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무르익어가는 사람들

9시 50분, 따뜻한 라테

by 신지원

평일 이 시간에 매장에서 마시고 가는 손님은 아주 드물다. 테이블 손님이 오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다. 그런데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 멀리서 걸어온다. 예전에 비오는 날에 왔던 단정한 아메리카노 손님. 마지막으로 라테를 시켰던 게 기억났다. 커피를 건네며 용기 내어 슬쩍 한마디 건네 보았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아 맞아요. 여기 커피가 계속 생각나서 일부로 왔어요. 전엔 여기가 직장 근처였는데 그만둔 지 좀 됐거든요”

“아 그러셨구나. 일부로 오신거에요? 감사해요.”

“커피 여전히 맛있어요.”

“헤헤, 편안히 계시다 가세요!”

테이블에 올려놓은 핸드폰에 진동 소리가 울렸다.

“네, 김호연입니다.”

음악소리를 살짝 줄였다. 가끔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손님이 있거나 전화통화를 하는 경우에는 음악 소리를 살짝 줄인다.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티가 잘 나지는 않지만 그냥 나만 알 수 있는 작은 배려다.

“네! 수요일 2시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호연님이 살짝 미소를 짓는다. 다시 음악소리를 살짝 키운다.

갑자기 호연님이 뒤를 돌아보더니 이야기를 건넸다.

“여기 카페 기운이 좋은가봐요! 저 방금 이력서 통과됐다고 전화 받았거든요.”

“아! 정말요? 축하드려요!”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흑백이었던 호연님의 세상이 갑자기 컬러로 물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노란 셔츠를 입고 왔다. 밝게 웃고 있는 모습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전에 회사는 좀 힘들었어요. 다들 잘 지내는데 저 혼자만 잘못한 것 같아서요. 아예 다른 일을 할까도 생각했는데, 여유를 갖고 쉬어보니까 그건 아니라는 결론이 났거든요.”

어떤 기분인지 너무 잘 안다. 나도 그랬으니까. 세상에서 나만 뒤로 걷는 기분이었다. 나 자신이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날카로운 화살들이 나를 향했고 가장 만만한 자신을 탓하기에 이르렀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뒤로 하고 다시 스스로를 사랑하기까지 오래도 걸렸다. 그런데 단 몇 개월 만에 회복하고 돌아와 저렇게 맑은 웃음을 지어보이다니.

“참 강하시네요! 그런 것들을 극복하고 새로 시작한다는 게.”

“그렇게 믿기로 결심했거든요. 나는 현명하고 건강한 사람이라고”

“정말로 멋져요 진짜로.”

“저는 연차가 쌓이고 경력이 생기면 좋은 선배가 되고 싶어요. 저처럼 힘들어하는 후임이 있으면 도와주고 싶어요.”

“크으”

엄지를 치켜 올려보였더니 호연님이 빵빵 웃는다.

말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상상해본다. 멋지게 제 몫을 해내고 후임에게 존경받으며, 배려있는 동료이자 선배로서 행복하게 회사생활을 하고 있을 호연님의 모습을.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