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문 관광단지에서 테디베어 박물관을 지나면 롯데호텔 정원에 심어놓은 키가 큰 야자수들이 보인다. 호텔의 동쪽에는 좌측으로 빠지는 길이 하나 있다. 한국콘도로 들어가는 길이다. 한국콘도를 지나쳐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멋진 카페를 들러 볼 수 있다.
카페는 색달 해수욕장 뒤편의 높은 절벽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다. 카페 건물 앞으로 굉장히 넓은 잔디밭을 만들어 놓았다. 잔디밭 끝 난간에 서서 보면, 제주 남쪽 바다를 파노라마로 구경할 수 있다. 아래로 눈을 돌리면 색달 해수욕장이 내려다 보인다. 초여름이 되면 이미 백 명은 넘는 서퍼들이 파도를 즐기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잔디밭이 있고 강아지를 데려갈 수 있는 카페라서, 우리 가족은 1년에 네댓 번은 놀러 가는 곳이다. 처음에는 기막힌 경치에 비해서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다. 약간 오래된 느낌이었다고 할까? 19~20년 즈음에는 관광객도 별로 없어서 쓸쓸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5년 사이에 카페는 두 번 정도 리뉴얼을 했다. 중간에 주인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부모님이 하던 걸 아드님이 물려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리뉴얼을 거치며 카페는 점점 더 젊은 감성으로 변해 갔다. 절벽 쪽의 벤치와 의자들도 새롭게 바뀌었다. 아예 끝쪽에는 새로 데크를 설치해 전망대도 만들었다. 경쾌하고 세련된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손님들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5월 중순, 유독 날씨가 험하다 모처럼 화창하게 바뀐 날이었다. 오랜만에 카페를 방문했다. 바다는 새파란 색이었고 햇빛은 수직에 가깝게 떨어지고 있었다. 역시 이런 날씨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그 사이 카페는 꽤 알려졌는지 외국인 관광객도 꽤 많이 와 있었다. 잔디밭 중간의 나무 그늘이 있는 자리에는 히잡을 두른 중동 아주머니가 딸과 함께 경치를 즐기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 있는 데크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개를 안고 있었고, 아내는 아기를 안고 넓은 잔디밭 쪽으로 걸어 나갔다. 개와 실랑이를 벌이며 억지로 바다 사진을 찍었다. 아내는 어디 있는지 돌아보았는데 아까 그 중동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먼발치에 있는 나를 돌아보더니 이 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개를 안고 다가가 중동에서 온 모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와이프는 중동 딸내미가 너무 귀여워서, 아이는 와이프가 안은 아기가 너무 귀여워서 서로 관심을 보인 것이다.
중동 아주머니는 꽤 유창하게 영어를 했다. 요르단에서 왔다고 했다. 내가 요르단에 대해 아는 건 페트라 밖에 없어서 엄...페트라? 하고 얼빠진 질문을 했다. 익숙한 반응이었는지 웃음을 지었다. 엄마의 이름은 에슬람, 딸의 이름은 매들린이었다. 매들린은 나무 그늘 아래로 다가가 흙을 구경하고 있었다. 에슬람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남편은 원전 기술자고 대전 카이스트에서 일한다고 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가족이 한국으로 이사 온 것이다. 매들린은 국제학교에 다니는데,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웠기 때문에 부모님보다 더 한국어를 잘했다. 때때로 엄마 아빠를 대신해 통역까지 해 준 적도 있다고 한다. 다섯 살 치고는 훌륭한 퍼포먼스다. 얼굴도 예쁘고 아랍어에 영어에 한국어까지 할 줄 알다니... 미래가 촉망되는 어린이다.
라고 생각할 무렵, 매들린이 흙 구경을 끝내고 우리 부부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매들린의 손 위에는 쥐며느리 세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공벌레! 공벌레 만져봐요!'라고 한국어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의 동공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공벌레라고도 부르고 쥐며느리라고도 부르고... 정확히 말하면 쥐며느리의 한 종류가 몸을 동그랗게 마는 공벌레. 아무튼 우리 부부는 벌레를 무서워하고, 공벌레도 좋아하지는 않는다.
제주에는 공벌레가 꽤 많다. 봄이 끝날 무렵 날씨가 따뜻해지면 한 두 마리씩 보이기 시작하고, 여름이 될 무렵이면 엄청나게 번식한다. 어지간한 화단을 지나면 공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있다.
딱히 공벌레와 사이가 나쁜 건 아니다. 가까이서 보면 발이 너무 많아서 징그럽지만, 너무 작으니 크게 무섭지는 않다. 일단 해충도 아니다. 보이는 족족 밟아 죽인다던지 그런 짓은 안 한다. 길을 가다 공벌레가 보이면 밟지 않으려고 신경 쓰는 정도.
물론 손으로 잡거나 그럴 생각은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미래가 촉망받는 어여쁜 중동 어린이에 의해, 나의 사소한 원칙은 시험에 들었다.
와이프가 선수를 쳤다.
"이모는 무서워서 공벌레 못 만져."
매들린이 답했다.
"이모 무서워? 나는 공벌레 안 무서워."
다시 들어도 훌륭한 한국어 실력. 곧이어 매들린은 나를 올려다보며 손을 들이밀었다. 세 마리의 공벌레. 그중 한 마리는 매들린의 팔목으로 경로를 옮겼다. 매들린은 팔목에 있던 녀석을 다른 손으로 집어 다시 손 위로 옮겼다. 그리고 아랍계 특유의 밝은 금색의 깊은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스티브 맥커리의 유명한 소녀 사진에서 본 그 눈동자 같았다.
나의 원칙을 지킬 것인가? 어린이의 동심을 지켜 줄 것인가?
와이프가 이미 선수를 쳤기에 나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심호흡을 하고 왼손을 내밀었다. 매들린은 그중 가장 큰 녀석을 집어 내 손 위에 올려 주었다. 중동 어머니는 흡족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공벌레는 내 왼손 중지를 타고 유유히 기어갔다. 수십 개가 되는 발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신기하게도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깃털만큼도 안 되는 느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엄살 피울 만큼은 아니었다.
약 7초 정도, 무례하지 않을 만큼만 인내 했다. 그리고 잽싸게 아이의 손에 공벌레를 넘겼다. 매들린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심도 지켰고, 공포심도 다스렸다. 아내 또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기도 뺐는데 나까지 거절하지 않은 게 다행스러운 눈치였다.
매들린은 다시 나무 그늘 밑으로 걸어갔고, 중동 어머니와 대화를 이어 갔다. 생각해 보니 중동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가족끼리 매해 색달 해수욕장에 놀러 온다고 했다. 한국 생활을 담은 인스타그램도 한다고 했다. 와이프와 에슬람은 인스타 핸들을 주고받고 맞팔을 하였다. 내년에 제주에 놀러온다면 우리 집에도 놀러 오기로 이야기했다.
이래저래 훈훈한 광경이었다. 나는 아내와 에슬람의 대화를 들으며 쥐며느리가 손가락 위로 지나간 감각을 떠올렸다. 생명의 존엄성도 상기해 보았다. 쥐며느리에 대한 편견을 조금 벗어 낸 기분이었다.
매들린은 다시 우리에게 다가왔다. 물이 담긴 종이컵을 우리에게 내밀었다. 종이컵에는 쥐며느리 세 마리가 둥둥 떠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콩벌레 수영하고 있어!"
콩벌레는 육지 생물이라 아마도 수영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또 다른 시험에 들었다. 아이에게 진실을 알려 줄 것인가. 조금만 더 동심을 지켜 줄 것인가. 나의 고뇌를 눈치챈 에슬람 여사는 딸에게 부드러운 말투의 아랍어로 뭐라 뭐라 이야기하였다. 매들린은 나무 둥치로 돌아가 종이컵의 물을 부어 주었다.
쥐며느리들은 해방되었고, 색달에도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