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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빛푸를은 Sep 14. 2021

내가 잊은 것들

봄 밤에 몰래 피던 하얀 목련

여름 밤 세찬 빗속을 뛰어가던 무모함

붉게 지는 노을을 한없이 바라보던 소리없는 침묵

컴컴한 밤  소리를 잠식하며 내리는 빗소리에 이상하게 편안해지는 새벽 

내가 보고싶어 야옹 야옹 울어대던 우리집 고양이의 목소리

밤 새고 아침 9시쯤 잠들던 스물세살

하얀 낮, 함께  눈사람을 만들던 12살 무렵의 검은 개

집떠난 외로움 속, 밤을 빠르게 가르는 차소리

늘 무섭기만 했던 아빠의 12월 31일 고해성사 시간

매일 매일이 푸릇 푸릇하고 통통 튀던 열정 

친구에게 주기로 했던 빨간 리본핀 


그리고


무엇을 잊었는지 잊었다 

매일 매일 한 웅큼씩 

빠지는 그리운 기억의 카락들 

그 속에 무엇이 각인되었는지도 모르고 그냥 산다

날마다 무엇을 잊고 사는지 모른채로 

그냥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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