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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을 물건은 썩게 된다.

by 신수현

강원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인지 나는 감자로 만든음식은 뭐든 좋아한다. 감자전, 감잣국, 감자볶음, 심지어 감자칩까지 모두 맛있다.


시골에서는 감자나 호박, 오이, 고추, 깻잎 같은 채소들을 굳이 보관하지 않아도 됐다. 밭에서 바로 따서 그날 요리해 먹었기 때문에 채소가 귀하다는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하지만 타지에서 살아보니 풋고추 한 줌이 3000원이고, 좋아하는 감자를 사 먹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꼭지를 잘라 포장된 채소들은 아무리 잘 보관해도 결국 상하기 마련이다.


얼마 전 엄마 집에 들렀다가 햇감자와 조림용 감자를 가져왔다. 예전에도 수미감자 5킬로를 샀는데 싹이 나서 보관을 잘못한 줄 알고 엄마에게 물어보니 신문지나 검은 종이를 덮어두면 된다고 하셨다. 신문지가 없어서 검은 비닐을 덮어 세탁조실에 두었다.


매일 요리를 하지 않아 가끔 세탁조실에서 감자를 꺼내 감자전이나 감자볶음을 해 먹었다. 그런데 몇 달 사이 감자에 싹이 트고, 하나둘 쭈글쭈글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모습이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싹이 나고, 쪼글거리고, 수분이 빠지는 일들은 결국 우리도 겪는 노화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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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기다리며 글을 씁니다. 멈춘듯, 흐르지 않는 어둠과 함께 ... 시간에 대한 후회, 반복되는 상처로 인해 글은 저의 치료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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