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다소 뜨거운 시작일지도

9시, 따뜻한 아메리카노

by 신지원

오늘 아침 첫 번째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조금은 천천히 물을 붓는다. 첫 잔이라 그런가 괜히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러다 인생의 첫 번째 커피맛이 어땠던가 생각했다. 어릴 때 집에서 엄마가 타 마시던 커피가 떠올랐다. 달콤한 향기와는 달리 쓰디쓴 그 맛을 기억한다. 참깨만 한 굵기의 연한 갈색을 띤 커피가루들이 빨간 뚜껑의 유리병에 가득 차있었다. 엄마는 자그마한 티스푼으로 커피가루들을 조심스럽게 떠서 얇은 자기 잔에 담아 자라랑- 스푼을 컵에 부딯히며 젓곤 했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탄 커피를 옆에 두고 홀짝이며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곤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참으로 우아한 우리 엄마. 그리고 몇 년이 훌쩍 지난 후에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대학로에서 언니가 처음으로 아메리카노라는 것을 사주었다. 언니는

“요즘엔 다들 이거 마셔.”

라며 으스대기에 나는 호기롭게 마셔보았지만 생각보다 써서 애써 참아가며 마셨다. 피가 팽팽 돌아가는, 어른이 되는 기분이었다. 대학에 가서는 밤을 새우는 일이 허다했고 카페인을 채우기 위해서 자주 커피를 마셨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커피맛에 적응했다. 그땐 쓴 커피가 대세였는데 요즘은 신 커피가 유행이다. 이렇게 된 지도 벌써 한참이다. 그렇지만 뭐랄까 커피는 쓴 맛이지 싶다. 까맣고 쓴 커피. 색과 맛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음료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뭐 각자의 취향이라는 게 있으니까. 과일향이 팡팡 터지는 라이트 로스팅 커피도 훌륭한 것들이 많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오늘의 첫 커피가 다 내려졌다. 아무도 없는 주말의 이른 아침, 이 커피는 내 차지다. 조심스럽게 한 모금 들이킨다.

‘음, 향긋해.’ 여유롭게 창가를 바라보고 있는데 멀리서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바로 근처에 살고 있는 단골손님.

“오늘 내 첫 커피 마시러 왔어요.”

일흔은 훌쩍 넘었을 나이인데, 늘 날씨에 어울리는 외투에 빵모자를 쓰고 온다. 그는 거의 같은 시간에 온다. 주말 아침엔 커피를 사서 도서관까지 걸어가 책을 빌려오는 루틴을 가지고 있다. 이 동네에서 가장 시간을 성실하게 쓰는 사람처럼 보인다.

“오셨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커피를 내린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고마워요. 많이 파세요.”

우리의 첫 커피로 서로에게 응원을 건넨다. 카페 문이 열렸다 닫히면서 매미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온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