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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칼코마니

거울 같은 우리의 삶, 접어도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

by 신수현

어린 시절 미술 시간, 선생님은 스케치북을 반으로 접은 후, 한쪽에 물감을 여러 가지, 마음대로 찍어놓은 다음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펼치라고 하셨다.

그리고 접힌 종이를 펼치자, 좌우가 대칭인 신비로운 형상이 나타났다.

어떤 아이는 나비를, 또 다른 이는 괴물의 얼굴이 만들어졌다.

나는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나를 닮았지만, 나와는 다른 누군가의 얼굴. 그게 내가 처음 만난 데칼코마니였다.

데칼코마니는 두 개의 마주 보는 세계를 의미한다.

하나는 나, 다른 하나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하지만 그 거울은 때로는 진실을, 때로는 환영을 비춘다.

가끔은 나보다 더 나를 닮은 타인으로, 가끔은 전혀 알 수 없는 괴물 같은 감정으로 되비춰진다.

그래서 나는 삶이 데칼코마니 같다고 느끼게 되었다.

내가 살아온 시간, 사랑했던 사람들, 도망쳤던 감정들까지 모두 한 장의 접힌 종이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부모를 원망했다.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큰소리로 화를 내던 아버지, 무조건 참으라고 하며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시는 엄마. 그들에게서 도망치듯 멀어진 시간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가 난듯한 큰소리가 싫었지만, 나는 일하면서 자주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불만을 내세웠으며, 거절하지를 못하고 나의 감정표현을 하지 못하는 습관에서 엄마를 많이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데칼코마니처럼 접힌 나를 발견했다.

부모에게 가졌던 원망이 사실은 나를 향한 불안과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결국 서로 닮아간다.

사랑하든 미워하든, 함께 살든 멀어지든. 감정은 종이 위의 물감처럼 스며들고 번져서, 나와 너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삶은 조용히 접히고, 어느 날 펼쳐질 때, 우리는 비로소 '닮은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거울을 보며 누군가를 떠올리고, 자신의 말투가 낯설게 느껴질 때, 그것은 이미 데칼코마니가 완성되어가고 있다는 신호다.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던 이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닮아갔다.

우리는 서로의 말투를 흉내 내고, 웃는 포인트가 같아지며, 익숙함이 깊어질수록 서로의 그림자가 되었다.

하지만 너무 많이 닮아버리면 그 사랑은 깨지기도 한다.


‘내가 나와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다시 반대편으로 밀어낸다. 물감이 과해지면 얼룩이 되는 것처럼.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가장 큰 데칼코마니는 ‘과거’다.

나는 과거를 지우고 싶어 했지만, 과거는 지워지지 않았다.

다만 내 안에 대칭처럼 남아 나의 판단을 만들고, 감정을 흔들었다.

내가 쉽게 사람을 믿지 못했던 것도, 스스로를 벌하듯 사랑을 밀어냈던 것도 결국 접힌 종이의 반대쪽에 남아 있던 상처들이었다.


지금 에세이를 쓰는 이 순간에도 나는 또 하나의 데칼코마니를 만들고 있다.

지금의 나는 글을 쓰고, 종이의 한쪽 면에 물감을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접힌 반대쪽에 있는 사람이다.

당신이 무엇을 보든, 무엇을 느끼든, 그것은 결국 나의 일부이자 동시에 당신 자신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데칼코마니다. 서로에게 투영되며 살아간다.

어쩌면 예술이란 이런 무의식의 흔적을 드러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데칼코마니는 단순한 대칭을 넘어, 관계의 복잡함과 감정의 연속성, 그리고 치유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삶을 살다 보면 감정은 뚜렷한 의도 없이 번지고, 관계는 이유 없이 맺어지고 끊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종이를 펼치듯 인생의 한 순간을 펼쳐보면, 우리는 놀랍도록 정확한 무늬를 발견하게 된다.


이제 나는 데칼코마니처럼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억지로 무언가를 바꾸려 하지 않고, 감정과 기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삶이 내게 준 반쪽, 그것이 기쁨이든 고통이든, 나를 이룬 절반이라는 사실을 안다.

이제는 용기를 내어 종이를 펴고, 그 안에 담긴 나를, 그리고 너를 마주하고 싶다.

삶은 물감이다. 나는 종이다.

어떤 색을 묻히느냐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모습

아무렇게나 찍은 듯이 늘어놓은 물감 속에서 종이를 접고 펼치면 또 다른 모습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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