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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미역국을 좋아하지 않지만...
by
신수현
Jul 7. 2025
나는 미역국을 좋아하지 않지만, 미역국은 피를 맑게 하고 산모에게 좋은 음식이며 생일에는 항상 식탁에 오르는 음식이다.
그래서 미역국은 '맛'보다는 '기억'과 '건강'의 음식으로 남아 있다.
나이가 들수록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던 음식을 하나씩 따라 하게 된다.
작년 생일 즈음, 나도 미역을 사서 끓여보았다.
혼자 먹으려고 한 줌만 꺼냈는데, 어느새 냄비에는 네 사람 분량의 미역국이 가득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양지를 조금 사고, 작은 한 줌의 미역을 물에 불렸다.
혹시 부족할까 다시 조금 더 꺼내 넣었고, 결국 또다시 4인분이 되어버렸다.
엄마의 손길은 항상 '넉넉함'이었다는 걸 이렇게 배운다.
형제가 많았던 우리 집에서 미역국은 배를 채워주는 따뜻한 국이었다.
고기가 없어도, 홍합이 없어도, 미역에 으깬 마늘, 참기름 한 숟갈,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하루 한 끼, 모두가 고개 숙여 떠먹는 국이 완성됐다.
'생일'이라는 말 속에는 나의 탄생과 엄마의 기다림이 숨어 있다.
엄마는 부푼 배를 매만지며 아기가 건강하길 바랐을 것이고, 뱃속의 나 역시 엄마가 무사하길, 세상에서 만나길 기다렸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한 가족이 되었다.
아슬아슬한 생과 사의 경계를 지나 시간이라는 다리를 건넌 두 사람. 사랑하기만 해도 모자란 시간을 왜 나는 그토록 무심하게 흘려보냈을까.
아이가 태어날 때, 엄마는 혹시라도 생을 마감할까 옷을 정리하며 죽음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렇게 생명을 내놓으며 엄마는 일곱을 낳았다.
그런 엄마에게 생일날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고 서운해하며 거리를 둔 시간들. 딸이라는 존재는 때때로 모질고, 이기적이며, 못난이다.
형식처럼 받아먹고 자란 것들이 이제야 그 소중함을 깨달을 무렵, 나는 점점 아이가 되어간다.
말을 잃고, 눈과 귀가 어두워지며, 손을 잡아야 할 시간은 지나 이젠 엄마의 손을 놓아드려야 할 시간이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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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기다리며 글을 씁니다. 멈춘듯, 흐르지 않는 어둠과 함께 ... 시간에 대한 후회, 반복되는 상처로 인해 글은 저의 치료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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