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40분, 아이스티
그런 사람들이 있다. 갑자기 훅 나타났다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는. 이 카페가 처음 문을 열고 며칠이 안됐을 때 그 여자 손님을 처음 만났다. 들어올 때부터 뒷문으로 쭈뼛쭈뼛 들어오더니 카페 안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샅샅이 훑어보았다. 그럴 만도 했다. 조용한 주택가에 느닷없이 카페가 생겼으니 말이다. 그 손님은 뽀글거리는 긴 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여자였다. 커피보다는 차에 관심이 많다며 어떤 종류들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마침 우리 카페는 계절에 맞는 차를 다양하게 준비해 두어서 자신 있게 소개해주었다. 그녀는 루이보스를 고르면서 말했다. “여긴 차 종류가 다양한 편이네요. 앞으로 와서 하나씩 먹어봐야겠어요.”
수줍은 첫인상과 달리 넉살 좋은 손님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에도 같은 시간에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긴 머리에 안경, 긴소매의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나에게 카페가 너무 예쁘다고 칭찬하면서 사진을 열심히 찍어갔다. 그리고 꽤 자주 방문하면서 본인의 일과를 설명해 주었다. 노래를 부르는 친구라고 했다. 근처에 있는 연습실에 가는 길에 이곳에 들러 차 한잔 마시고 설렁설렁 걸으며 산책하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동전을 잔뜩 들고 온 적이 있었다.
“죄송한데, 동전으로 계산해도 될까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당연하죠.”
평소처럼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녀는 그날따라 웃지 않았다. 잔을 건네받은 뒤엔 창가에 앉아 오랫동안 작은 목소리로 통화를 하다가 한참 후에야 짧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 뒤로 며칠 동안, 그 장면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까? 왜 그렇게 어두운 표정을 지었을까? 물어보지 못한 말들이 잔잔히 가르 앉은 채로, 그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며칠 후에 또 같은 시간, 같은 옷을 입고 그 여자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해윤. 바다처럼 넓고 부드럽게 적신다는 뜻이라고 했다. 자신의 이름과 뜻이 참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는 굳이 묻지 않기에 내 이름은 알려주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이 손님이 조금은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같은 시간에 해윤은 창밖 너머로 밝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나도 고개를 까딱하며 마주 웃었다.
“오늘은 차 안 마시는데요. 물어볼 게 있어서요!”
“그래요? 뭔데요?”
“혹시 이번 주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퇴근하고 시간 되시면 제가 잘 아는 바가 있는데 같이 가실래요?
혼자도 가끔 가는데 공간도 예쁘고
음악도 좋더라고요.”
“아…!”
정말 미안하게도 이 제안을 거절하고 싶었다.
“제가 금, 토에는 수업을 들으러 가서요. 전에 일했던 카페 사장님이 어렵게 시간 내주신 거라..”
거짓말이었다.
“아, 그래요? 그럼 다음에 시간 될 때 같이 가요!”
“좋아요!”
해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카페를 나섰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도록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사라졌을까? 그때 그 거절이 못내 상처가 됐던 걸까?
아마도, 내 짐작으로는 해윤은 또 다른 어여쁜 공간을 찾아내어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같이, 바다처럼 넓고 부드럽게 주변을 적시고 품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