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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Nov 07. 2023

너는 이상한 결정을 해.

직관적인 선택의 결과

금요일 저녁에는 고양이들도 단체로 개박하 향을 맡으러 어디 가는 모양이다. 공원이 텅텅 비었다. 흐음. 콧구멍에서 김 빠지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언제나 이 시각 즈음에는 고양이들이 시계탑 근처 계단에서 캣맘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솜바지를 입은 것처럼 하체가 통통한 치즈태비를 보겠구나 싶었는데 고양이는 없었다.      


시계탑 앞에서 뭉그적거리는 사이 조그만 누군가가 내 앞에서 주춤거렸다. 혹시 길을 막아서고 있는 건가 싶어서 옆으로 살짝 비켜 가는데 그녀가 땡그란 눈을 하고서 나를 불러 세웠다.     

 

"어머, 난 여기 내 여동생이 와 있는 줄 알았잖아."

"네??"

"아니, 전에도.. 그러니까 9월인가 10월에도 그쪽을 봤는데 말이에요. 우리 여동생 하고 너무 닮아서 정말 놀랐지 뭐예요."

"아.. 네네. 정말 많이 닮았나 봐요."

"응! 정말 많이 닮았어요. 지금 우리 여동생이 자기보다 많이 늙었는데, 그러니까 어렸을 때 여동생이 그쪽이랑 정말 똑같이 생겼었어요.”

"하하하. 네에.. 거참.. 신기하네요."

    

변죽이 좋았다면 그 여동생도 나처럼 미인이냐고 시답잖은 농담을 하고 사진이라도 한번 보자고 했을 텐데.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나를 닮은 그 사람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그녀의 여동생이 또 다른 미래의 나는 아닐지. 과연 미래의 나는 잘 살고 있을지.


나는 길고 뾰쪽하게 생겼다. 한때 유행했던 연예인 닮은꼴 어플을 돌리면 강동원이나 김재중 같이 날카롭게 생긴 남자 연예인들이 매칭되었다. 물론 내가 그렇게까지 심하게 잘생긴 건 아니고. 어쨌든 성별이 여자인데 머리카락이 길수록 묘하게 남자 같아지는 얼굴이 흔치 않다고 여겼지만, 그것 역시 내 예측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인생은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고 예기치 못한 일들은 빈번히 일어난다. 세상은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내게 그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럴 때마다 미래를 예측하려는 생각과 마음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깨닫는다.     


그래서일까. 나는 나이를 먹어 갈수록 직관적인 선택을 빈번히 하게 되었다. 합리적인 이유가 수십 가지이고 손해 볼 것이 뻔한데도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움직이질 않았다. 어떤 분이 그랬다. 너는 생각이 많고 속도 깊은데 이상한 결정을 한다고. 맞다. 직관적인 선택은 종종 나조차도 불가해한 선택으로 여겨지기도 하니까. 그러나 세상이 매번 이성적으로 돌아가지 않듯 이성적인 선택이 반드시 바라던 결과를 안겨 주지는 않았다.  

    

인생은 이성적인 선택을 해야 될 때가 대부분이지만 때론 자신의 직관을 믿어야 할 순간이 온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추론으로도 도무지 결론 내릴 수 없을 때가 그 순간이다. 예측되는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고 그 불안은 곧장 망상으로 이어진다. 그럴 때는 그냥 자신의 감을 믿고 고민으로 소모되는 에너지를 현재를 살아가는 에너지로 사용하는 것이 삶을 훨씬 더 평온하게 만든다. 야멸찬 목표의 종착지도 결국은 고통 없는 평온한 삶일 테니.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합리적인 선택을 했음에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우리는 자연스레 예측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나 남 탓을 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직관적인 선택은 나의 탓이 분명하므로 오히려 후회가 덜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관대한 법이라 자신에게는 후한 대접을 해준다.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되려고 내가 눈이 돌아서 그랬나 보다 하고. 그냥 넘겨버린다.     

 

직관적인 선택은 그래서 삶을 더 가볍게 만들어 주고 현재를 살아가게 한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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