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밤에 몰래 피던 하얀 목련
여름 밤 세찬 빗속을 뛰어가던 무모함
붉게 지는 노을을 한없이 바라보던 소리없는 침묵
컴컴한 밤 소리를 잠식하며 내리는 빗소리에 이상하게 편안해지는 새벽
내가 보고싶어 야옹 야옹 울어대던 우리집 고양이의 목소리
밤 새고 아침 9시쯤 잠들던 스물세살
하얀 낮, 함께 눈사람을 만들던 12살 무렵의 검은 개
집떠난 외로움 속, 밤을 빠르게 가르는 차소리
늘 무섭기만 했던 아빠의 12월 31일 고해성사 시간
매일 매일이 푸릇 푸릇하고 통통 튀던 열정
친구에게 주기로 했던 빨간 리본핀
그리고
무엇을 잊었는지 잊었다
매일 매일 한 웅큼씩
빠지는 그리운 기억의 카락들
그 속에 무엇이 각인되었는지도 모르고 그냥 산다
날마다 무엇을 잊고 사는지 모른채로
그냥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