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지런한백수 Jan 24. 2023

1. 명절에 맛있는 걸 먹지 못하는 이.


 명절이라 하면 사람이 복작거리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들을 교차하며 보는, 크게 반갑진 않지만 또 만나면 별 감정없이 웃으며 근황을 얘기하니 나쁜 기억도 없는 것이 연상되곤 한다. 물론 별 감정 없는 그 짧은 시간에 구태어 좋은 소리는 못할 망정 뼈를 박는 얘기를 하시는 어른들도 있다. 어른들 뿐인가,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한 어린이들도 그러곤 하지. 그래서인지 최근 사람들은, 젊은이들은 명절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이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우리가 흔히 90년대까지만 해도 있었던 '한국인의 정' 이 사라진 것과 같다고 한다. 옆집, 앞집, 위아래 이웃들에게 우리 아이의 밥 한끼를 맡기고 감사함과 배려를 나누던 그 정은 사라지고 개인주의들만 자리 잡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린 더 이상 그 정을 누리지 못할 것인데, 그 시대의 '정' 이란, 조건 없는 나눔과 배려가 제공되듯 그를 관심의 영역으로 함께 따라오는 말들도 견뎌야 한다는 뜻이기도 해서다. 불필요한 관심과 지나친 간섭을 피함과 동시에 우린 정도 잃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 정은 왜 우리들 곁에 여전히 멤도는 것일까. 명절이 싫다는 요즘 젊은이들도 함께 있는데 말이다. 이럴 때면 그 젊은이들과 사라진 정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기도 하다. 명절 전이면 경기도에선 엄마가 명절 전날에 식구들이 많이 찾는 시댁을 위해 전을 여러 종류를 부친다. 전은 한 티도 안 난다고 술과 먹을 수 있는 새우나 고기도 늘 준비완료다. 매번 장을 볼 때면 굳이 그러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감정은 요즘 젊은이 감정인가. 그러나 정이 넘치는 엄마는 대식구인 시댁을 위해 고기도 새우도 전을 부치기 위한 재료도 완벽하게 총알장전 해둔다. 의욕과 달리 손과 체력은 느려서 하루는 재료를 다듬고 하루는 꼬치를 위해 보기좋게 길이를 맞추어 자르고 하루는 전을 부친다. 나는 딱,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꼬치 길이를 맞출 때까지 함께한다. 2-3년 전만해도 동그랑땡을 직접해서 야채도 직접 다졌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이란, 집에 계시는 아버지께 죄송하지만 내가 왜. 남의 식구를 위해 내가 먹지도 못할 요리를 이리 준비해야 하는가, 이다. 아버지도 집안일을 안 하시는 축은 아니나 '시댁' 의 요리를 해야 하는 엄마를 둔 딸의 입장에선 턱없이 부족하다. 친구를 만나지 말고 야채를 다지세요. 매주 가는 부모님 댁에 구태어 가지 말고 고기 양념을 하세요. 등등. 물론 잘 하신다. 그럼에도 엄마 옆에서 같이 했으면 하는 것이 딸의 마음이니까. 그래서 일찍 강원도에 가야할 때면 늘 엄마가 걸린다. 울 엄마 저거 혼자 다 할텐데.


 이렇게 엄마와 전 부치는 준비를 하고 아버지가 고기 양념을 하는 동안 내가 먹을 수 있는 타이밍이란 없다. 준비하느라 무려 2-3일이나 걸렸던 전들은 존재없이 사라질 것이고 고기나 집에서 먹을 수 있게 작은 한 통 정도 남을 것이다. 그것도 명절이 끝나고 나는 맛 볼 수 있다. 명절 하루 전이나 이틀 전에 강원도에 가야하니.


 버스에 몸을 맡기고 내리 자다보면 강원도에 도착한다. 이때부터 나는 엄마와 또 다른 댁살이를 시작한다. 이걸 뭐라해야 할까. 친댁살이? 아빠 집이지만 친구들이 모두 시어머니냐고 하는, 어머니를 거들어야 하는 시간이다. 거들지 않아도 몸이 달싹이고, 괜히 주위를 서성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러지 않았는데 나이를 먹고, 이 집에 머무는 횟수가 늘며 이제 내가 손님이 아니라고 스스로 인식해서이다. 물론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머니가 뭐라고 몇 번 한 것 같기도 하다.


 도착하면 장을 함께 보는데 어머니도 아빠와 둘이 약 20년을 사셨기에 차에 있는 아빠를 뒤로 하고 움직이는 발걸음이 매우 거침없다. 내게 말도 없이 산 봉투만을 넘긴다. 처음엔 이 손길이 숨이 막혀와 일머리가 없는 녀석처럼 엉거주춤 봉투를 받아 들었다. 언제 봉투를 넘길지 모르니 그 뒤만 쫑쫑 쫓는다. 또 말은 얼마나 작게 하시는지. 몇 번 겪어보니 저건 혼잣말을 빙자한 말이었다. 상대가 용케 듣고 네? 어? 하면 그것도 못 들었냐는 듯 크게 말하고, 상대가 못 들은 척 하면 혼잣말이 되어버리는.


 장이라는 거사를 마치고 오면 시골 전원 주택의 어두 컴컴한 집에서 어머니는 무언가 계속 사부작거리신다. 그래도 요즘은 짐도 나르고 어디에 뭘 놔야 할지 알아 눈치를 보지 않고도 제 할일을 찾아서 한다. 부엌 일은 설거지든 상 치우는 일이든 뭐라도 하고 싶은데 혼자 하는 게 편하다며 곁을 주지 않으시니 그냥, 매번 시도하는 척을 하고 만다. 그럼 엄마가 생각난다. 울 엄마가 내가 여기서 집안일 하려고 기웃거리는 거 알고 있으려나. 알면 욕할텐데. 집에서나 해라 이녀석아! 하하. 그래서 말하지 않는다. (침묵)


 아빠가 코로나 백신을 맞기 시작한 21년 도에 혹시 몰라 알레르기 검사를 했다가 육류를 먹지 말라는 청천벽락같은 결과를 받았다. 단순 알레르기가 아니라 혹시 모르게 섭취했다간 주사를 당장 놔야할 정도로 심한 수치였다. 강원도에 드나들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는데 그 중 3년은 고기를 맛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밥상엔 늘 비슷한 반찬과 생선류, 찌개였다. 음식 솜씨가 좋으시니 맛은 일품이었다. 또 먹을 걸 가리지도 않고. 명절 당일에 맞추어 이틀 전에 도착하여 명절 당일에 친정에 가는 며느리처럼 강원도를 떠나는데 한 2-3년 전부터 어머니의 언니 분이 돌아가시며 조카들이 적적했던 강원도 집을 명절마다 방문하기 시작했다. 내가 떠날 때 그분들이 바통터치를 하며 오는 셈이다. 오는 이가 여럿이 되니 가족이 많아져서 좋겠다는 내 말에 신경써야 할 사람이 많아진 것 뿐이라며 혀를 차던 어머니는 조카들에게 전화가 올 때면 목소리 톤이 달라졌다. 내 전화도 저렇게 받을까? 아니. 단호히 아니라고 할 수 있기에 전화가 올 때면 입이 삐죽여지곤 하는데 애초에 내 사람이 아니니 큰 기대도 하지 않는다. 모두 나이를 먹고 구성한 가족이기에 서로에게 많이 요구하지 않는 것. 그것이 또한 장점이기에. -물론 여러 단점들이 다른 주제로 소개될 것 같다.-


 강원도에선 명절 전날에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명절 당일 아침에 명절 음식이 올라온다. 그러면 그때 기름기가 묻은 음식을 맛 볼 수 있다. 전, 생선, 아빠는 못 먹지만 가끔 준비되는 고기. 해산물 등. 2박 3일은 내 기준엔 충분히 긴데 어른들 입장에선 짧은지 아침만 먹고 가면 이르다 하여 늘 점심까지 먹고 경기도로 올라간다. 경기도 집에 반가운 마음에 도착하면 집은 식구들이 없어 휑하다. 음식도 냉장고에 차게 식은 것이거나 명절을 시댁에서 보내 -잠을 자진 않아도 밥은 그곳에서 먹으니- 밥이 없어 애달프기도 하다. 나도 엄마가 한 전 좋아하는데. 라고 괜히 배고픈 배를 만지고, 아쉬움을 감춰본다.


 저녁이면 가족들이 돌아와 기름 부은 음식들에 부대끼는 듯, 요리하느라 지친 엄마와 아버지가 요리는 이제 하고 싶지 않다는 듯 대충 먹으려 할 때면 나는 이제 시작인데! 싶다가도 지친 기색에 간소한 음식을 맞이한다. 두 집 살림을 하며 가장 손해보는 것이 일은 양가에서 다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맛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엔 할머니도 경기도 집 근처에 집을 구하시고 음식도 굴, 갑오징어, 갈비, 전 등 다양하게 해서 맛있게 먹을 준비를 하고 도착했더만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부터 심해진 기침과 오한, 몸살 기가 모든 것을 잡아 삼켰다. 결과적으론 2번째 코로나였다. 참 운도 없지. 먹을 것도 못 먹고, 양가만 오가며 눈치밥만 먹고 몸만 아프고 만. 그래서인지 이번 명절은 유독 서러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0. 두집 살림하는 중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