'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수영장 물의 새파란 색이 떠오른다. 정교한 패턴을 그리며 일렁이는 물결에 여름의 햇빛이 반짝이며 반사되는 장면이 떠오른다. 희미한 클로린 냄새. 스테인레스로 된 사다리의 서늘한 감촉이 기억난다. 


6월 초부터 시간이 날 때 한 번씩 중문에 있는 서귀포국민체육센터에서 수영을 나간다. 그러다 6월 중순쯤 되면 롯데호텔 수영장을 3개월치 끊는다. 레인의 길이는 체육센터가 당연히 더 길지만, 내 실력에는 50미터는 아직 무리다. 롯데호텔의 실내수영장은 20미터가 조금 넘는다. 그정도가 내 수준에 맞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좋다. 평일 새벽에 오픈 시간에 맞춰서 나가면 혼자 독점하듯이 쓸 때도 있다. 주말엔 여행객 손님들이 가끔 보이지만, 많지는 않다. 무엇보다 그 시간에 굳이 수영까지 하러 올 만큼 절실한 여행객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여름이 되면, 서서히 낯익은 얼굴들이 생긴다. 투숙객이 아닌, 나처럼 정기권을 끊어 나오는 손님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토요일에 자주 마주치는 40대 중반의 사나이가 있다. '남자'가 아니라 '사나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있다. 그는 엄청난 스테미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내가 수영을 시작하고 15분쯤 뒤에 들어오는데, 키는 조그맣고 야위었지만 탄탄한 근육을 갖고 있다. 


덤덤한 표정으로 2번 레인을 애용하는데, 일단 수영을 시작하면 30분 가량 쉬지 않고 뺑뺑이를 돈다. 한 번도 지치지 않고 똑같은 속도로 계속해서 20미터 레인을 왕복한다. 속으로 숫자를 세는 것 같지도 않은데, 한참을 돌다가 갑자기 수영을 끝내버린다.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덤덤한 얼굴로, '이만하면 되었지' 하는 것처럼 유유히 탈의실로 빠져 나간다. 역시 호텔 수영장을 정기적으로 찾는 사람은 다르다는 인상을 주는 사나이다.


하지만 더 기억에 남는 손님은, 70대가 넘어보이는 한 할머니다. 이 할머니는 내가 들어가기 전부터 수영을 하고 있다가, 내가 수영을 시작한지 30분쯤 되면 어느샌가 사라진다. 조금 무례한 표현을 하자면 '대니 드 비토'랑 비슷한 인상을 가졌다. 그리고 항상 배영만을 고집했다. 가장 바깥쪽의 레인에서, 비행선 같기도 하고 개복치 같기도 한 모습으로, 둥둥 뜬 상태에서 천천히 팔다리를 저으며 천천히 수영했다. 실로 느긋한 수영이었다. 0.75배로 재생하는 것 같은 느린 동작이었다. 배영이기 때문에 그다지 어려울 건 없다. 그냥 드러누워 떠 있기만 하면 되니까. 


2019년에도, 2020년에도, 여름이 되어 롯데호텔 수영장에 나가게 되면 이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분이 특히 더 기억에 남게 된 작은 사건이 있다. 2020년의 여름이 클라이막스로 치달을 무렵이었다. 태양은 이글거렸고, 호텔 정원의 야자수들은 잔뜩 신나 있었다. 그날도 아침에 수영을 가서 그 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약간은 공격적인 자유형을, 그 할머니는 0.75배속의 배영을 고집하고 있었다. 


30분 정도 돌고 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쉬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드러누워 배영을 하다가, 갑자기 몸을 뒤집더니 자유형을 하기 시작했다. 뜬금없이 자유형을 하는 것도 놀라웠고, 게다가 매우 빨랐다. 배영을 하던 때와 달리 5배속은 되는 듯한 빠른 스트로크를 하였다. 드러누워 비행선처럼 유영하던 70대 할머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갑자기 마이클 펠프스가 빙의라도 한 것처럼 맹렬한 자유형이었다. 한 바퀴 정도 빠르게 돌아 오더니, 할머니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드러누워 배영을 하기 시작했다. 0.75배속이었다. 


할머니가 자유형을 하던 모습을 본 것은 그게 처음이었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도 수영장에서 몇 번이나 할머니를 마주치게 되었지만, 단 한 번도 자유형을 하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었다. 항상 배영이었다. 항상 느렸다. 하지만 그 할머니는 이미 내 머리속에 다른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아직도 그 때를 회상하면 아무도 없는 허공에 질문을 던진다. "대체 왜 그 때만 자유형을 하신 것일까?" 왜 그 한 순간 뿐이었을까?


세렝게티 평원의 사자가 그렇다. 사자는 사냥을 하지 않을 때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심지어 바로 옆에 얼룩말이 지나가더라도, 배부른 상태에서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가끔 사냥을 할 때는 저돌적이고 맹렬한 모습을 보여 준다. 우리가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보던 사냥의 모습은 사자의 삶의 극히 일부분이다. 


훌륭한 투자자들이 그렇다. 진짜 고수들은 평소에는 빈번하게 트레이딩을 하지 않는다. 유유히 레저를 즐기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금융위기 같은 진정한 위기가 오고, 시장이 폭락하여 절체절명의 저가매수 기회가 오면 주저없이 달려들어 거액을 매수한다. 그리고 나면 다시 원래의 유유자적하는 삶으로 돌아와 느긋하게 수익을 즐긴다. 


모르긴 몰라도, 그 할머니는 훌륭한 투자자일 것이다. 아니면 훌륭한 사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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